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고령화가족]가족-그 진부하고도 새로운 만남

유산균발효중 2010. 7. 16. 02:11

가족.

가장 가깝지만 서로를 가장 서로를 모르는 관계가 아닐까?

 

 

제목만 보고  노년인구가 증가하는 한국사회의 보고서 혹은 고령화라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다루는 소설이려니 지례짐작했더랬다.

책을 읽는 도중에는, 신파라며 몇번 짜증을 내고 그러면서 공감되는 인물들에 모습에 마음이 쨘하고 코끝이 시리고 감각을 자극하는 폭력장면(?) 묘사에 인상을 몇번 찌푸리고.

그러고 나서야 이 소설이 천착하는 바는, 전혀 새롭지 않는 가족이라는 주제. 구질구질하고 방안의 낡은 앨범속 어딘가 고스란히 끼워두고 있다가 '내가 늘 보관하고 있었소'하고 꺼내놓을 만한 주제인 그 가족임을 깨달았다. 다만 그 방식과 소재에 있어서 이야기꾼 천명관의 빠릿빠릿함과 여유가 드러난다.

고래 이후 3년만에 귀환한 천명관의 장편소설은 한마디로 '가족의 재탄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종족인 이 가족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한모: 아동성범죄자? 싸움꾼?

은모: 촉망받는 감독에서 애로영화 감독으로 돌변.

미경: 카페 혹은 술집/ 세번의 결혼

민경: 싸가지 없는 아이.적당히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엄마: 고전적인 지고지순 엄마 이기보다, 여자로서의 자신의 삶에 충실한

 

서로 용납할 수 없는 타자로 살아가던 중년의 남매가 좁은 한집에 모여 산소를 공유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부채의식으로 얼룩져있던 가족은 사실 희생과 연대의 관계였다. 이런 비밀이 벗겨지자. 이제 이해하고 용납하게 되었다.

 

아. 특별할 것 없어라

그러나 왜 눈물이 나는걸까?

이 가족의 이야기 혹시 나의 이야기 이기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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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46

담장 아래 놓여 있는 긴 소파엔 노파들 몇 명이 나와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
소파엔 늘 엄마 또래의 노파들이 기대앉아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네들의 가난하고 추레한 모습과 소파의 우아한 자태가 대조되어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평생 꿈꿔왔지만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부자가 된 기분을 이제야 만끽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

하지만 이것은 단지 나만의 감상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소파는 노인들이 단지 앉아서 쉬기에 좋았을 뿐만 아니라 빌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시하기에도 덩벗이 좋은 장소였으니까. 애써 무심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노인들의 호기심은 안쓰러우리만치 애절해 그들의 탐욕스런 시선은 언제나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느라 분주했다.


