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우뚱 묵상

욥기 6장

유산균발효중 2014. 7. 17. 02:32


이 고난은 너의 죄 때문이다. 차라리 이렇게 징계를 받는것이 다행인 줄 알고, 얼른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라는 엘리바스의 말에 대해,

6장에 나오는 욥의 대답은 의미심장하다.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은 이 고난의 크기가 너무 크고 이 고난을 주신 분이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라네. 나는 간청하고 싶구나. 하나님이 차라리 죽여달라는 내 소원을 들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는 더 이상 견딜 힘이 없어. 견딘다고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내가 바위같이 강한가? 내 몸이 무슨 놋쇠인가? 나는 이제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네. 고통당하는 친구를 동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이야 나는 친구들을 믿을 수가 없구나. 자네들은 마치 말랐다 불어났다 하는 시냇물같아. 그런 시냇물은 겨울에 눈이 녹으면 불어났다가도 여름철에는 바짝 말라 버리는 시냇물같이 가뭄때는 물이 줄어들다가 아주 말라버리고, 이리저리 구불거리다가 나중에는 흔적조차 없어진다네. 데마의 상인들이나 스바의 여행객들도 시냇물을 찾으려하지만, 막상 찾고 나면 결국 실망만 더하게 되지. 나는 정말 시냇물을 찾듯이 자네들을 찾았네. 그렇지만 자네들은 내 몰골을 보고 기겁을 했어.  (매일성경 본문에서 발췌)


1. 자신의 일에서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위해 명상과 초능력에 심취한 친구에게, 다른 이들과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공유하지 못하는 그 친구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세계에 갇혀 오히려 다른 이들의 치열한 삶에 대해 자아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그에게 우리는 어떤 말로 진리를 전할 수 있을까? 


2. 자신이 사랑했고 책임졌던 사람의 정체를 알고난 그 친구에게.. 충격과 공포에 질려 나아갈 길을 모르는 그 친구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성공과 자신감만이 넘쳤던 그의 사회적 삶과 지위가 모두 무너져버리고 가족과 친구들마저 모두 떠날지 모를 이 상황에서 우리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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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의 꿈이었으면 하는 그 대화의 시간들을 보내고 욥을 보았다. 욥의 고통은 문자적인 어려움이 아니었다고 그분이 외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어려움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지만, 만약 온다면 이 친구들의 지금일거라 생각했다. 목마름과 기대로 찾았지만 마른 시냇물이 아니라 물이 흘려 갈증을 해소하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시냇물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엘리바스같은 말을 던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낙심한 이들의 친구이신 그 분을 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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