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para-screen

arrival, 2016

유산균발효중 2017. 5. 4. 18:18

많은 사람들이 SF와 판타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판타지는 근본적으로 "우주의 일부는 영원히 우리가 이해할 수가 없다" 라는 가정을 기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판타지가 이어져 온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우주를 신비한 존재로 여겼고 신 또는 마법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 미래를 배경으로 판타지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SF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이면을 보면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판타지와는 달리 SF는 "우주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우주는 기계와 같고 우리도 탐구한다면 우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우주를 더 깊게 이해할 때 그 지식이 전파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류 역사의 새로운 것이며 이러한 생각들에서 500년 전, 1000년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SF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SF와 판타지에 관한 테드창의 2009년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서의 강연, 그 일부를 발췌함. 


SF든 판타지든 장르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영화를 특정 스타일을 가진 예술로서 보다는 이야기로 소비하는 나에게 테드창의 단편을 영화로 만든 컨텍트(2016, arrival)는 장르영화의 설득력을 가진 이야기였다. SF의 불모지인 한국에서도 테드창이라는 이름은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난 어려운 과학용어를 따라가기엔 무식하여 주로 그의 아이디어와 이야기 전개에 집중하여 읽었던 기억이 있다. 

원작의 조금 더 복잡한 과학적 지식을 조금 더 대중적으로 단순화시킨 이 영화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시간에 관한 통찰력이다.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보게된 루이스는 자신이 미래에 낳은 딸이 미래에 죽게 될 것까지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시간을 거부하지 않는다. 카이로스의 시간. 과거와 미래가 인과론이 아닌 목적론으로 흘러가는 루이스의 시간은 유대인들이 믿어 온 목적론의 시간. 메시아의 시간과 일치한다. 

에이미 아담스라는 배우의 발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언어를 알게되면, 그분의 시간을 이해할 수 있고, 결과가 늘 아름답지만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누릴 수 있다. 


오랜동안 남아있던 장면. 


삶의 목적과 그 끝을 알게 되어버린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


'예술의 상상 > para-scre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L'avenir/ Maggie's plan  (0) 2017.06.13
데몰리션  (0) 2017.06.12
paris pieds nus  (0) 2017.03.21
Wild, 2014  (0) 2015.07.03
인사이드아웃 단상  (0) 201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