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 425

[엘 시크레토]

난 이 영화를 지배하는 그리움과 아련함의 정서에 그리 공감하지는 못한듯하다.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옛 사랑의 그림자' 식의 여운은 아카데미의 이목을 끈 한 중요한 요소였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가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의 상영작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이 아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리는 복수와 용서이며, 이를 잘 포착하고 유려한 이야기로 잘 만들어 냈다. 헐리웃 배우들의 정제된 외모와 연기가 지겹다면 아르헨티나 영화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을듯. 그만큼 배우들의 자연스러움이 극에 몰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조하자면, 이 영화가 진부한 스토리라인을 벗어날 수 있었던건 마지막 장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굳이 이걸 스릴러나 미스테리로 번역하는 센스들은 참 맘에 안든다.

[카모메 식당]

핀란드에서 소박한 일본 가정식을 파는 식당 우리에게 필요한 건 화려하고 먹음직스런 정식이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소박한 밥상이 아닐까. 밥을 먹는 모든 사람들이 위로 받을 수 있는 신기한 식당 갓챠맨 주제가의 가사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사토미씨와 미도리의 만남 장면 인상적인 몇몇 장면은 미도리가 토미와 개구리 종이접기를 하며 노는 장면 핀란드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는 마사코가 남편이 집을 나간 핀란드 부인을 위로하는 장면 대의를 위해 무언가를 도모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함의 기쁨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

[고래] 그것은 삶의 법칙이었다.

"그것은 ...의 법칙이었다." 보잘것 없었던 버려진 한 여자의 삶이 무한대로 팽창해가는 과정을 연결하는 천명관식 후렴구이다. 읽는 내내 구역질나게 만드는 인간의 '욕망'을 대범하게 주조해놓았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금복의 죽음에 대한 묘사 _p.301)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갖다 붙여놓은 듯,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불운을 나열한 듯, 그렇게 금복의 삶은 흘러흘러간다. 어떠한 가치평가도..

목수정식 한국 보기

목수정의 전작을 꽤 재밌게 본 편이라, 신간이 나왔을때 바로 구매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이 책은 자의적이다. 그래서인지 매우 쉬운 책임에도 가독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작가로서의 목수정은 활동가 혹은 칼럼니스트로서의 그녀를 떠올리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있다. '야성의 사랑학'이라는 야심찬 제목에서 우리는 '사랑'과 '야성'에서 추론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소재를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사랑'에 대한 여러 차원의 사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야성이라는 것을 목수정 식으로 일종의 자신의 감정에 당당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따라서 절대빈곤이 만연하던 시절의 소박한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없음에 서글퍼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일상의 무기력함을 너무 쉽게..

[2006.06] 창작과 ‘파르헤지아(진실의 용기)’– 박이소의 예술

창작과 ‘파르헤지아(진실의 용기)’– 박이소의 예술 치우금속공예관 초청 심포지움 강연(2006.6.10,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 이영철(계원조형예술대학 매체예술과 부교수) 이 자리는 아마도 예술 창작을 함에 있어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다루어지리라 기대를 하고 오신 분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대부분 공예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조형예술대학의 교수이긴 하나 ‘조형’에 대해 특별히 별다른 흥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교환가치와 시장에 관심이 없는 저로서는 그 결과물에 대해 무관심하며, 발상이나 전개 과정, 그리고 그것이 전시 공간에서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중요하지요. 가난하게 살며 작품을 지속하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