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 425

Roy Lichtenstein

그가 현대의 소비사회에 대해 논하는 방식은 아날로그 TV의 픽셀. 대중 잡지의 이미지. 심각한 소재를 다른 방식으로 뒤집어 가볍게 하기 등이다. 워홀식 공장제, 기계식 찍어내기가 아닌 손 작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자신의 예술가적인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다. 그의 목적이 배반이든 예찬이든, 그의 성공은 대중의 구미에 맞는 화려한 색과 형태를 놀랄만큼 창조적으로 구현해 낸 것이 아니겠는가. 역시나 사람들이 넘쳐난다. 선물가게엔 예쁜 소품이 넘쳐나고.. 비슷한 시기에 열린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전시에 비해 못하다는 평가는 나만의 것일까. 여튼 서둘러 이리저리 걸어놓은 듯 보인다. 시선도 이리저리 분산되고. 가장 인상적인 작품- 오랫동안 이 캔버스 앞에 앉아 아이들에게 한참동안이나 그림을 설명해주는 엄마. 내용..

Simon Hantai

한국엔 잘 알려져있지 않는, 헝가리 출신의 프랑스추상 작가인 Simon Hantai 전를 보았다. 사실 리히텐슈타인과 마이클 켈리의 곁다리로 본 전시였는데, 개인적으론 그 날 보았던 세 전시 중 최고였다. 초기의 작품들은 달리 같은 초현실주의 작업을 연상시키는데, 자연스럽게 추상으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그 과정을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예컨대 초기의 작업들은 주로 황토색과 갈색 계열이었고, 중반엔 원색 계열이지만 두꺼운 마티에르 때문에 눈부시지 않고 오히려 톤이 다운되어 있다. 후반기에는 수묵화가 떠오를 정도로 동양적인 흑백은 물론 여백과 곡선까지. 작업 방식 역시 시기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초반에는 다양한 매체를 마치 꼴라쥬처럼 덕지덕지 붙이기도 했고, 추상으로 넘어오면서 그냥 붓으로 ..

Mike Kelly와의 조우

-미술 분야에서 이렇게 상처받은 영혼과 훼손된 신체의 형상이 많이 등장했던 90년대 초반은 계속되는 에이즈 위기와 복지국가의 진로, 그리고 만연한 질병과 가난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art since 1900의 p.646 인용) 할 포스터에 따르면,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일종의 항의와 저항을 불러일으켰으며, 구체적으로는 극도의 본능적인 대상으로의 퇴행을 가져왔다. 그 선두에는 마이크 켈리(Mike Kelly,1954-2012.1.자살 )가 있다. 수업시간에 책으로만 읽으며 도판 찾기에 전전 긍긍하던 그의 작업을 직접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다니 설레었다. 물론, 그의 작업들은 전혀 설렐만한 장르가 아니다. 오히려 참을 수 없고, 불안하고 역겹기도 하다. 파리에서조차 그의 작품 전반을 ..

론 뮤엑@Fondation Cartier

감탄사로 표현하지 못할 풍경 앞에서, 우리는 '그림같다'는 시시하고 생명력없는 문장을 내뱉는다.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한갓 그것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 그림에다가 비교해야 할 뿐이다. 참 재밌는 표현이다. 살아있는 자연을 그림같다고 표현하는 것. 아마 론 뮤엑의 조각을 바라보노라면, 이런 형용모순이 또 다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그가 만들어 놓은 사람이 지금 그것을 보고 있는 나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살아있어보인다. #1. 토요일 오후의 나른함을 이겨내고 어슬렁어슬렁 카르티에 미술관에 이르렀다. 동네 거리가 한산했는데, 하스파이 길 특정지역에 다다르니 긴 줄이 보였다. 론 뮤엑의 전시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종전에 9월까지로 예정되어 있던 전시는 한달이나 연장되면서, 론뮤엑의 인기를 실감하..

Vanessa Winship's_“SHE DANCES ON JACKSON”@HCB

브레송의 이름을 딴 이 공간에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네사 윈십은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꽤나 묵직한 전시들을 해 왔다. 브레송 재단의 상을 받은 이 프로젝트는 2011년의 작품들로, 미국의 중소도시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담고있다. 2층 전시장의 가운데에는 그녀가 기록한 일기, 혹은 여행일지를 배치해두었다. 사진을 찍을 때의 에피소드나 감정들에 대해 읽고나면, 다시한번 사진을 둘러보게 된다. 아메리칸 드림의 반대편의 모습, 빛바랜. 우연히 마주친 낯선 누군가를 낯선 도시의 한 장면 한 장면과 번갈아가며 병치시킨다. 피사체는 마치 증명사진을 찍는 사람들처럼 굳어있고, 게다가 흑백이다. 바네사 윈십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un territoire)과 인물(une pers..

샤갈,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Chagall, entre guerre et paix)

몇 해전 시립미술관에서 했던 대규모 전시를 통해 샤갈을 보았던 터라, 그리 욕심내지 않았던 전시였다. 뤽상부르그 미술관을 오가는 길이면 늘 길게 늘어선 줄에 샤갈의 인기를 실감했던 터였다. 몇 주전 미술관들이 자정 이후까지 여는 축제가 있었는데, 밤에 공원 미술관에서 보는 샤갈의 그림을 생각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역시나 한시간 반 남짓 기다려 들어갔다. 일정한 시기와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동시대 이전의 거장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일은 국내에선 매우 드물다. 일단 예산의 문제도 있고, 한번 큰 전시를 기획해서 계약 확정이 되면 어떻게는 더 많이 관객을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주제를 골라 그 주제와만 관련된 작품을 가져온 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이곳에서는 그런 제약이 훨씬 적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