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 425

Gerhard Richter , Painting

작업이 너무 강렬하고도 완결적이어서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리히터라는 사람. 작품을 넘어선 그의 생각과 작업 방식을, 아르떼 tv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하고 있었다. 리히터의 작업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한 벽을 차지하는 캔버스를 여러색으로 여러겹 덧칠하고, 엄청난 물감을 덧입힌 스퀴즈로 긁어낸다. 안셀름 키퍼 식의 두꺼운 표현주의이건, 리히터 식의 추상 혹은 구상 혹은 사진이건, 우리에게 다가오는 충격의 크기는 비슷하다. 아무리 리히터가 회화의 역사나 회화의 진실성에 대해 회의를 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동안 내가 보았던 작품 그 자체라는 반쪽의 진실 뒤에 숨겨진, 내가 본 여든살 노장의 작업 모습은 공사판에서 시멘트를 나르는 검고 땀에 찌든 육체같았다. 마치 바닥 가득히 캔버스를 펼쳐두고 맘..

Zadkine

금요일 오후의 업된 기분을 만끽하기 위하여, 자드킨 미술관에 들렀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목에 있기도 했고, 마침 비도 와주어서, 작고 아담한 미술관을 둘러보기엔 적격인 타이밍이었다. 국적 모를 이름을 가진 러시아인 오십 자드킨이 만들어 놓은 인물들은 마치 그의 자화상 같은 얼굴을 가졌다. 길쭉하고 굳게 닫은 입술과 긴장된 표정이 지상에서 떨어져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같이 생명력과 굳은 삶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파괴된 도시를 위한 조각상, 의 경우 더더욱) 강렬한 큐비즘적 요소에 조각만의 단순화 된 색이 공간과 빗물과 어우러져 가장 아름답고 고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The Iron Lady

2013년 4월 8일 월요일, 그녀의 죽음이 뉴스 일면을 장식했다. 난 그녀에 대해 어떤 애정도 관심도 없지만, 이것만은 안다. 그녀는 내가 싫어하는 어떤 분의 성공신화와 민영화정책 등등등에 훨씬 오래전부터 직간접적인 모델이었음을. 그녀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는 말까지 있다고하니, 그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야 뻔하지. 그리고 '지금의 그녀'도 대처를 모델로 삼아왔겠지. 매릴 스트립이 그녀보다 빛날 뿐이다. 특히 목소리 연기 정말 쩐다~!

스팅과 카푸어

명불허전이라는 식상한 수식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번 전시는 그의 시대별 대표작들이 모두 포진해있어, 한국의 관객에게 그를 소개하기에 더 없이 좋은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어제 Sting in Berlin을 보며 마담 문에게 스팅이 불가지론 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더랬는데, 아마 오늘 본 아니쉬 카푸어도 불가지론자일 것 같다. 직접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다분히 종교적이고 명상적인 작품들 하며, 어떤 영적 경지를 추구하는 그의 철학과도 상통하는 것 같다. 그에게 있어 신은 거대한 영적인 무언가이자, 보고 듣고 만질 수는 없지만 질료로서 존재하는 것일게다. 그래서 그의 작업들은 무언가를 반영하지만 규정하지 않고, 계속 들여다보게 만들며 의심하도록 권고한다. 질료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전시장에 있는 몇 안되는 ..

Amour,2012

그가 종종 사용하는 피아노라는 소재는, 인물들의 예민한 감각과 침묵을 대변해준다. 첫장면, 공연장의 군중들, 스크린 속의 관객과 스크린 바깥의 관객들이 서로 마주보며 서로를 비춘다. 마지막장면, 집안으로 들어온 비둘기 한마리를 어기적한 걸음걸이로 잡고야 만 그는 목을 졸라 죽이는 대신 놓아준다. 사랑의 존엄성을 지키는 그만의 방식이다.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참으로 고요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 침묵을 획득하기 위해 모든 소음들을 육체 안에 우겨 넣는다. 볼 때마다 새롭게 감탄하는 하네케의 영화들... 그리고 영화보다 영화같은 이장면!

[The Visiter]

예고편과 광고 카피로 이 영화를 접했다면, 아마도 음악영화 혹은 젬베를 통한 우정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이래서 마케팅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영화의 약 20%만을 설명하는 예고편에 속지 마시라. 이 영화는 몇 년전 개봉했던 welcome과 뿌리를 같이하는 불법체류자 문제를 전면에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웰컴에 비해서 극의 완성도나 긴장감은 떨어져 보이지만,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한 다양한 (제3세계들이 처한 자세한 정황, 중년의 사랑, 서양식의 클래식과 아프리카 음악 등)소재들이 자잘자잘하지만 이야기를 끊기지 않도록 포진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무엇보다 주인공 아저씨의 공허한 일상과 이에 잘 어울리는 표정은 극에 빨려들게 해 준다. 조금 더 선택과 집중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 이런식의 결론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