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글은 여전히 섬세하고 영민하다.
마치 얼음을 깎아 만든 칼 같다.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며
피와 먹, 빨강과 검정,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밤새 내린 눈이 뒤덮인 세상을 볼 때의 눈부심.
그것은 경외감이기도하고, 공포이기도하고, 모든 것을 숨기고 있는 대상에 대한 신비감이기도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랬다.
ㅊㅅ주의자의 인물과 어쩌면 가장 극단에 있을지도 모를 인물들은
집착적이고 격렬하다.
그럼에도 한강의 인물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보존한다.
비록 그것이 죽음이라해도.
++소설에 덧붙이는 것은 역시 사족이다. 한강은 역시 나의 베스트!!
++글과 이미지의 조화가 뛰어나다.
#1. 사랑, 공포와의 동의어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2. 바람, 삶과의 동의어
이런 바람이 불면 말이야…
이만큼의 습기를 품은 바람이, 이만큼의 세기로 불면 말이야…
혈관 속으로 바람이 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
모든 것이 커다란 전체로 느껴져.
언제고 내 다리를…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게,
무섭도록 분명하게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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