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우뚱 묵상 148

5리10리

김과 저녁 산책을 하며, 친구가 5리를 가자고하면 10리를 가라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묵상해보았다.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그에게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라해도, 결과적으로 칭찬을 받고싶고 인정을 받고싶다면 그것은 진정한 친절이 아니다. 단지 인정을 받기위한 수단일 뿐이지. 우리의 미숙한 스킬로인해, 진심이 100% 전해지지 못해 오히려 서운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운해 한다는게 이상하다. 첨부터 그를도우려했던 건데, 그것을 소비와 허비로 끝내지 못하고, 무언가를 얻어내려했던 우리의 무의식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리를 가자는 친구에게 십리를 가주라고 하셨나보다. 그게 예수님의 방법인가보다. 우리는 오리를 가주는 것도 뭔가 대단한 친절을 베푸는 것처럼 우쭐해질 뻔 했는데, 예수님..

갸우뚱 묵상 2014.07.19

욥기 6장

이 고난은 너의 죄 때문이다. 차라리 이렇게 징계를 받는것이 다행인 줄 알고, 얼른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라는 엘리바스의 말에 대해,6장에 나오는 욥의 대답은 의미심장하다.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은 이 고난의 크기가 너무 크고 이 고난을 주신 분이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라네. 나는 간청하고 싶구나. 하나님이 차라리 죽여달라는 내 소원을 들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는 더 이상 견딜 힘이 없어. 견딘다고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내가 바위같이 강한가? 내 몸이 무슨 놋쇠인가? 나는 이제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네. 고통당하는 친구를 동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이야 나는 친구들을 믿을 수가 없구나. 자네들은 마치 말랐다 불어났다 하는 시냇물같아. 그런 시냇물은 겨울에 눈이 녹으면 불어났다가..

갸우뚱 묵상 2014.07.17

하나님의 손 La main de Dieu ou la création

1896년 로댕이 대리석으로 만든 이 작품. 한 면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대리석의 모습이고, 다른면은 너무 매끈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작품의 제목은 '하나님의 손' 혹은 '창조'이다. 사인도 날짜도 기입되어 있지 않아 뭔가 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싶지만, 가장 일차적인 재료로부터 튀어나온 인간의 모습을 정말 잘 형상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로댕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기이한 형태로 몸을 꼬고 있는 두 인간 아담과 이브였지만, 곧 그 둘이 그렇게 온 몸을 기대고 있는 그 곳에 눈이 머문다. 바로 하나님의 손. 힘줄과 근육이 울퉁불퉁 드러나도록, 힘으로 저 두 인간을 받치고 있는 저 손은 편안하고 안락한 손이기보다 끈질김과 단단함을 보여준다. 이 두 인간형상과..

갸우뚱 묵상 2014.07.12

그와의 거리

욥1: 12, 2: 7 (PDV) Alors l'Accusateur s'est éloigné de la présence du Seigneur. (LSG) Et satan se retira de devant la face de l'Éternel. 나레이터는 고발자인 사탄이 욥을 치러가기 전의 모습을 같은 단어를 써서 묘사한다. se éloigner de- ~로부터 멀어지다. 즉 주님의 현존으로부터 멀어지다. 영원자 얼굴앞에서 물러가다. 대화를 마쳤으니 제 갈길로 떠나는 것이 당연해보인다. 굳이 이런 설명이 필요했을까? 이 행동에 대한 두 장에서의 의도적으로 반복된 설명은 이 고발자가 당연히 하고자 하는 그 일에 대한 자연스러운 첨언같다. 영원한 자의 얼굴과 나의 거리, 그것이 기준이겠지. 다가가 갈 수 없..

갸우뚱 묵상 2014.07.11

le cri par Edvard Munch, 1893

강렬한 색채와 표현주의적 해석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1893년 작인 '절규'의 독일어 버전 제목은 우리말로 '자연의 절규'라고 한다. 그림의 뒷편에 걷고 있는 두 행인은 뭉크와 함께 걷던 동행들로, 뭉크는 해질녁 다리를 건너는 순간 하늘이 붉은 핏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를 자연이 지르는 비명, 자연을 관통하는 비명소리로 들었다. 가던 길을 멈춘 채로 두려움에 떨었던 자신의 기억을 이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이 그림은 불안한 내면심리나 감정상태에 대해 표현하고 싶은 목적이었기보다, 자연이 내지르는 비명, 인간이 다가갈 수 없고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그 영역이 내지르는 결핍에 대한 표현이었던 것이다. Huile sur toile 91 x 73,5 cm Version 1893..

갸우뚱 묵상 2014.07.10

욥1: 1-12

욥기가 시작되었다. 뭔가 긴장된다. 욥기가 던지는 질문에 제대로 정직하게 반응할 믿음이 없어서일까.이 대서사의 결말이 나에게도 일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이 대서사의 작가가 내가 아님을 인정해야하는 좌절 사이를 왔다갔다한다. 이것을 희망이 아닌 좌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지금 나의 심리상태이다.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겠지요라고 말하는 그의 반문에 나 역시 고개를 들지못하는 아침이다.

갸우뚱 묵상 2014.07.09

살전3:8

김과 아침에 일어나 묵상했던 매일성경의 말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썼던 이 편지에서 두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바울은 믿은지 얼마 안되는 이 신생아같은 교회가 주 안에 굳게 서 있음을 기뻐하고 감격한다. 하나님 안에 굳게 서 있는 것만이 성도들에게 빼앗길 수 없는 기쁨과 삶의 위로임에 대해 묵상해보았다. (8절) 그 앞 절에 보니, 이 편지를 쓰며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로하고 있는 바울조차도 그 일행의 상황은 궁핍과 환란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교회를 격려하고 감사하고 기뻐한다. (7절) 하나님의 우리 가정에 원하시는 두 뜻에 대해 기억해야겠다. 버티기에서 머물지않고 굳게 되는 삶과 궁핍과 환란가운데에서도 성도를 위로하고 격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 버겁고 두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환란과..

갸우뚱 묵상 201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