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un-frame

샤갈,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Chagall, entre guerre et paix)

유산균발효중 2013. 6. 17. 08:03



몇 해전 시립미술관에서 했던 대규모 전시를 통해 샤갈을 보았던 터라, 그리 욕심내지 않았던 전시였다. 

뤽상부르그 미술관을 오가는 길이면 늘 길게 늘어선 줄에 샤갈의 인기를 실감했던 터였다. 몇 주전 미술관들이 자정 이후까지 여는 축제가 있었는데, 밤에 공원 미술관에서 보는 샤갈의 그림을 생각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역시나 한시간 반 남짓 기다려 들어갔다. 

일정한 시기와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동시대 이전의 거장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일은 국내에선 매우 드물다. 일단 예산의 문제도 있고, 한번 큰 전시를 기획해서 계약 확정이 되면 어떻게는 더 많이 관객을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주제를 골라 그 주제와만 관련된 작품을 가져온 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이곳에서는 그런 제약이 훨씬 적고, 자세히는 모르지만 운반이나 세금 등 예산의 제약을 덜 받기 때문에, 일관성있고 기획의 힘이 돋보이는 전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887-1985년, 샤갈이 살았던 해이다. 거의 한세기를 러시아, 프랑스, 독일, 미국, 이태리 등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돌아다니며 활동했던 샤갈은 두번의 큰 전쟁을 겪었다. 그 전쟁을 중심으로 그의 작업을 조명한 것이 이번 전시의 주제이다. 화사하고 다소 몽환적인 색채를 사용하여 꿈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게 하는 샤갈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물론 그런 샤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이 그에게 가져다 준 인상이 같은 화사하고 몽환적인 색채 안에서 다소 묵직하게 나타난다. 입구를 들어자마자 곧 보이는 판화 작업들은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병사들, 피난민들, 가난 등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그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성경은 전쟁에 대한 비관보다는 전쟁이후의 평화를 더 많이 기대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전시는 어두운 단색의 판화에서 시작되지만, 성경의 이야기를 거쳐 마침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랑과 평화로운 모습으로 끝이 난다. 

고요하고 아늑한 이 전시 공간에서 우리는 샤갈이 펼쳐 놓은 삶의 페이지에 자연스레 동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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