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강남몽] 어디사세요?

유산균발효중 2010. 7. 27. 22:40

서울에 올라와서 호기심 어린 눈빛과 함께 가장 많이 나에게 달려드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막 상경한 시골처녀는 서슴없이 '봉천동이요'라고 대답했더랬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지 않고도 서울 시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무렵에야 난 비로소 그 질문의 의미를 깨달았다. 내 대답을 들은 이들이 왜 이내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는지도. 다음 자취방을 정하는 일은 그 동네의 땅 값과 관련된다는 것도.

왜 이들은 어디 사는지를 이렇게 자주 물어볼까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자 자연스레 서울에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목표로 하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의‘지금 그리고 여기'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때로는 나의 속물근성을 건드리는 불편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와 다른 삶이라는 괴리를 느끼게도 하는 그럼에도 늘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침을 튀기며 비판해 마지않는‘강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강남몽』은 한국자본주의의 모든 실상을 압축하고 있는 강남이라는 지역이 어떻게 그 특권적 지위를 거머쥐게 되었는지에 관한 역사를 쓰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의 산물이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겪은 이야기를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 써야 하기에 작가의 부담이 컸을 것이다. 황석영은 이러한 역량을 가진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거품 많은 강남, 깊이 뿌리내린 자본주의의 성장과 경쟁이라는 원리에 대해 파헤치려는 시도와 기획을 이 소설이 잘 획득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일단 뒤로 미뤄두자.

 

콘크리트로 만든 꿈

 

1995년, 대성 백화점이 무너졌다. 박선녀와 임정아는 무너진 백화점에 깔려있다. 대성백화점의 김진 회장은 미리 보고를 받고 몸을 피했다. 파란만장한 젊음을 보내고, 카지노에서 자신의 남은 생까지 날린 홍양태는 TV를 통해 이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심남수는 자신이 기초 공사에만 개입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백화점의 붕괴를 지켜봤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의 붕괴는 물리적이고 정신적으로 한국사회에 일종에 경고장이었다. 철골과 콘크리트로 만든 큰 사각박스 안에 ‘마땅히 소유해야 만 할’ 물건들을 삐까 뻔쩍한 유리상자안에 가두어 두는 것. 그것이 백화점이 할 일이다. 그냥 지나치게 해서는 안 되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 꼭 필요한 것만 놔두어서는 안 된다. 이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단단히 콘크리트로 봉합해야 한다.

하지만 맥없이,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 안에 담긴 무수한 꿈과 함께.

『강남몽』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강력한 요새인 강남을 일구어 낸 사람들의 전형을 이 다섯 명을 통해 보여준다. 사실 작가는 인물과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길 조심하는 것 같다. 때로는 이들의 개인사의 어쩔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특정 정치인들이나 제계 인사들, 조폭들을 떠올릴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남한사회의 기원을 쫓는다. 어디부터 엉켜있는지 모르는 사회문제들-예컨대 과열된 땅 투기나 계발 전쟁, 과도한 교육열과 소비 지향적인 문화, 지역 편차와 도시화 문제-그 중심에는 강남이라는 특별자치구가 존재한다. 이 엉킨 실을 풀어내기 위해 작가는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작한다. 소설의 한 장씩을 차지하는 인물들은 때로는 친구이기도하고 경쟁자이기도하며 동일한 목적인 부와 성공을 위해 처단해야 할 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무조건 달려야 하는 자들이다.

소설을 이루는 다섯 인물군은 강남이 자본주의를 대표한다는 대전제에 맞추어 잘 주조되었다. 이들의 일생은 일견 아픈 개인사이기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대와 맞물려 자신의 욕망을 충실하게 따라간다는 면에서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군의 밀정으로, 해방 후에는 미군 정보요원 활동을 하며 신분을 유지해가다가 남북이 분단되고 본격적인 자본주의와 명복상의 민주화 시기에는 기업가로 성공한 김진 회장을 보자. 그에게 있어 서울을 가르는 한강은 자신의 군복을 탈색시켜주는 장이자, 새로운 시대를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물결의 흐름이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부러워하는 인물일 것이다. 그의 정치색은 중요하지 않다. 그의 과거사도 중요하지 않다. 그가 현재 얼마의 부와 명예를 소유하느냐가 중요하다. 김진 회장은 남한을 후진국에서 계발 도상국으로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든, 그리고 마침내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수 있으리라는 집단적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실리적인 인간이다.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어떤 생존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즉, 실속이 중요하다.

