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사유의 악보] 후기랄 것 없는 단상

유산균발효중 2011. 7. 20. 01:04

4월에 책을 손에 넣고부터 지금에까지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한 악장씩 읽어왔던 『사유의 악보』를 드디어 완독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가 품은 관심의 근원이 궁금했고, 어디로가는 길인지도 궁금했었다. 
그의 이력을 보고 났을때 생겨났던 모종의 의혹,
미학이라는 분과학문, 이를 가장 확고하게 고수하려는 그 지점이 어쩌면 혼종성과 이질성으로
분류법에 관한 관심과 번역의 문제에 천착하게 했으리라는 의혹.-여전히 의혹으로만 남아있는 그 의혹을 잠정적으로나마 풀어보리라 생각했다.

랑시에르에 관해 그가 설명했을때, 조금은 해명되었다. 어쩌면 오독일 수 있으리라.

삶에 대한 질문과 회의가 지금보다 훨씬 많고 거칠고 투박하게 표현되었던 시절.
난 김승옥에 '현혹'되어있었다.  

김승옥이 질문에 대해서 말했을때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20대는 질문할 수 있는 나이라고,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는 누군가에게 답해야 하는 나이라며."(정확한 표현은 생각나지 않지만.)
나의 질문에 대한 정당성을 얻게 한 김승옥의 한마디 덕분에 난 답하는 사람이거나 잘 정리하는 사람이기보다 질문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이를 다시한번 정식화 할 때가 되었다. 내년이면 30대이니 말이다. 

-올바른 질문, 
정당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버젓이 살아있는 그것을 향하여,
허구적이지만 모두에게 중요한 실체로 여겨지는 그것을 향하여,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개입하고 만들어나갈 것인가.
그 방법을 간구할 수 있는 질문들.
이 질문들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불가능성 자체의 실현
 
+ 성의 역사에서 푸코가 썼던 그 문제의식이 드러나며, 푸코가 말한 철학적 훈련을 방법론 자체로 삼았다는 점에서 
푸코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었던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읽고났을때.
내가 느꼈던 무언가 허전함의 이유를 알게 해 준 강의.
고맙고 고맙다. 무엇보다 정성스런 사인이...

@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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