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 425

키스해링과 퍼블릭아트에 대한 단상

한 청년이 지하철의 게시판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 낙서가 유명해지자 사람들은 청년에게 다가와 말을 걸기도 하고, 그림에 대한 코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미술을 전공하는 청년은 그들과 대화하는 것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기도 하고 대중과의 소통에 만족하게 된다. 경찰에 경범죄로 체포되기도 한다. 검은 흑판에 달랑 분필 하나만을 들고 단숨에 그려낸 그림들은 '사랑' '평화'등의 공익광고스러운 메시지를 담고있다. 거대해져가는 미디어와 삶에 깊이 침투해버린 자본에 대한 예술의 응답은 POP아트로부터 시작되었다. 팝아티스트들은 변해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돈을 벌 수 있는 작업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60년대 라우셴버그, 리히텐슈타인 등으로부터 워홀에서 그 정점에 이른 팝아트는 키스해링에..

[재와 빨강] 낯설 것 없는 일상의 디스토피아

[재와 빨강] 낯설 것 없는 일상의 디스토피아   『재와 빨강』에서 편혜영은 또 다시 우리를 낯선 곳으로 데려간다. 그녀의 인물들은 일상을 벗어난 잿빛 장소(『사육장 쪽으로』,『아오이 가든』)에서 원인과 대처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건을 경험한다. 우리는 소설 속에 그가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만나는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겪고 있는 사건이 현실인지 꿈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이야기들을 다 읽은 후에, 한 숨을 돌리며 마지막장을 덮는다. 그때서야 절대 발을 들여놓기 싫은 소설의 장소들이 내가 앉아있는 이곳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미 수 십장의 페이지를 넘기며 읽었던 이야기들이 일련의 경고 표지판이었음을 말이다. 그가 공항 여기저기 붙어있는 검역안내문과 전염병 예방수칙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

[악기들의 도서관] 불협화음의 교향곡

김중혁 김중혁의 작품들은 발표할 때마다 평균이상의 반응을 얻는 듯한데, 최근 작들은 이 책에서처럼 일종의 수수함이 잘 베어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이 책은 단연 김중혁의 베스트다. (그래서 난 빠른 시간 내에 유명해진 작가들의 경우, 초기작을 선호하는 편이다.) 소설보다 먼저 김중혁이 쓴 한겨레의 칼럼을 읽고 사실 좀 실망했었더랬다. 소설가는 소설로 말해야 한다는게 일반적인 편견을 깨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냥 평범한 그리 파격적일 것 없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이다. 어쨌든, 책으로 돌아가서. 각각의 단편은 독립적이면서도 음악, 악기라는 하나의 줄기를 타고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하나가 되는 교향곡처럼 혹은 CD의 트랙들처럼 연결되어 있다. 확실히 그의 글들은 군더더기 없고, 명쾌하며, 재치있다...

[은교] 욕망, 창조의 시작

박범신 갈망 삼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를 단숨에 읽었다. 가끔씩 휙휙하고 소설이 읽힐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나보다. 박범신의 글은 구김없이 매끈하게 읽힌다. 그에 대한 유일한 기억은 . 이 책 역시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더랬다. 역시 인간의 육체와 자연에 대한 탐미주의와 욕망이라는 박범신의 주제와 만나고있었다. 가끔씩 겹쳐지는 소재들도 한 작가의 것임을 증명한다. 소재나 주제 면에 있어서 는 그리 새로운 소설이 아니었다. 이미 인간의 욕망에 관해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듣고 읽어왔고, 중년이나 노년 남성이 소녀에 대해 가지는 판타지는 롤리타류의 소설로 분류될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로 대표되는 욕망의 대상. 즉, 죽어있는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는 죽은 시체 같은 육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도시에서 살아남는 몇 가지 방법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0 도시에서 살아남는 몇 가지 방법 2000년대를 정의할 만한 화두는 무엇일까? 문학은 80년대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데올로기적 담론, 90년대의 자본주의와 인간소외라는 주제를 소중하고 진지하게 담아내왔다. 2000년대에 떠오른 전혀 새로운 주제와 문제의식들을 문학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을까? 나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을 추천한다. 문학동네에서 펼쳐놓은 은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성취임은 물론이고, 2000년대라는 동시대에 대한 문학의 사회적인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를 대표할 만한 작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임에 틀림없다.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대답해 본다면, 2000년대의 화두는..

brothers, 2009

전쟁의 비극과 가정의 소중함이라는 말할것도 없이 진부한 두 소재를 흡인력있게 만들어 낸 영화다. 아마 짐 셰리단과 세 배우의 합작이 아닐까 싶다. 미국이라는 사회에 있어 아프간 전쟁은 큰 트라우마 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마치 한국의 6.25세대가 가진 트라우마와 같이. 아마 향후 몇 세대 동안 post-9.11 효과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많은 정치인들에겐 좋은 '꺼리'가 될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돌아온 쌤에게 그의 아버지가 베트남 참전 이후 자신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 아들은 전쟁에 참전한 용감한 군인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끔찍한 참상을 겪고 죽음의 문턱을 넘어 자괴감과 환멸감에 시달리는 한 개인을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아버지로 인해 제2차 트라우마를 겪으며 ..

줄리 앤 줄리아

요리하는 여성에 대한 판타지를 자극할까봐 한 구석에 모셔둔 영화를 보게됐다. 무료한 삶의 돌파구로서 요리를 시작한 두 여인 그녀들은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고.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으며, 펜팔과 블로깅이라는 매체로 누군가와 소통한다. 나이가 들수록 빛나는 배우 메릴 스트립, 그녀의 변신을 본 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영화. 무료해질 때 쯤 살짝의 위로를 받을만 한 웰메이드 영화. 날 응원하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영화. 그녀들의 삶에 cheers~! 그리고 결정적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