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 425

침묵의 병리학

1. 오종식의 블랙코미디는 오감을 자극하는 살과 피를 갖추고 있지만, 여타의 영화들처럼 찝찝하지 않다. 2. 시트콤의 가족은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하다. '아직' 이름을 갖지 않은 흰 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점점 기괴하게 변해가는 다른 가족들에 비해, 아빠만은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정상적'으로 살아간다. 사실은 가장 조용하고 일상적이며, 가족이라는 프레임에 딱 맞는 아버지만이 이 집안에서 가장 병리적이며, 비정상적인 인물이었다. 그것이 오종식의 가부장제 뒤집기이든,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든, 상관없이. 큰 흰쥐를 집어 삼키고 스스로 그 거대한 쥐가 되어버린 그에게, 게이 아들, 반신불수의 딸, 마조히스트 파트너, 금기를 풀어버린 엄마, 수상한 식모 등 모든 이들은 경쾌한 애도를 보낸..

[위험한 독서] 활자중독증 혹은 난독증의 시대

김경욱. 참 치밀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로구나 이제까지 수많은 동시대의 소설과 영화가 말하던 이 군중으로부터의 유리와 배제였다면, 이 소설은 무가치한 무언가로부터 스스로 이탈하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글자의 거대한 매트릭스에 사는 인물들은 매우 상징적인 소재와 내러티브로 둘러싸여있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한 낮 꿈과 같이 자신의 삶도 분리되고 이탈되기를.. 다른 목적에서 읽었지만 뜻 밖의 수확을 거둬들이게 해준 책.

모험가와 탐험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모든 사람의 환상과 애착을 자극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아니 내가 그런 것을 꿈꾸는 줄 알고 살았다.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언제든 훌훌 털고 보헤미안처럼 방랑하는 자유로운 삶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위에 책과 연필이 아닌 잡동사니가 올려져 있는 것이 싫고, 씻지 않은 손으로 누군가와 악수를 하게 되는 상황이 싫고, 지하철에서 누군가와 몸이 맞닿는게 싫고(그래서 때론 옆에 다리를 쩍벌리고 의기 양양하게 앉아있는 대한민국 아저씨들에게 한마디 하기도하고) 주전부리를 좋아하지만 손에 묻는 과자는 고르지않고 치킨을 먹을 때 손으로 먹는게 정말 싫고, 입었던 옷과 한번도 안입은 옷이 겹쳐져 걸리는 것이 싫고 가방을 아무데나 내려놓는 것이 싫어 늘 꼭 품고있고.. 그리고 결정적으..

걸어도 걸어도-결국 오즈 야스지로

러닝타임이 길어서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대한 과잉 평가가 나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는 작품이었다 특별히 튀는 연기도 없었고, 거슬리는 연출도 없었고,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는 장면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는 조금 더 말을 아껴야만 했으며, 조금 덜 친절했어야 했다. 결국엔 오즈 야스지로로 돌아갈 수 밖에! '꽁치의 맛'에 담긴 담백함과 깔끔함이 그리울 따름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터져버린 풍선

보는 내내, 마치 쪼글쪼글한 모양의 풍선에 숨을 불어 넣는 기분이었다. 볼 품없는 고무가 숨을 불어 넣을 수록 더 매끈하고 아름답게 변하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커지고 매끈해질 수록 선명하던 색이 얼마나 희미해져 가는 지를 깨닫지 못하게 된다. 풍선은 그 과도한 압력과 숨을 이길수 있을 만큼 질기지는 않음을 망각하는 순간, 그 풍선은 터져버린다. 그들이 살았던 구역이 역설적이게 레볼루셔너리 로드이며, 진정 그녀를 이해했던 것은 주인집의 자폐적이면서 파괴적인 정신병자 아들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혁명적인 선택과 삶이 환대받긴 힘들다는 반증이 아닐까. 삶과 희망에 대한 이 영화의 냉소에 난 오히려 다시한번 "계획에 대한 도그마적인 믿음이나 자기 합리화 없이 살아가기" + "일상에 다시금 의미를 ..

El Bano del Papa 아빠의 화장실

우루과이의 작은 마을에 교황이 방문한단다. 신앙심깊은 마을사람들은 교황의 방문이 그들을 부유하게 변화시키는 신의 은총이라 굳건하게 믿는다. 자전거로 국경을 넘어다니며 밀수를 통해 가족을 부양하는 아빠는 딸의 눈에 보기엔 부끄러운 범법자이자 주쟁뱅이일 뿐이다. 아빠가 자전거에 짊어질 수 밖에 없었던 부끄러운 타협 #종교성이 세속성과 얼마나 비례하는지 보여준다. #교황이 얼마나 많은 작은 마을을 저렇게 쑥대밭으로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