 

김진 회장의 실리와 계획을 뒷받침하기위해선 이를 물리적으로 실현시키는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전형이 심남수와 홍양태이다. 이른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서울의 부동산 개발계획은 부동산 업자들의 도움으로 실현된다. 삼 개월 안에 떼기를 통해 땅 값이 불어나는 과정이 아무런 법적인 제재 없이 아니 오히려 법의 힘으로 일어났다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군가의 이권다툼은 언제나 등 뒤에 무력을 감추고 있다. 강남에 새롭게 형성되는 상권을 선점하기 위한 폭력은 정당화되어왔다.

 

이념과 가치는 상실되고 폭력은 정당화되며,

의리를 중시하는 조폭의 세계에도 배신과 원망이 가득하며,

약육강식으로 인해 인간은 피폐해진다.

 

그래도 지키고 싶은 것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박선녀가 있다. 그녀도 다른 여자들처럼 살림을 하며 남편을 기다리는 꿈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러기엔 과거가 너무 가난했고, 현재는 너무 치열했다. 그리고 미래는 쓸쓸할 것이다. 박선녀는 모델의 외모를 앞세워 이른바 강남 사모님의 전형이자 호화 룸살롱의 마담이라는 일인이역을 소화해낸다. 작가는 박선녀를 통해 강남의 땅 투기와 이조시대를 방불케 하는 대기업일가의 가족관계를 들춘다.

 

우리는 그나마 공감이 되는 한 인물인 임정아를 만난다. 그녀는 80년대 이후, 이미 진행된 도시화와 구획정리의 시기를 살았다. 80년대의 공장노동자, 철거민을 대변하는 최하층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며, 게다가 장애를 안고 사는 가족까지 둔 (난쏘공을 떠올리게 하는)인물이다. 그녀의 등장은 매우 상징적이며 부자연스럽다. 결국 임정아만이 희망적으로 삶을 연명한다.

 

강남夢-더 써야할 미래

 

남한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 시작은 우리가 민주주의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알기에 수호하고자 했던 것이기보다는 폭력과 권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된 호전적이고 분노에 찬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념이나 가치에 아무런 관심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과거를 객관적으로 볼 여유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지금 강남과 비강남의 지역적 격차나 경제적인 격차에 대해 이야기 한들, 그 누구도 관심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성백화점의 붕괴에도 살아남은 임정아와 동시대에 존재하는 우리는 갚아야 할 빚과 해소해야 할 아픔이 있다.

거대서사가 갖는 맹점을 이 소설은 여과 없이 보여준다. 사건을 전개시키기 위해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기에, 인물들은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느낌이다. 각 장별로 한권의 책을 만들어야 할 정도의 이야기는 소설에 대한 긴장감과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이미 그 인물의 미래가 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책의 목적에 대하여 질문해야 한다. 강남 형성사라는 리포트를 위함이라면 굳이 소설적 서사의 형식이 아니더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강남이 형성된 배경에는 개인들의 끈적끈적한 욕망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괴물, 그리하여 작금에는 그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 괴물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었던가?

우리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여유가 생긴 시대에 살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는 면에서, 그리고 우리가 꾸고 있을 꿈도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는 면에서 생각해볼 측면이 있는 책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사회가 버리지 못한 반공과 경쟁이라는 무기를 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친다. 마치 제3세계의 테러나 인종분쟁, 전쟁보도뉴스를 보듯,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보았던 나와 동시대를 사는 이십대에게 그리고 강남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하고 서울생활의 여유를 누리는 것이 모든 도시인의 꿈이 되어버린 바쁜 한국사회에 이 소설이 여운을 남겨보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건강한 꿈과 비열한 욕망을 구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