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 425

도시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영화

이 도시를 소재로 한 영화들 중, 파리에 사는 이들이 이 도시와 맺는 애증관계를 '지금, 내가' 바라보는 시각과 가장 비슷하게 그려낸 영화인듯하다. 이야기는 평범하지만, 반갑고 익숙한 풍경, 프랑스영화 어디서든 자주 볼 수 있는 배우들, 수많은 얼굴을 가진 도시. http://www.allocine.fr/film/fichefilm-114860/photos/detail/?cmediafile=18887271 그리고 바람직한 장면. 자전거/오토바이/유로카의 조합 ,

9 mois ferme

어쩌다 한번씩 VFSTF(불어영화에 불어자막)로 상영하는 영화들이 있다. 아마,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듯 한데, 우리같은 외국인에게도 대사많고 구어체로 도배한 프랑스 코미디를 보기위한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격인 알베르 뒤퐁텔이 만들어낸 블랙코미디이다. 애인도 없고, 일 밖에 모르는 싱글여성인 인텔리 판사가 9달만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된다. 게다가 DNA검사를 통해 알게된 그 아이의 아빠는 사이코패스로 극악무도한 살인의 용의자였다. 그는 시체를 토막내고 눈을 파먹는 사이코패스였다. 그녀는 이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집에서 자살을 결심하지만, 누명을 벗고자 감옥을 탈출해 판사의 집에 찾아온 그 남자 때문에 자살이 실패한다. 그 남자가 판사의 집에 머물면서 벌어지는 ..

키스해링과 triptych

교회에서 장식의 용도나, 제단을 가리는 칸막이의 용도 많이 사용한 형식인 삼면화. 삼면은 당연히 삼위일체를 상징하며, 주제 역시 그리스도의 심판이나 천국의 모습, 십자가 등의 상징적인 장면등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종교심을 자극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Rogier van der Weyden (1455년경 작)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미술에서 가장 거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종교화, 그중에 미술적으로도 완성도를 갖춘 형식이었던 삼면화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권위에 대한 냉소와 비판의 의미로 현대미술에서도 심심찮게 사용되는 아이러니컬한 형식이다. 특히 프란시스 베이컨이 그린 이미지들은 가히 살코기로서의 인간, 뒤틀린 얼굴의 인간의 모습을 통해 광기와 폭력을 담아내면서, 삼면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경향을 낳았다..

Georges Braque @Grand Palais

그랑팔레에서 볼 수 있는 브라크 전시는, 큐비즘에 이해가 얼마나 제한되어 있었는지 깨닫게 해 준다. 먼저, 큐비즘에 대한 이해이다. 대중에게 인기있는 인상주의나 비평가들에게 인기있는 추상의 한 중간에 자리한 큐비즘이 가지는 미술사적인 의의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이 전시는 단지 '큐비즘'으로서만이 아닌 그 앞과 뒤에 놓인 미술사의 흐름을 풍부하게 조명하고 있다. 이어서, 전무한 브라크에 대한 지식이다. 내가 알기로는 국내에 전시를통해 한번도 소개되어 본 적이 없는 브라크는, 피카소와 묶인 한쌍으로만 단지 '언급'되어왔다. 인상주의하면 '모네'만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큐비즘은 그냥 "피카소"만의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큐비즘을 고안하고 그것을 발전시킨 유일한 ..

Thorsten Streichardt @ircam

군데군데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온갖 잡음, 혹은 어떤 소리로든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작가가 든 연필이 캔버스를 긁어대는 소리가 저 하얀 캔버스 천을 둘둘 돌아 공명을 만들어낸다. 보이는 데에선 크게 소리내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을 위해 전시장의 바깥 쪽에도 몇 군데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다. 들어올 땐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그 마이크의 용도를 알아챈 돌아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한 소리씩 지른다. 소음과 우연한 소리를 통한 작업은 최근 이러저러한 기회를 통해 종종 보아왔는데, 그 공간과 동일한 시간 안에서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는 정말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들었다. 외모가 비범한 이 작가는 영국 왕실 관악대의 의상, 시종일관 꽉 다문 입술과 실험에 참가하는 듯한 과학자의 미간, 그리고 화가의 포즈로 ..

Lorna Simpson @Jeu de Paume

"흑인인 여성"이 찍은 흑백사진이 보여주는 젠더라는 주제 + 포토텍스트라는 매체. 80년대,포스트모더니즘 사진의 주체가 신디 셔먼, 바바라 크루거, 셰리 레빈 이라는 지적인 백인 여성들이었다면, 로나 심슨의 경우는 피해자로서의 자신의 육체를 앞세우며 소외된 타자 자체를 내세웠다. 아마 이런 배경이 그녀의 성공에 주요한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다소 고루한 담론이 되어 버렸지만, 그녀가 구현해 낸 형식과 결과물은 인상적임에 분명하다. 주드 폼의 전시는 그녀의 작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정제되어 있었다. 덧붙여 이제 우리에겐 포토텍스트의 새로운 소재가 필요할 듯 싶다는 느낌 역시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