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오후 네 시 Les catilinaire

유산균발효중 2010. 1. 4. 13:08

오후 네시마다 똑같은 모습으로 두시간씩 우리집의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육체 덩어리가 있다. 그는 옆집 남자, 베르나르댕

베르나르댕은 어떤 인물인가.

 

우리 고문자의 얼굴에는 침착함이나 온화함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요컨대 그의 얼굴에는 서글픔만이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포르투갈 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우아한 서글픔이 아니라, 빠져나갈 길 없는, 짓누르는 듯한, 차가운 서글픔이었다. 왜냐하면 그 서글픔이 그의 비계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37)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를 우리집 거실에서 쫓아내는것. 그리하여 전원생활의 아늑함과 자유의 극치를 맛보는 것.하지만 상대는 만만치 않다.

 

(100) 이런 냉혹한 싸움에서 이기는 데는 더 똑똑하다든지 더 사려깊다든지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머 감각을 갖는다거나 박학한 지식의 물살로 상대방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것 역시 소용이 없었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육중하고,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최대한 숨막히게 하고, 최대한 예의없고 최대한 공허해야했다.

 

베르나르댕을 이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그는 공허한 사람이다. 공허함. 나의 맥락에서 이는 영혼 없음이라고 불린다.

 

 공허야말로 그의 특성을 가장 잘 요약하는 단어였다. 베르나르댕 씨는 뚱뚱한 만큼 비어있었다. 뚱뚱했으므로 그는 자신의 공허를 담아낼 더 많은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세상 만물이 그렇지 않은가. 나무딸기나 도마뱀이나 경구들이 그 치밀함으로 풍요를 불러일으킨다면, 바가지를 만드는 커다란 박이나 치즈 수플레, 개회 연설들은 그 부풀음만큼 공허한 것이 아니던다.

공허의 힘만큼 무서운것도 없다. 공허는 냉혹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공허는 선을 거부한다. 공허는 집요하게 선의 길을 가로막지만, 반대로 악의 침투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주 오래된 친구 사이처럼, 공통된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베르나르댕이 원하는 것, 마침내 나는 그것을 알아냈다. 그는 죽음을 원한다.

살아가는 것은 그에게 고통일 뿐이다. 그래. 나는 기꺼이 그를 도와주리라.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무한한 우정과 존경-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경의-를 느끼게 된다. 분명, 그도 나를 존경하리라.

 

 

182) 이웃집 남자가 죽고 난 후 나는 그에 대해 우정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흔한 증상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도와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법이다.

 

4월 2일에서 3일에 이르는그 밤에 나는 베르나르댕 씨를 구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그런 이기적인 실수를 저지르다니!

하지만 6월 21일 내가 한 일을 남의 이목을 끈 것도 아니었고, 타인의 운명을 내 기준으로 판단한 것도 아니었고, 보통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 반대로 그날 나는 타고난 내 성격을 거슬러 행동했고, 아무도 알아줄 리 없는데도 내 구원보다는 내 이웃의 구원을 먼저 생각했으며, 한 가엾은 사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대단찮은 내 신념은 물론 나의 완강한 수동성까지 희생시켰다. 내 의지가 아닌 그의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요컨대 내 행동은 보시였다. 진정한 보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 선의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받는 순간, 그것은 이미 선의가 아니다.

 

내가 팔라메드 베르나르댕의 삶을 구원해 준 것을 진정한 보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을 바로 하짓날 한밤중에 행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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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있고 예의바르며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신사인 에밀은,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이며 타인의 죽음을 자신의 영웅적 희생으로 가져오길 서슴지 않는 그로테스크한 인물로 돌변해간다. 가장 고귀한 행함 조차 사실은 추악하고 이기적인 본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악을 합리화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이다.

 

공허함에 대한 아멜리 노통의 통찰력에 감탄했던 소설.

자신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합리화의 함정을 재고하는 이야기.

 

 

*Les Catilinaire (개인에 대한 적의 어린 연설, 맹렬한 야유, 통박)라는 원래의 제목을 번역본에서는 오후 네시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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