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로드

유산균발효중 2010. 1. 29. 17:52

삶의 이면에는 죽음이 있다. 아니 죽음의 이면에는 삶이 있다.

이 두 문장은 언뜻 같은 의미처럼 보이지만, 삶에 대해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혹은 극한적인 악한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사람.

그리고 그가 걸어가고 있는 그 '길'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린 여러가지 모양의 이야기들이 있다.  

오래 잔상이 남았던 영화는 미스트였는데,

인간의 내면을 꽤 깊은 곳까지 파헤치기 때문이다.

미스트의 결말부에 자신의 딸들을 구하기위해 안개를 해치고 나갔던 여인이

구조대의 차로 유유히 지나가며 살아남은 주인공에게 보내는 눈길은 주위의 모든 것을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밟고 올라선 세상 속 누군가에게 보내는 영화의 시선이다.  

 

그러나 로드의 디스토피아는 이보다 더 처참하다.

싸워야 할 대상도 없고, 빠져나가야 할 위험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원초적 상태의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인가요?'라는 아들의 질문에 대한 남자의 답은 '그렇다'인데, '그렇다'의 뉘앙스는 아마도 체념과 회피이리라.

더이상 선과 악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좋은 사람이면 어떻고 나쁜 사람이면 어떠랴. 배가 고프면 타인의 무언가를 가로채야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세계에서.

 

그야말로 모든 것은 적막과 무.

이 속에서 부자가 살아내는 방법은 그들에게 남은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을 운반하고 있단다.'

생사의 순간에도 불씨를 운반하고 있다는 목적이 이들에게 남은 한 발자국을 내딛게 해준다.

 

자신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감지한 남자는 잠든 아들 몰래 울음을 터뜨린다.

죽음을 대비하며 사는 나와

삶을 대비하며 사는 이들은

같아 보이지만 정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죽음을 대비하며 사는 나는 삶의 당연함과 필연성을 전제하고 있기에, 일상은 때로 지루하고 과잉으로 넘친다.

삶을 대비하며 사는 이들은 죽음의 필연성을 감지하고 있기에, 일상은 결핍으로 이어지며, 통조림을 모아야하고, 체온을 유지해야한다.

 

 

 

덧.

사실 난 이 글에 쏟아진 찬사의 근원을 잘 파헤치기 힘들다.

부성애를 다룬 것으로 읽든, 911이후 거대한 미국 사회의 공황으로 읽든, 인류의 묵시록으로 읽든, 그 어떤 것도 나의 주제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