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Kandinsky 찾다가 발견

유산균발효중 2011. 8. 8. 17:32

[칼럼] 그래픽 악보: 사운드와 이미지의 언어

Swann Che, Music 1 (Gymnopedies), 2010.
Image from generative software.

사운드와 이미지는 청각과 시각이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통해 인식되지만 그 의미를 해석할 때 서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음악을 들을 때 시각적 상상을 통해 음악적 의미를 파악하기도 하며 시선의 경계를 벗어난 공간에 대해서는 소리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구성한다. 사운드와 이미지가 서로 간섭 혹은 조응하는 것에 대해 어떤 과학자들은 시각을 처리하는 뇌의 부분과 청각을 처리하는 부분이 인접해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하나의 자극이 다른 감각을 동시에 활성화시킨다는 것인데 이는 공감각(Synesthesia)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시각과 청각이 생리적인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공감각에 대한 이 주장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음악을 듣거나 이미지를 볼 때 다른 감각을 통한 경험이 동반되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악보는 음악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현재까지 주로 사용되고 있는 서양 음악 기보법은 9세기경 종교 음악을 보전할 목적으로 수도사들에 의해 고안되었다. 그리고, 흔히 클래식 음악 시대(common practice period)라고 불리는 바로크, 고전, 낭만 시대를 거치면서 기보법은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음악 언어가 되었다. 악보는 작곡가와 연주자 간의 대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자 음악을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였으며, 음악가들은 복잡한 음악적 정보들이 악보를 통해 완벽하게 기호화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20세기 초 예술의 전분야에 걸쳐 영향을 끼친 아방가르드 운동은 새로운 음악 언어, 음악 시스템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이 글에서는 그래픽 악보(graphic notation)를 중심으로 낭만주의 이후 미술과 음악의 역사에 나타나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실험들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미술 속의 음악: 낭만주의에서 바우하우스까지

“음악이 이미 18세기말에 실현한 것을 미술에서는 이제 겨우 시작하려고 한다. 수학과 물리학은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는 규칙의 형태로 미술가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Paul Klee, 1928)”

시각 예술에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낭만주의 시대이다. 낭만주의 화가인 룽게(Philipp Otto Runge, 1777-1810)는 음악을 모든 예술의 기본이 되는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생각하고, 푸가, 교향곡과 같은 음악적 구조를 그림 속에 담아내려고 했다. 슈빈트(Moritz von Schwind, 1804-71)의 경우 <Cat Symphony>라는 그림을 통해 시각적 상상력을 기보 시스템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음표 대신 고양이를 사용하였는데 고양이의 동작과 움직임으로 음악적 리듬과 정서를 나타내었다. 전통적인 서양의 기보법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음색 정보를 슈빈트는 고양이를 사용하여 장난스럽게 표현하였는데 이는 20세기 이후 등장하는 새로운 기보법에 대한 예고였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88)는 음악, 연극, 시, 미술이 하나로 통합되는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을 꿈꾸었는데, 이는 보들레르와 같은 문인들 뿐만 아니라 르동(Odilon Redon, 1840-1916) ,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와 같은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음악에 대한 관심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음악적 정서를 이미지로 나타내려고 하였다. 알레고리와 메타포의 표현에 치중하였던 화가들에게 음악의 무형성, 추상성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탈출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Wassily Kandinsky, Composition 7, 1913.
(이미지 출처: http://www.ibiblio.org/wm/paint/auth/kandinsky)

Paul Klee, Polyphon gefasstes Weiss, 1930.
(이미지 출처: http://www.museumdermoderne.at/index.php?id=347)

칸딘스키(Wassily Kandinski, 1866-1944), 클레(Paul Klee, 1879-1940)와 같은 바우하우스(Bauhaus) 예술가들은 시각 언어의 체계화를 위해 음악이 기본 틀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칸딘스키는 음악의 추상성이 청자에게 상상과 해석의 자유를 준다고 믿었고, 시각의 세계에 고도로 추상화된 음악 언어를 적용하려고 노력하였다. 칸딘스키는 바그너, 스크리아빈(Aleksander Scriabin, 1872-1915),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쇤베르크는 칸딘스키의 <Compositions> 시리즈의 형태와 색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클레는 음악 선생님인 아버지와 가수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그 자신도 어려서부터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 결국 미술가의 길을 선택하긴 했지만 여전히 음악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고 음악가들과의 교류도 꾸준히 유지하였다. 클레는 미요(Darius Milhaud, 1892-1974), 쇤베르크 같은 당대의 현대음악가들과도 활발히 교류하였지만 그의 작품들은 주로 바하나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았다. 클레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미술 교육 이론에도 반영하여 다성(polyphony), 리듬과 같은 음악 개념을 자주 사용하였다.

“추상화를 막는 중요한 장애물 중 하나가 과학적인 발견에 의해 제거되었다. 이 과학적 발견이란 원자를 더 쪼갤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원자의 분해는 세계의 분해와 같은 의미이다. 갑자기 가장 두터운 벽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위태로와 보인다… 나는 내 눈 앞에서 돌이 갑자기 분해되어 사라진다고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예술은 자연보다 더 큰 영역이었지만 이제 둘 다 독립적인 영역이란 걸 알게 되었다. (Wassily Kandinsky, 1913)”

Josef Albers, Fuge, 1925.
(이미지출처: http://www.flickr.com/photos/kontent/233660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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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출처는
http://som.saii.or.kr/archives/feature/sound-contemporary-art/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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