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214

실비아

뜬금없이, 그녀가 했던 이러저러한 일들이 마음을 깊이 울린다. 스스로는 예술가가 아니었으나,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손해를 감수하고 세상에 연결해 줄 수 있는 대담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예술가로서도 아니고, 그것을 소비하는 사업가로서도 아니고, 이 둘을 연결하는 media로서의 그녀의 역할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경제적으로 엄청 성공했다거나, 결과물들에 대해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 것은 아니었을것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율리시즈도 없었을 것이며. 헤밍웨이도 없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녀에게서 성도로서의, 이론을 연구하는 자로서의, 그리고 인간을 돌보는 자로서의 사명과 소임에 대해, 뜬금없이, 배운다.

속좁은 일상_2 2016.10.26

미술관 옆 동물원

고양이와 강아지, 비둘기를 섭렵한 경력으로! 남의 집 토끼에게 손을 뻗는 그녀, 그녀의 뒤꽁무니를 열심히 따라다니는 또 다른 토끼. 검은 토끼의 눈은 구슬을 박아놓은 것처럼 반짝이고 동그랬다. 덕분에 이레가 토끼의 눈을 찔러서 격리조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파리의 여름. 한참동안이나 이어진 토끼와의 추격전을 마치고 복귀. 미술관에 없던, 동물원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요즘.그러나, 미술관과 도서관의 멍때림 순간이 그립단 사실은 숨기지 않으련다.

속좁은 일상_2 2016.08.26

1. 몇 주전만해도 듬성듬성하게 봉오리들만 보였고, 요란법석을 떨며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아직 가지 곳곳에 꽃들이 덜 피어 있었는데...꽃이 지기전에 자주 봐 두어야지 싶었다. 며칠째 비왔다 해떴다 오락가락하는 파리의 변덕스런 봄 날씨 덕에 만개하다못해 꽃잎이 비처럼 떨어져있다. 한국의 각종 벚꽃길, 봄꽃 축제에 비하면 '달랑? 한그루?'라는 말이 나올지 모르지만, 이 한그루 만으로도 봄의 존재감이 충분하다. 주먹만하게 분홍빛 화장지를 구겨놓은 것 같다. 단지 한 그루일 뿐인 나무가 많은 사람들을 오래도록 그 옆에 머물도록 이끈다. 가로등이 아닌 등대의 모양새다. 2. 엄마의 피사체 노릇 중인 이레에게 눈웃음을 짓던 한 사람이 사진을 찍어주겠노라 제안한다. '고놈 참 잘생겼네요' 정도가 될만한 인사말을 ..

속좁은 일상_2 2016.04.28

그날, 그리고 오늘

2014년 4월 21일, 부활절 방학을 맞아 몇 주 전 미리 예약해 두었던 떼제를 향해 가고있다. 5일전 있었던 그 사건 때문에 우리는 잠시 주저했다. 아무것도 할 힘이 없었고,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과 아픔의 극단을 달리고 있었다. 차라리 한국에 있었다면,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면 조금 덜 답답했을까? 기차에 오르며 산 르몽드 신문에는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3면에 실렸다. 300여명이 죽고 탈출한 선장이 체포되었다는 소제목과 함께..저 지구의 반대편, '김정일, 강남스타일, 삼성' 정도의 키워드만 나열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미지의 나라에서 일어난 사고 기사를 자세히 담았다.아무도 구조하지 않고있다는 친구의 메시지는 의례히 이런 사건이 있..

속좁은 일상_2 2016.04.16

적응기

한국처럼 예배가 끝나고 함께 식사를 하는 분위기는 아닌 이곳 교회에서 오랜만에 교제다운 교제를 나누었던날. 성도의 교통은 언어나 문화를 뛰어넘어 서로를 이해하게하고 넉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동시에 이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했던 나날과 지금도 누리지 못하는 누군가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요하네스의 프랑스교회 교파 계보에 대한 설명과 또 프랑스 교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길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상적이었던 사실, 프랑스는 지금 유럽에서 유일하게 크리스찬의 숫자가 증가하는 나라라고 한다. 다만 이 늘어나는 수를 재정적인 부분이나 구조적인 부분에서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여러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교회의 역사에 대해 매우 잘 알고있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정확한 수치를 밝히며 ..

속좁은 일상_2 2016.02.22

프로망제님께 싸인받다

아, 넘 좋은데, 아, 이 할아버지 진짜 멋진 작가인데... 어디 딱히 자랑할 곳도 없고.ㅋㅋㅋ 여기에다 주저리주저리. 이 할아버지, 7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두시간 반이상이나 앉아 한명한명의 이름을 물어보고 싸인을 해준다. 혹시나 틀릴지 모르는 스펠링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음에 쓸 색을 고르느라 잠시 포즈 상태로 몇초. 30분넘게 줄을 서서 하고싶은 이런저런 이야길 머릿속으로 생각해봤는데, 이렇게 작품활동을 하는 분에게 말을 걸기가 힘들다. 멍하니 그의 작업을 지켜본다. 뵙게되어 영광이라는 소심한 인사에는 짧지만 강렬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다. 내 뒤에 남은 사람은 겨우 4명. 약속된 7시를 훌쩍 넘겨 사인회가 끝난다. 단지 30유로짜리 전시도록에 남겨준 이런 작품이라니. 아, 오랜만에 팬심돋..

속좁은 일상_2 2016.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