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이 너무 강렬하고도 완결적이어서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리히터라는 사람. 작품을 넘어선 그의 생각과 작업 방식을, 아르떼 tv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하고 있었다. 리히터의 작업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한 벽을 차지하는 캔버스를 여러색으로 여러겹 덧칠하고, 엄청난 물감을 덧입힌 스퀴즈로 긁어낸다. 안셀름 키퍼 식의 두꺼운 표현주의이건, 리히터 식의 추상 혹은 구상 혹은 사진이건, 우리에게 다가오는 충격의 크기는 비슷하다. 아무리 리히터가 회화의 역사나 회화의 진실성에 대해 회의를 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동안 내가 보았던 작품 그 자체라는 반쪽의 진실 뒤에 숨겨진, 내가 본 여든살 노장의 작업 모습은 공사판에서 시멘트를 나르는 검고 땀에 찌든 육체같았다. 마치 바닥 가득히 캔버스를 펼쳐두고 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