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 425

[Toilet]

오기가미 나오코의 매니아는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녀의 모든 영화를 보았다. 영화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야 워낙 유명하기도하고, 워낙 그녀의 공식에 차곡차곡 잘 맞춰져 있어 따분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기가미 영화는 모타이 마사코라는 브랜드같은 배우로 인해 시작되고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의 세계관을 가장 잘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의 역할로 모든 영화에서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표정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뚱한 표정으로 배경에 꼴라쥬로 덧입혀진 것 처럼 보이는 할머니는 이들 가족에게 타자 혹은 외부인 같아보이지만, 알고보면 내부인(서구인)들의 갈등을 잠재우며 화합시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영어도 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화장실에서 나오며 내쉬는 깊은 한숨을 이해하는 과정은 이..

[24city] 도시가 살아온 흔적

1.청두라는 도시, 군수산업의 요충지 아마 한국 전쟁 때 북한에 전쟁물자를 대며 엄청난 성장을 거듭한 것 같다. 이제 이 도시에는 공장의 옛터가 주상복합산업단지로 변해간다. 여전히 공존하는 산업 노동자와 자본주의 세대들의 마주침은 중국의 빠른 성장과 그 이면에 많은 부딪힘이 느껴진다. 2. 도시의 역사는 살아남은 사람들로만 확인할 수 있다. 팩토리 420에서 위장조로 근무했던, 청두로 오는 배에서 아이를 잃은 하오다리 베이징에서 온 여자 사요화 부모님을 꼭 24city에 모시고 싶은 쇼핑 대행업을 하는 수나 팩토리 420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들은 여전히 그 곳을 기억하고, 역사로서 살아간다. 3. 지아장커.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우직한 감독. 인생에 대..

[난 당신이 좋아] 고통 속에 부르는 아가

김병년 목사님. 1학년인가 2학년 바이블 훈련때 주강사로 오셨던 분. 강단진 체구에 축구를 즐기시고, 불을 뿜는 강렬한 눈빛을 가졌으며, 매우 간단 명료한 상담을 해주셨던 인상으로 남아있는 분. 정기구독하는 시심을 받으면 가장 먼저 펴보는 페이지는 그분의 글이다. 셋째 아이를 낳다가 식물인간이 된 사모님과 함께 사는 김병년 목사님의 책이 드디어 나왔다. 일년전부터 소문을 듣고 눈빠지게 기다리던 책. 12월 28일 출간일에 따끈따끈하게 읽었다. 고통이 우리 삶에 남기는 흔적은 무엇일까? 더 강한 사람이 되는것?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끈기를 배우는 것? 그는 고난 자체가 축복이라고 무작정 말하는 비인격적이고 금욕적인 신앙이 아니라, 고난을 지나는 과정에서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신 앞에 어떤 태도..

[러블리, 스틸]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도배 된 것만 뺀다면 꽤 은은하게 차곡차곡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 우아한 노년의 로맨스나 가족영화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기억이나 추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한해의 마지막날을 함께해준 영화. 일상적이고 편안하게 함께하는 식사가 서로를 기억하는 가장 큰 방법일 수도 있겠다.

[내 젊은 날의 숲, 죽음과 생명이 잇대어 있는 곳]

1. 나무 편백나무가 유명하다던 그 수목원 길을 엄마와 걸었다. 여름엔 이 편백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삼림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비하다던 그 숲. 11월부터는 입산이 금지되었기에 숲의 둘레만을 걸으며 보아야 했지만, 오히려 그 거리만큼 나무의 모습은 더 잘 드러났다. 엄마와 나는 때로 빠르게 그리고 느리게 걸으며, 때때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나무의 호흡을 받아들였다. 어느 때보다 요즘 엄마와 난 나무가 있는 곳을 즐겨 찾는다. 산을 좋아하며 시적인 감성을 중년까지 유지하는 엄마,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육체의 움직임이 뇌의 움직임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것을 믿게 된 스물아홉의 딸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병간호를 통해 아빠의 의식을 되살리거나 사회에서의 성공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기..

[이것이 인간인가]

상징적 의미의 아우슈비츠를 남용하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고통 정도가 책상머리에 앉은 내가 할 수 있는, 머리가 곤두서는 상상의 최대치라는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인간의 모든 고통을 상징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든 노력에 대해 냉소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와 마주치는 모든 것을 아우슈비츠로 만들려는 환상적 현실인식에 대해 반대한다. 아우슈비츠보다 더 끔찍한 인간의 환상에 오해에 대해 조금은 우울해졌다. Käthe Kollwitz보다 이 글을 잘 설명하는 그림은 없으리라. http://www.a-r-t.com/kollwitz/images/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1. 소피아 영화는 톨스토이에 관한 전기인 The last station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한다. 흔히 톨스토이의 말년은 그의 사상(공동소유제도나 무저항주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귀족출신의 부인과의 불화로 인해 쓸쓸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영화는 이러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그의 마지막 생애 1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톨스토이의 아내인 소피아(연기잘하는 헬렌미렌)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그려져있는데, 톨스토이와 그녀의 불화를 남편과 가족을 사랑하는 한 여인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뼛속까지 귀족인 그녀에게 가족의 미래를 져버리고 저작권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려는 톨스토이의 선택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소설은 소피아라는 여성에 의해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 소피아는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