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un-frame

Signac,<les couleurs de l'eau>

유산균발효중 2013. 6. 21. 06:25

교과서에 나온 '그랑자트 섬의 오후'로만 알고 있었던, 쇠라와 쌍으로 묶여 점묘법의 2 인자 정도로만 알았던 폴 시냑을 모네의 마을에서 만났다. 지베르니의 인상주의 미술관에서 <les couleurs de l'eau> 즉 '물의 빛깔' 정도의 제목으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잘 몰랐던 시냑의 작품을 이렇게 충분하게 음미하고 찬찬히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이 만족스러웠다. 오르세의 한 모퉁이에서 미술사의 아카이브를 완성하기 위한, 그 시대 어디쯤의 화가가 아닌, 그 만의 분위기와 가치를 발견하게 된 즐거움이랄까.


#1. 이 전시는 제목에 걸맞게 시냑이 그렸던 바다와 물을 배경으로 한 작품 130점 정도를 소개하고 있으며, 색채 연구와 관련된 자료들을 중간 중간에 배치하고 있다. 

인상주의자들로부터 '색'이란 대상이 가진 고유의 성질이 아닌, 변하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빛'이었기에 그들이 그려야 할 것은 눈앞에 물질로 존재하고 있는 대상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빛이었다. 또한 그 빛은 여러가지 물감을 쭉 짜서 파레트 위에서 조합해낸 제 3의 또 다른 색이어서도 안되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점묘법의 화가들이란, '심금을 울리는' 예술가들이기 보다, 그들의 노동에 대해 '기이함'을 자아내는 자들로 비춰지는 것이다. 과연 이들이 색채에 대해 연구해 놓은 자료들을 보면 과학자들의 실험노트를 보는 것 같긴하다. 

그러나 캔버스의 붓자국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또 몇발짝 떨어져 그가 그 수많은 점들을 모아 만들어낸 최종적인 그 '빛'을 확인하고 난 후라면, 그가 보여주고자 한 풍경에 한걸음 다가가게 될 것이다. 


#2.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누군가가 그린 폴 시냑의 초상화를 발견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화가로서의 시냑이 아닌 항해사로서의 시냑이 이 전시의 전면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바다를 잘 알고 물과 가까웠던 그의 삶과 앞으로 보게 될 그림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재밌는 배치라 할 수 있다. 



#3. 그리고 대부분의 공간을 그가 그린 물 빛을 보여주는데 할애하고 있다. 덤으로 드로잉작업과 후반기에 그린 수채화도 함께. 그가 인상파 화가 특히 모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만큼, 전반기에 그렸던 작품들은 모네의 그것과 구분이 되지않을 정도로 유사하다. 그가 자신만의 방법론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쇠라와의 만남 때문이다.  

노르망디의 해안과 선착장, 해안과 모래사장. 아침 빛의 맑은 바다 흐린날의 바다 황혼의 바다

비슷한 풍경의 바다인데, 어느 것 하나 같은 색의 바다가 없다. 

그렇다. 이들에게는 바다라는 대상의 아름다움 보다, 바다를 감싸고 있는 공기와 습도의 아름다움이 더 컸던 것이다. 가까이서는 도무지 현실적이게 보이지 않는 바다 색을 이루는 점들이, 멀리서는 사진보다 더 생생한 바다의 색을 만들어 내고 있다 .

그리고 그의 그림은, 내가 아는 한, 모니터와 책 즉 그의 캔버스가 아닌 곳으로 옮기기 가장 어려운 그림인 것 같다. 비루한 도판들은 기억을 위해 이곳에 옮겨둔다. 더 많은 그림은 http://www.paul-signac.org/서 확인할 수 있다. 

 


p.s. 아, 도판 정말 별로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