 57
 최근의 엄마에겐 의아한 대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온 식구가 한데 모여살면서부터 엄마에게 알 수 없는 활기가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근래에 엄마에게 기분 좋을 일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
 그날,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기를 먹다 문득 엄마를 쳐다보니 그녀는 어느새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우리들이 먹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표정은 오래 전, 엄마 앞에 제비새끼들처럼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을 때 어린 우리들을 지켜보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
비록 자식들이 모두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 그저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온 게 기쁘기만 한 걸까?
-사람은 어려울수록 잘 먹어야 된다.
...
사실, 부실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함마는 어릴 때부터 비만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고 미연도 훤칠한 키에 건강미가 넘쳤다. 나 또한 술에 찌들어 몸을 망치기 전까진 감기 한번 걸려본 적이 없는 건강체질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우리가 세상에 나가 패배하고 돌아온 것이 모두 어릴 때 잘 거둬먹이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23
헤밍웨이의 초기 단편 가운데 <킬러>란 작품이 있다. 킬러들이 노리는 것은 올레 앤더슨이란 스웨덴 출신의 전직 권투선수이다. 누군가 올레 앤더슨을 찾아가 킬러들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는 도망칠 생각도 없이 무력하게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린다.
 알려준 것 고맙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그것은 내가 밖으로 나갈 마음이 전혀 없다는 거야.
내가 가진 문제는 올레 앤더슨과 같은 무기력증이었다.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듯 밖으로 나갈 기운도 없었고, 나가서 영화를 찍을 의욕도 없었다. 설사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게 무자비한 킬러들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128
 ‘행복한 가정은 모두 똑같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고 말한 사람이 톨스토이였던가. 민경이 집을 나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근배씨는...그저 남들 하는 대로 대강의 조처를 취했을 뿐 그라고 달리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132
-나 그때 룸살롱 나갔어.
순간, 우리는 냉동이 된 듯 멈칫했다. 머리에 뭔가 쿵 하고 떨어진 기분이었다. 우리를 훑어보는 미연의 눈엔 독기가 가득했다.
 -아마 다들 눈치채고 있었을 거야. 근데 왜들 모른 척했어? 그때 누군가 따귀라도 갈기면서 욕이라도 하지 그랬어. 아니면 머리라도 깎아서 집에 들어앉히든가. 그런데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씨발, 무슨 가족이 그래?
...아는 언니와 같이 자취를 한다며 집을 나가고부터 미연은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낯선 가족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집에 한번 들를 때마다 보이던 생경한 옷차림과 어색한 눈빛,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공격적인 태도와 거친 말투... 우리는 점점 더 사이가 서먹해졌고 다
시는 과거의 깊은 우애를 회복할 수 없었다.

140
엄마를 포함해 나나 미연이나 오함마나 전과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두 실패의 낙인을 간직하고 있었고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에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우리 식구들에겐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형제간의 따뜻한 우애와 건강하고 깨끗한 아이들, 서로에 대한 걱정과 배려, 유순하고 성실한 가족구성원들, 사랑이 넘치는 넉넉한 저녁식사(어머니, 이 뚜껑에 밥 좀 비벼서 드셔보세요. 짜지도 않고 알이 꽉 찼네요. 그래, 참 맛있구나. 애비도 뚜껑 하나 줘라).....
...
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였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두리만을 떠돌며 낭떠러지를 걷듯 살아온 천애의 삶, 아무리 똥줄타게 뛰어다녀봤자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무능과 무지, 숱한 수모와 상처, 불명예와 오명의 역사.... 도대체 내가 어떻게 가족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176
나도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상관없었다.
....
-이제 다들 떠나는 구나. 그래, 일이 있으면 가봐야지.
나는 생전 처음 엄마에게 뭔가 위로의 한마디를 해주고 싶었다. 감정대로라면 엄마의 좁은 어깨를 끌어안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시라고, 민경은 내가 책임지고 데려올 테니 부디 마음 푹 놓으시라고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오버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민경을 찾아올 확률은 오함마가 고시에 합격하는 것만큼이나 가망이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252
최근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언제나 특별한 혜택을 받고 살았다. 적어도 나의 가족 안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들은 늘 나를 배려해줬고 무엇에서든 우선권을 주었다. 그들 덕에 나는 가족 관계 안에서 평탄한 삶을 살았다. 오함마에게 두들겨맞은 것도 어릴 때의 이야기일 뿐, 나이가 들어서는 오히려 그가 나를 어려워했다. 순전히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과는 뭔가 다른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들은 나를 지지해줬지만 나는 고생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것에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했으며 그들을 부담스러워하기까지 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부서져 산산조각난 뒤에도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 자신이 나를 포기한 뒤에도 그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263
헌신적으로 나를 보살피는 캐서린을 지켜보며 나는 한 인간의 삶은 오로지 이타적인 행동 속에서만 완성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는 삶....거기에 비추어보면 나의 삶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삶이었던지.

268
쥘과 짐
 그들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했다. 짐은 새로운 법은 아름답지만 옛날 법을 따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인생을 희롱했다가 실패했다.

286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