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 425

웅크림

권진규의 전시장은 음산하다. 그러나 작품은 음산하지 않다. 오히려 성스럽다. 마치 이집트의 흉상이나 그리스 신화를 재현한 듯한 인물들의 얼굴은, 동네 아낙들의 이름, 고유명사로 한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다. 가장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여인네들을 가장 이상적인 비율로 그려넣었다. 권진규는 마두 시리즈로 매우 유명해졌다. 쉽게 마모되거나 균열이 일어나지 않는 석조나 테라코타로 강하고 투박하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사람의 흉상과 더불어 시간에대해 초월적이다. 이렇게 거대하고 웅장한 작품들 틈에서 오히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웅크린 여자' 한 주먹도 안되는 크기에, 무심코 지나쳤으면 보이지도 않았을법한. 작가의 오만함에 조금은 지루해졌을 무렵 발견한 '웅크린 여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작품 이미지를 찾..

...죽었다

synecdoche, New york (2008) 1. 감독으로 만들어낸 카우프만의 첫작품은 여러모로 작가로서의 전작들 나 의 계보를 이어 인간 의식이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에 주목한다. 누구에게나 현재의 내가 있는 객관적 장소보다 더 중요한 주관적 시간을 살아간다. 관객이 본 하루 이틀의 시간이 캐이든에게는 10년이되기도 하고 1-2분이 되기도 한다. 2. synecdoche. 제유라는 한국어로도 이해하기 힘든, 시넥도키로 가득차있다. 아니 영화로 대표되는 삶. 영화 안의 연극으로 대표되는 삶. 앞과 뒤를 분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4살의 올리브에게 동음이의어를 설명하는 캐이든의 대사에서 이미 예견된다. 캐이든은 엘렌이되고, 엘렌은 에릭과 부부이고. 헤이즐은 캐이든인 쌔미와 가까워지..

로드

삶의 이면에는 죽음이 있다. 아니 죽음의 이면에는 삶이 있다. 이 두 문장은 언뜻 같은 의미처럼 보이지만, 삶에 대해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혹은 극한적인 악한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사람. 그리고 그가 걸어가고 있는 그 '길'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린 여러가지 모양의 이야기들이 있다. 오래 잔상이 남았던 영화는 미스트였는데, 인간의 내면을 꽤 깊은 곳까지 파헤치기 때문이다. 미스트의 결말부에 자신의 딸들을 구하기위해 안개를 해치고 나갔던 여인이 구조대의 차로 유유히 지나가며 살아남은 주인공에게 보내는 눈길은 주위의 모든 것을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밟고 올라선 세상 속 누군가에게 보내는 영화의 시선이다. 그러나 로드의 디스토피아는 이보다..

[2010이상문학상 아침의 문] 그의 진화

아침의 문을 다 읽었을때, 나는 ㅂ민규의 종적을 되돌아 보아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확실히 이전보다 섬세하고 강인하다. 이는 단편이가진 매력이기도하고. 삼미는 확연한 20대의 질풍노도였고 핑퐁은 과도기였으며 파반느는 과잉이었다. 아침의 문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그와 같은 정서를 지니지는 못했음에도 그를 쉽사리 끊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를 재확인시킨다. 안정적인 서사와 완결성.은 과거보다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그를 읽는 독자로서 바라는 소박하지만 어려운 주문은 억지스럽지 않은 여성캐릭터의 탄생이다.

[바냐아저씨]

올 해의 시작은 이래저래 체홉과 함께 할 일이 많아졌다. 아르코에서 1.7~1.17까지 상연 중인 는 체홉의 4대 걸작으로 뽑힌다는데, 그의 걸작을 내 손으로 뽑을 만큼 그의 작품들을 정독하지는 않아서 이들의 우열은 다시 논의해 볼 일이다. 이제까지의 작품들이나 단편들을 읽은 인상은 당분간 체홉에 대한, 희곡에 대한 관심이 계속 될 것임을 예견할 뿐. 1. 고전극의 완성도는 배우들의 연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바냐아저씨의 배우들은 개성있는 각 인물들을 표현하기에 꽤 적당하고 출중했다. 엘레나 역이 조금 튀었는데, 그녀의 대사 마디 마디 강조되는 악센트가 좀 거슬렸다. 세레브랴꼬프 역의 배우는 내가 생각한 퇴직한 교수 역할과 다른 이미지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세레브랴꼬프는 평생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우리의 릴리

**니나와 릴리 체홉의 갈매기에서 연인을 잃은 작가 지망생 남자 주인공은 실제로 자살을 하고. 우리의 릴리에서 줄리엥은 영화 안의 자신을 죽임으로써 고통을 표현해낸다. 체홉의 시대와 끌로드 밀러의 시대., 체홉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가 사람의 욕망에 대해, 자기 표현에 대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희망이라는 별장. 희망이 아니라 욕망 갈매기의 상징성 ** Ludvine Sagnier라는 배우 이 배우가 가진 몽상적이고 때로는 백치적인 아름다움은 예술가들이 꿈꾸는 자유와 자연을 잘 재현해준다. 동시에 퇴폐적이고 근본적인 인간의 욕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가장 문명적인 인간을 잘 재현해준다. 어디서 많이 본 이 배우의 필모그래피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