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214

어떤 금요일

정신없이 일어나 부슬부슬 비오는 흐린 날씨에 우중충한 강의실에 앉아서 멍하니 수업을 듣는다. 연말이라 그런지 정서적 육체적으로 매우 허약해진다.한번도 한국이라는 공간이 그리운 적은 없었는데, 요즘, 자연스럽게 앉아 편안이 수다를 떨 사람들이 그립다. 학교 카페에 앉아 샐러드를 우걱우걱 거리다가 지나가던 줄리아와 대화가 시작됐다. 회사에서 어제 받은 따끈한 식권(?뭔가 한국어로 번역하면 웃긴데, ticket restarant이라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점심값 정도 되겠다. 식료품을 살때도 쓸수 있고, 식사를 할때 식당에서 이걸로 계산을 할 수도 있다.)을 보여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녀의 '위대한' 식당티켓으로 -그도 그럴것이 그녀가 받는 월급이나 일 계약 조건에 비해 식당티켓 뭉치는 참으로 위대해 보였..

속좁은 일상_2 2014.12.12

한낮의 브라질 음식

동네 산책코스에 자리잡은 브라질 음식점. 작은 골목 모퉁이에 자리잡은 다소 허름하고 조악한 데코임에도 저녁에 사람들이 늘 가득하다. 오랜만에 쉬는 토욜 오전이 아까워 외식이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쓰윽 들어갔다. 다리를 쩔룩거리는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전형적인 브라질몸매의 아저씨가 종이 메뉴판 대신 이전 손님이 보던 칠판 메뉴판을 가져온다. Brasilien이 뒤에 붙은 음식을 시켜놓고는 이 공간의 브라질스러운 색상에 대해 한참이나 구경해본다. 이곳에 있어서 좋은 점은 정말 다양한 국적의 식당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튼 저녁시간이 북적거리는 이유를 확인했으며, 한참동안이나 배가 꺼지지 않았던 토요일 ​

속좁은 일상_2 2014.12.06

11월의 일상

아 의미없다.라는 말이 유행이던데, (나에게 이걸 알려준 아이가 이걸 보면, 혀를 끌끌차면서 '지난지가 언젠데'를 연발할 것이 눈에 선하다) 정신없이 짜여진 일정들로 하루를 채우다보면, 몇시간에 한번꼴로 2-3초씩 '아, 의미없다'는 단어가 휙 스친다. 이 지나가는 순간을 붙잡으려고 찍어둔 일상 사진들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12월이네. 작년 겨울엔 손에 입김한번 불지않고 지나갔는데, 올해는 시작부터 춥네. 그래봤자 영하로 떨어진 적은 없다. 11월에 찍은 핸드폰 사진들. 주일 오전예배대신 선택한 뤽상부르그 산책. 다시 혈압이 오르고 있다. 그래서 정신건강을 위해 오전에 좀 쉬기로 했다. 오랜만에 간 이곳은 주말 파리공원 풍경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준다. 우리동네 산책코스 jardin des pla..

속좁은 일상_2 2014.12.05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향하여

너무 깍듯하고 예의바른 말투 때문에, 나를 어른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약속이 있어 만났던 날에는 무조건 후기비슷한 문자를 남겨 인사를 전하고, 연말이나 명절엔 어김없이 연하장에 나오는 듯한 말투로 인사를 전한다. 한번은 형식적인 답문이 싫어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 할지 몰라 차일피일 하다가 자의반타의반 문자를 씹은 판국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 만남에서 그는 어김없이 그 일을 언급한다. 그의 그런 태도와 인사들이 마땅히 지녀야할 인간으로서의 '도리' 혹은 '예의'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 형식은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형식 때문에 오히려 가려진 내용은 없는지 질문하게 된다. 그는 나보다 훨씬 강렬한 사회성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기에서 사회성이..

속좁은 일상_2 2014.11.22

공간의 상대성에 관한 체험

두달간의 태풍이 지나갔다. 이 사안과 관련해 정리해 두어야할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곳을 익명으로 방문하는 몇몇의 면면을 알기에 소상하게 밝히기는 껄끄럽다. 김은 이 사안을 통해 평소에는 관심없던 하나님의 관심사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했고, 나는 잊고 있던 20대 초 오춘기 시절이 생각났으며, 꼰대근성에 대해 경계및 자각하는 기회가 되었다.무엇보다 집이라는 공간이 가진 상대적 크기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어 우리의 만족감이 매우 커졌다. 쓰고보니 암호같다. 아는사람만 알아들어라.

속좁은 일상_2 2014.11.17

농도조절

​ 각종 차나 커피에 비해서 우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잘 마시지않는다. 왠지 밥대신 먹는것 같은 느낌? 영국식 티에는 우유를 섞어마신다고하니, 어떨지 궁금했다. 사실 집에서 자주 마시는 얼그레이에 집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타면 되는 것을. 뭔가 이런곳에 앉아 모두들 마시는 모습처럼 하면 진정한 잉글리쉬 티를 음미할 수 있겠지했다. 옆에 앉은 사람들이 넣는 우유의 양을 확인하고, 농도를 맞춰본다. 뭔가 밍밍하다. 설탕을 넣어야하나? 아! 그래서 모든 테이블에 이 큰 양념병이 있구나? 과감하게 훅 넣어본다. 무엇이든 설탕이 든 것을 좋아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오늘은 '오리지널' 그들이 먹는 걸로 먹어보련다. 으악, 그런데 맛이 없다. 얼그레이를 좋아하는데도..맛..

속좁은 일상_2 2014.11.07

무한과 예술에 관한

바디우 할아버지의 세미나 중 강의실이 좁다는 이유로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해 이번주부터 북쪽 동네, 오베르 빌리에의 한 극장에서 열리는 바디우 세미나. 극장의 이름도 theâtre commune 이라니, 그의 연구와 잘 어울리다고 생각했다. 가는 길은 험란하고, 지하철 역을 나와서는 온 몸에 힘을 팍 주고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뻣뻣하게 걸어야만한다. 마오의 혁명사상이 유럽 68세대에게 어느정도의 영향이었는지는 대충 들었는데, 바디우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infini의 관점하에 마오를 되살린다. 극장이니만큼 세미나의 형식은 중국인으로 등장하는 한 인터뷰어와 철학자 알랭 바디우이다. 마오의 혁명사상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그 중국인 청년(물론 프랑스 인인)은 중국인의 시점에서, 시공간을 달리한 ..

속좁은 일상_2 2014.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