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para-screen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유산균발효중 2010. 12. 17. 23:36
1. 소피아

영화는 톨스토이에 관한 전기인 The last station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한다.
흔히 톨스토이의 말년은 그의 사상(공동소유제도나 무저항주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귀족출신의 부인과의 불화로 인해 쓸쓸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영화는 이러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그의 마지막 생애 1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톨스토이의 아내인 소피아(연기잘하는 헬렌미렌)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그려져있는데, 톨스토이와 그녀의 불화를 남편과 가족을 사랑하는 한 여인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뼛속까지 귀족인 그녀에게 가족의 미래를 져버리고 저작권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려는 톨스토이의 선택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소설은 소피아라는 여성에 의해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 소피아는 아마 속물적인 귀족일 줄 모르겠으나, 영화에서는 톨스토이주의자들보다 더욱 사랑을 믿으며, 남편과 그의 소설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여인이다.
나는 영화의 이런 새로운 시점이 좋다.
톨스토이의 가정의 불화를 어떻게 하나의 이유로만 이해할 수 있겠는가?



2. 발렌틴

영화의 시점은 발렌틴이라는 톨스토이즘 운동에 경도된 젊은이의 시선으로 그려져있다.  
발렌틴은 톨스토이의 비서로서, 가족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인물이다. 톨스토이주의자들의 공동체에 들어간 그는 자유와 사랑이라는 정신에 깊이 매료되어 있으며, 톨스토이를 진정한 선각자로 생각한다.
발렌틴과 마샤라는 인물을 통해 현실을 벗어난 이상이 인간을 얼마나 얽어매는 족쇄가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발렌틴에게 톨스토이는 이상 그 자체일지 모르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 화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교회를 어렵게하는 인물군,
무한정 이상적인 인간이 얼마나 사람을 상하게 하셨는지 말씀하셨던 것이 떠오른다.

무작정 이상적인 사람들은 공동체와 타인을 그 이상에 맞추어 재단해내고, 결국 그 이상과 전혀다른 결과를 낳을 뿐이다.
아마 톨스토이의 공동체도 내부적으로 그런 문제가 있었던 것같다.
발렌틴이 느끼는 고뇌는 소위 이상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모든 공동체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한 젊은이가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 잘 그려지고 있다.




3. 블라드미르

블라드미르라는 사람이야말로 톨스토이를 신화화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그는 톨스토이를 아이콘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톨스토이보다 더 톨스토이주의자인 블라드미르는 저작권을 전 인류를 위해 환원하라고 종용한다.
주변의 한 인물을 사랑하지 않는 블라드미르는 전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 일을 한다고 말한다.

전 인류를 위해 톨스토이의 죽음을 소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스스로는 진정성 있었을지 모르는 톨스토이 운동.
그러나 농노제도가 해체되어가고, 사회가 급격히 변화되어 가는 러시아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블라드미르의 이런 행동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꼭 생각해 볼 일이다.


4.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젊은 시절은 매우 모험적이고 기존 사회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정열로 가득차 있었다. 물론 방탕하기도 했고. 영화에서 톨스토이는 여전히 부인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힐 수 없는 고뇌에 사로잡혀 있다.
이미 그는 많은 자본을 누리고 있었고,
톨스토이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성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가 가장 먼저 설득했어야 할 사람은 소피아가 아니었을까?
가장 가까운 이가 인정하지 못하는 그의 사유가 멀리있는 많은 이들을 경도시켰다는 대목은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그만큼 톨스토이의 말년은 힘들었을것 같다.


신념을 따라 산다는 것. 말한대로 행동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신념에 따라 살면서도 자유를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덧, 헬렌 미렌의 연기는 정말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