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도시에서 살아남는 몇 가지 방법

유산균발효중 2010. 6. 22. 19:31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0

 

도시에서 살아남는 몇 가지 방법

2000년대를 정의할 만한 화두는 무엇일까?

 

문학은 80년대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데올로기적 담론, 90년대의 자본주의와 인간소외라는 주제를 소중하고 진지하게 담아내왔다. 2000년대에 떠오른 전혀 새로운 주제와 문제의식들을 문학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을까? 나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추천한다. 문학동네에서 펼쳐놓은 <젊은 작가상>은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성취임은 물론이고, 2000년대라는 동시대에 대한 문학의 사회적인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를 대표할 만한 작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임에 틀림없다.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대답해 본다면, 2000년대의 화두는 ‘도시의 일상’이 아닐까싶다.

거대하지만 막상 실체는 없으며, 강해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나약함을 가진 도시. 이 괴생물체인 도시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 즉, 도시인의 일상은 2000년대 문학에서 주목하고 있는 새로운 소재이다. 이 일군의 젊은 작가들 역시 도시라는 새로운 공간과 도시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하여 치밀하게 집중한다. 작품집에 실린 일곱 개의 단편은 공통적으로 도시의 일상을 각양각색의 문체와 소재로 때로는 낯설게 때로는 익숙하게 포착하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젊은 작가 군단은 생활의 팁을 전해주고자 한다. 이들의 가이드를 받으면 우린 도시에서 안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 감시망을 주의할 것!

 

당신에게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압도될 만큼 커다란 건물과 밤낮 구분 없이 밝은 조명,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 소비와 동력의 과잉은 너무도 익숙한 도시의 얼굴이다. 이 얼굴을 조금만 줌-인해보자. 「1F/B1」(김중혁)은 이 익숙함을 비뚤어 거대한 외관 뒤에 숨겨진 부분을 기묘하게 파헤치고 있다. 네오타운을 둘러싼 음모로 인해 도시의 모든 전기가 꺼지고 암흑과 적막, 정지만이 감돌게 되자,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위태로운 곳에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어떠한 안전장치도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는 가장 뛰어난 기술자인 조천웅도 폐소공포증에 시달릴 뿐이다. ‘/(슬래쉬)’는 단순히 층과 층 사이 뿐 아니라 직업이라는 기준으로 나눠지는 새로운 도시계급의 형성, 네오타운을 중심으로 구획 지어지며 경제적 가치가 매겨지는 도시 공간의 특성을 잘 보여주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뻔히 존재하고 있지만 막상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지하 건물관리실. 이 무언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이 내가 일하는 빌딩숲의 어느 건물에서도 일어나고 있진 않을까? 마치 빅브라더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SF소설 어딘가에 나온 미래도시 같기도 한 네오타운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형상화한다. 그 사이의 공간에서는 오늘도 뭔가 꿍꿍이가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니 도시인들은 그 감시망을 경계해야한다.


* 도시의 경계선을 넘지 말 것!


늘 분주하고 쉴 새 없는 도시.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우리는 생경한 상황과 낯선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우리의 몸과 맘을 자극한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릴 수도 있고,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할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도시로 돌아가면 체면과 의무감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해야만 한다. (「저녁의 구애」, 편혜영, p.67) 도시가 아니기에, 죽음과 삶은 경계가 무너지고 사랑과 이별의 머뭇거림도 무너져버린다. 그 흐물흐물한 유동체가 도시에서는 단단하게 자신을 지킨다.

 

도시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특히 도시가 만들어 낸 대다수의 소시민과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그려낸다. 서울역과 인천을 오가는 지하철에서 수는 같은 공간에 살지만 이방인일 뿐 인 중국인 불법체류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 자신도 비정규직으로서, 서울의 경계인 인천이 아닌 내부에 존재하길 원한다. (「중국어수업」, 김미월) 수는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쓰엉과 마찬가지로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어느 역에 몸을 싣고 있다. 이 사이에서 우리는 도시를 경험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안정적이거나 평온하지는 않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이 삶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안다. (p. 205) 하지만 경계를 넘어서면 안 된다. 우린 도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니까.


 

* 서로에 대해 묻지 말 것!

 

인간 존재와 인간 사이의 소통에 대한 탐구라는 오랜 주제는 시대가 변해도 녹슬지 않는다. 우리의 도시인들은 미디어로 대변되는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저 창문 속 누군가와 개그맨을 매개로 소통하고(「개그맨」,김성중), 때론 그것으로 인해 단절된다. (「변희봉」,이장욱) 그래서 어디에도 ‘진짜’는 없다. 진실이 통하지 않는 대화는 ‘밴희봉 선생’을 만난 만기의 감동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작정 비를 피해 어딘가로 달려가야만 할지 모른다. 결국 도시인들이 진정으로 소통하는 방법은 침묵 뿐이다. 침묵은 외부의 한기를 막아주는 두툼한 외투처럼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 (「개그맨」,김성중) 그리고 ‘버드케이지’의 사람들처럼 인생의 1권을 들추지 않으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표류하는 소시민들의 삶은 또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 누구도 자신의 진정한 가족이 되어주지 않는 아픔을 간직한 채. (「돌아오다」,정소현)


*그래도 살아가 볼 것!

그럼에도 끊임없이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여전히 우리 자신이 ‘존재’함을 증명해준다. 그렇게 계속 우주공간으로의 탈출을 희망하면서 도시인은 꾸역꾸역 살아갈 것이다. (배명훈, 「안녕, 인공존재!」) 우리의 존재가 폭발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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