예술의 상상 425

보이체크

시공간이 불분명한 회색도시. 조지오웰의 소설 같기도하고, 찰리채플린의 영화같기도했다. 인간과 기계가 구분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공허한 외침 쯤 되겠다. 보이체크는 완두콩 실험의 대상이자, 마리를 사랑하는 평범한 일용직 노동자이자, 약간은 소심하고 전전긍긍하며 두려움 많은 소시민이다. 새삼스럽지도 않게 박사, 대학교수(지식인층)와 군인(권력계층)의 조합이 보이체크를 점점 비정상인으로 만들어간다. 중간 중간에 이상한 생물체를 소개하는 서커스가 펼쳐지는데, 이 장면에 달하면 짐승과 인간의 구분까지도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일종의 [광기의 역사]를 극으로 재구성한 것같아 보였다. 뷔히너는 이 극을 완성하지 못하고 요절했다고 하는데, 아마 그 미완성의 희곡이 오히려 극을 더 풍성하게 재해석할 여지를 주었던 듯하다..

박수근과 조덕현 @ 박수근미술관

인상적이었던 조덕현의 작품을 보려고 찾았는데, 작품도 많지 않고 공사때문에 어수선한 미술관의 분위기 때문에 전시가 산만했다. 전시의 기획이나 의도는 좋은데, 더 내실을 기했더라면 멀리서 오는 관람객들에게도 만족을 주었으리라 싶다. 그래도 박수근 미술관은 참 좋은 공간이란 생각에는 변함 없음. 조덕현의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에 대한 기대도 변함 없음. 스스로에 대한 반영+ 캔버스의 물질성에 대한 반영+ 여성이미지에 대한 반영+ 박수근에 대한 반영 reflection+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2010)>

번쩍하는 푼크툼의 순간 사진 찍은 일을 일상의 전부로 삼는 한 젊은이가 있다. 그의 방 창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고, 방을 관통하도록 매달아놓은 줄에는 크고 작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무엇을 찍은 것인지 궁금해 해도 소용이 없다. 사진이 창 바깥쪽을 향하여 걸려있기 때문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주파수가 맞지 않아 소음을 내는 라디오를 켜놓은 채, 천사에 관한 시를 읽으며 무언가를 끄적이던 이작은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의 2010년 영화 는 죽은 여인의 사진을 찍은 한 젊은이가 그녀에게 (더 정확하게는 그녀를 찍은 사진 이미지에) 매료되어 사랑에 빠지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멜로영화나 미스터리, 초현실주의 영화를 넘나들며 정적인 미장센으로 영화내..

오늘의 프랑스 미술@과천현대미술관

종 잡을 수 없는 형식으로 치닫는 난해한 현대미술의 중심에는 프랑스 철학이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16명의 동시대 프랑스의 젊은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제목처럼 하나의 주제로 묶을 수 없는 개성강한 이들을 확인하는 장이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작품은 단연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가 전시장 사이의 커타란 공간에 설치해놓은 음악과 조형예술의 결합물이었을테다. 물위에 떠다니는 서로다른 크기의 그릇들이 마주치며 내는 소리는 마치 명상음악을 듣는 듯 고요하고 청명했다. 이것이야말로 유럽을 대표하는 '서구'가 주목하는 동양적 불교와 명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하겠다. 예전보다 미술관에서 보는 영상매체에 좀 더 호의적이 된 나는 전시 대표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한 로랑 그라소의 작품에 ..

들길에 서서

오늘 은혜 받은 시. 요즘 생각하는 나의 일상과 연약함 그렇지만 또 다시 살아간다는 것의 숭고함을 생각하게 해 주는 시. 왜 이런 시를 고등학생때만 읽었을까 싶었던 시. 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Kandinsky 찾다가 발견

[칼럼] 그래픽 악보: 사운드와 이미지의 언어 AAA Swann Che, Music 1 (Gymnopedies), 2010. Image from generative software. 사운드와 이미지는 청각과 시각이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통해 인식되지만 그 의미를 해석할 때 서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음악을 들을 때 시각적 상상을 통해 음악적 의미를 파악하기도 하며 시선의 경계를 벗어난 공간에 대해서는 소리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구성한다. 사운드와 이미지가 서로 간섭 혹은 조응하는 것에 대해 어떤 과학자들은 시각을 처리하는 뇌의 부분과 청각을 처리하는 부분이 인접해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하나의 자극이 다른 감각을 동시에 활성화시킨다는 것인데 이는 공감각(Synesthesia)을 설명하는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