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 425

베스트오퍼 2013

미술품 감정사라는 신선한 소재에 비해 이야기의 구조는 조금 뻔하지만,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으로 모든 단점을 커버했다. 진품과 위조라는 미술사의 오랜 논쟁을 드라마로 풀었다. 이 이야기는 또 다른 거장 압바스키아로 스타미의 2010년작 사랑을 카피하다를 닮아있다. '사랑'이라는 불멸의 소재를 거짓과 가짜로 만들어버린 이야기 구조로 인해서.

스포트라이트

보스톤글로브 신문사 특종팀의 실화를 영화화한 내용. 지금이라면 누구도 충격받지 않을만한 사제들의 성폭행이라는 스캔들을 파헤친 2001년의 취재기를 담고있다. 물론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실제 사건과 당시의 분위기에 충실하고, 이런류의 사건에 등장하는 드라마틱한 충격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물론 사건의 가해자들은 명백하게 악하고 극단적으로 추하다는 점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카톨릭 교계 내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구조와 종교를 둘러싼 '일반인'들의 깨져서는 '안되는' 믿음, 그리고 방조하고 침묵하는 또 다른 구조에 대해 다층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따라서 단지 사제들을 향해 맘편히 손가락질을 하게되지만은 않는다. 어쩌면 지루해질수 있었던 취재기를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게 한 연출력에 박수를..

L'avenir/ Maggie's plan

두편의 영화를 보았다. 너무 다른 분위기와 구성을 가진 영화임에도 다 보고나니 뭔가 이런저런 공통점이 남는다. 먼저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이고, 남녀주인공의 사랑이야기에 방점을 두지 않는 드라마이자, 가족제도의 해체에 관해 아주 담담하고 쿨-하게 보여준다. 두 영화 모두 남성 혹은 타인으로부터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삶의 안정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는 영화에서 그려지는 세계가 더 이상 가족중심적 가부장 중심적인 사회질서를 옹호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보여준다. 1.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는 꼭꼭 챙겨보는 편인데, 다가오는 것들(L'avenir)에서의 예민하고 지적이지만 또 감성적인 중년의 여인 나탈리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위페르의 아우라를 담고있다. 철학이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건조하게 말하지만 외로움으로..

데몰리션

인물들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지는 않았지만, 개별인물들의 심리는 매우 잘 드러낸 것 같다. 무언가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메타포는 다소 직설적이지만, 영화는 매우 세련되게 잘 포장했다. 예를 들어 남자 주인공의 잘 정돈되고 말끔한 집의 모습과 여자주인공의 너저분한 집과 서랍장에서. 장인의 회사, 투명한 유리로 반듯반듯 정렬된 공간과 재건축을 위한 공사장 인부들의 일터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동전자동판매기의 고장과 손편지라는 두 매개체라는 진부한 소재도 장마크발레의 손을 거치면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로 탈바꿈한다. 달라스바이어스 클럽, 와일드, 카페 플로르의 팬으로서 그가 말하는 자기청소(자아성찰)은 드라마틱하지 않아 좋다. 그러고 보니 그가 만드는 영화들은 인물들의 관계보다는 한 인간의 내면에 더..

arrival, 2016

많은 사람들이 SF와 판타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판타지는 근본적으로 "우주의 일부는 영원히 우리가 이해할 수가 없다" 라는 가정을 기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판타지가 이어져 온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우주를 신비한 존재로 여겼고 신 또는 마법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 미래를 배경으로 판타지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SF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이면을 보면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판타지와는 달리 SF는 "우주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우주는 기계와 같고 우리도 탐구한다면 우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우주를 더 깊게 이해할 때 그 지식이 전파되고..

시츄킨 콜렉션전 @ FLV

돈 많은 루이뷔통 재단만 기획할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러시아의 부호였던 시추킨이라는 콜렉터가 있다. 단순히 돈만 많은 사업가는 아니었고, 예술을 보는 안목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그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당시의 젊은 화가들의, 후기 인상주의자를 중심으로 한, 작품을 사들였다. 미리 마티스나 고갱, 피카소 등 작가의 아틀리에에 방문해 작품의 진행상황을 확인하기도 하는 등 당시 예술계의 제대로 된 거물이었다. 자신의 저택을 장식할 목적으로 사들인 작품들은 후에 값을 매기지 못할 정도의 가치를 부여받게 되었고, 파리를 떠나면서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한동안 창고에 쌓여있기도 하다가, 상페테르부르그의 뮤지엄 두 곳에 흩어져 전시되었다. 작품의 보존상태도 좋지않고, 값비싼 보험료와 운반비 등으로 인해 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