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9

불화

자아와 세계의 불화 . 결국 이것이 모든 내러티브를 창조하는 것이겠지. 불화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애증이 식어져버리면, 혹은 불화에서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거나 땅으로 꺼져버린다면 이 모든 이야기들은 일어나지 않겠지 고등학교 아이들 문제집에 나온 지문을 아이들이 별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친구와 대화하면서도 떠올렸고, 대학에서 만난 가장 뜨뜻한 선생님의 한국문학 수업에서 자아와 세계의 분열이라는 요소가 소설을 (테크닉적으로겠지?) 소설답게 한다는 말을 떠올렸고, 점심을 함께 먹었던 지인들과의 대화, 왕성한 에너지와 창작력을 가진 그녀의 말을 들으며 떠올랐다. 세계와 불화할수록 할 이야기는 많다.

[고령화가족]가족-그 진부하고도 새로운 만남

가족. 가장 가깝지만 서로를 가장 서로를 모르는 관계가 아닐까? 제목만 보고 노년인구가 증가하는 한국사회의 보고서 혹은 고령화라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다루는 소설이려니 지례짐작했더랬다. 책을 읽는 도중에는, 신파라며 몇번 짜증을 내고 그러면서 공감되는 인물들에 모습에 마음이 쨘하고 코끝이 시리고 감각을 자극하는 폭력장면(?) 묘사에 인상을 몇번 찌푸리고. 그러고 나서야 이 소설이 천착하는 바는, 전혀 새롭지 않는 가족이라는 주제. 구질구질하고 방안의 낡은 앨범속 어딘가 고스란히 끼워두고 있다가 '내가 늘 보관하고 있었소'하고 꺼내놓을 만한 주제인 그 가족임을 깨달았다. 다만 그 방식과 소재에 있어서 이야기꾼 천명관의 빠릿빠릿함과 여유가 드러난다. 고래 이후 3년만에 귀환한 천명관의 장편소설은 한마디로 '가..

[바람이분다 가라] 얼음으로 만든 칼

그녀의 글은 여전히 섬세하고 영민하다. 마치 얼음을 깎아 만든 칼 같다.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며 피와 먹, 빨강과 검정,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밤새 내린 눈이 뒤덮인 세상을 볼 때의 눈부심. 그것은 경외감이기도하고, 공포이기도하고, 모든 것을 숨기고 있는 대상에 대한 신비감이기도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랬다. ㅊㅅ주의자의 인물과 어쩌면 가장 극단에 있을지도 모를 인물들은 집착적이고 격렬하다. 그럼에도 한강의 인물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보존한다. 비록 그것이 죽음이라해도. ++소설에 덧붙이는 것은 역시 사족이다. 한강은 역시 나의 베스트!! ++글과 이미지의 조화가 뛰어나다. #1. 사랑, 공포와의 동의어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로드

삶의 이면에는 죽음이 있다. 아니 죽음의 이면에는 삶이 있다. 이 두 문장은 언뜻 같은 의미처럼 보이지만, 삶에 대해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혹은 극한적인 악한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사람. 그리고 그가 걸어가고 있는 그 '길'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린 여러가지 모양의 이야기들이 있다. 오래 잔상이 남았던 영화는 미스트였는데, 인간의 내면을 꽤 깊은 곳까지 파헤치기 때문이다. 미스트의 결말부에 자신의 딸들을 구하기위해 안개를 해치고 나갔던 여인이 구조대의 차로 유유히 지나가며 살아남은 주인공에게 보내는 눈길은 주위의 모든 것을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밟고 올라선 세상 속 누군가에게 보내는 영화의 시선이다. 그러나 로드의 디스토피아는 이보다..

[2010이상문학상 아침의 문] 그의 진화

아침의 문을 다 읽었을때, 나는 ㅂ민규의 종적을 되돌아 보아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확실히 이전보다 섬세하고 강인하다. 이는 단편이가진 매력이기도하고. 삼미는 확연한 20대의 질풍노도였고 핑퐁은 과도기였으며 파반느는 과잉이었다. 아침의 문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그와 같은 정서를 지니지는 못했음에도 그를 쉽사리 끊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를 재확인시킨다. 안정적인 서사와 완결성.은 과거보다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그를 읽는 독자로서 바라는 소박하지만 어려운 주문은 억지스럽지 않은 여성캐릭터의 탄생이다.

오후 네 시 Les catilinaire

오후 네시마다 똑같은 모습으로 두시간씩 우리집의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육체 덩어리가 있다. 그는 옆집 남자, 베르나르댕 베르나르댕은 어떤 인물인가. 우리 고문자의 얼굴에는 침착함이나 온화함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요컨대 그의 얼굴에는 서글픔만이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포르투갈 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우아한 서글픔이 아니라, 빠져나갈 길 없는, 짓누르는 듯한, 차가운 서글픔이었다. 왜냐하면 그 서글픔이 그의 비계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37)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를 우리집 거실에서 쫓아내는것. 그리하여 전원생활의 아늑함과 자유의 극치를 맛보는 것.하지만 상대는 만만치 않다. (100) 이런 냉혹한 싸움에서 이기는 데는 더 똑똑하다든지 더 사려깊다든지 하는 것은 아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