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우뚱 묵상 148

산과 창조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분명 한10년전에 읽었을게 분명한 '한길가는 순례자'에서 다시 발견한 이 말씀. 나의 도움이 산이 아닌 산을 창조한 자에게서 온다는 고백. 열심히 산을 쳐다보고 있는 우리. 그러나 우리의 도움은 산이 아닌 산을 지으신 하나님에게서 온다. 산을 향해 고개를 들고있어봤자 소용없다 ㅎㅎㅎ 삶과 나에 대한 높은 기준을 따라 여기저기 산봉우리를 보며 허우적대지 않고, 그 산을 그 자리에 놓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묵묵하게 열심히 길을 가련다.

갸우뚱 묵상 2020.07.29

하박국

요즘 충격 받은 몇몇 장면. 어제 미국에서 경찰 4명이 흑인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죽인 일. 영화가 아니고, 실제 일어난 일. 프랑스 뉴스에서는 이 비디오 클립을 한참동안이나 그대로 보여주어 두눈으로 똑똑히 한 사람이 무참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전세계 몇십만을 죽인 코로나. 그것에서 파생되어 나온 수많은 사회경제정치, 인간사가 피곤하고 충격적이다. 원인과 해결방법이 뭘까, 앞으로 어찌되는 건가를 고민해보지만 내 머릿속에서 뭐가 나올리가. 이성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거대한 암벽에 가로막힌 기분. 이 답없어 보이는, 이성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아니 그 믿음 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라고 의식이라..

갸우뚱 묵상 2020.05.28

나사로, 친구, 부활

이 말씀에서 늘 주목되었던 부분은 후반부의 '부활' 파트였는데, 오늘의 말씀에서는 초반부 예수님과 나사로의 죽음을 알리는 이들의 대화였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죽게되었나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도 아플 수 있다는 말. 지금 겪고 있는 혼란이 마치 뭔가 단추를 잘못 꿴것 같은 친구의 삶에서 벗어난 것 같은 느낌에 불안했던 몇주.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친구가 아프다는 말에 대한 예수님의 응대 최근 내가 느끼고 있는 아픔과 고통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같아 보였던 나사로의 부활.

갸우뚱 묵상 2019.04.09

용기에관하여

여전히 매일매일 집에서 거동이 불편한 채로 투병생활 중인 헤날은 말하는게 힘들어 그때 그때 반응해야하는 직접적인 대화는 힘들어하지만, 여전히 기도할때 만큼은 예전과 다르지 않게 평안 중에 있다고한다. 지난 주에 그를 만나고 온 사람들의 소식에 따르면 기도 중에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는 고백을 반복하며 기도하셨는데, 정말 복음을 소유한 자의 평안이 이런것이구나 싶다. 헤날이 1년전쯤(여전히 투명중일때) 블로그에 올렸던 '용기'에 관한 글을 며칠전에 다시 읽어보았다. 불어로 courage라는 말은 한국어보다 좀 더 일상적인 맥락에서도 쓰이는 것 같다. 수고하세요. 화이팅 뭐 이런 말들에 Bon courage라는 말을 쓴다. 사람들이 흔히 용기를 어떤 어려움이나 육체적 정신적 고통 앞에서의 강인함 같은..

갸우뚱 묵상 2017.03.21

눅16장

1. 어제, 우리 둘의 대화에 대한 답이라 여겨진 오늘 아침 큐티말씀. 누가복음 16장의 불의한 청지기 본문2. 와이파이 비번을 물어보더니, 그 이후로 계속 우리집 인터넷을 끌어쓰는 A. 뭐 인터넷 나눠쓰는게 대수인가 싶은 대인배적 마음과, 말도 안하고 쓰는 것에 대한 빈정상한 소인배적 마음이 갈등을 일으켜 예민해진 우리 둘.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 라는 대사가 너무 현실을 잘 설명하는 것에 짜증이 나면서도 또 무시할 수 없어 더 화가남. 여전히 난 너무 이상주의자 인가?3. 명백히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쓴 댓가를 받지 않는 김의 '청렴함' -이라 쓰고, 예민 완벽주의, 얽히기 싫음 증후군 이라 읽는다-은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그를 잘 모르는 타인들에게는 신뢰감을 주나보다. 누구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제공..

갸우뚱 묵상 2016.02.27

예수그리스도의 오심, 육신이 되신 말씀

La parole est devenue un homme, et il a habité parmi nous. Nous avons vu sa gloire. Cette gloire, il la reçoit du père. C'est la gloire du Fils unique, plein d'amour et de vérité. (Jean 1:14, PDV)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 1장 14절, 새번역)1. 육신이 되다.2. 살다.3.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성탄을 맞이하여 지난 주일 설교에서 들었던 요한복음의 말씀을 곱씹어보았다. 육신, 살은 당시의 이분법적인 문화에서 죄를 담..

갸우뚱 묵상 2015.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