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사로 표현하지 못할 풍경 앞에서, 우리는 '그림같다'는 시시하고 생명력없는 문장을 내뱉는다.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한갓 그것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 그림에다가 비교해야 할 뿐이다. 참 재밌는 표현이다. 살아있는 자연을 그림같다고 표현하는 것.
아마 론 뮤엑의 조각을 바라보노라면, 이런 형용모순이 또 다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그가 만들어 놓은 사람이 지금 그것을 보고 있는 나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살아있어보인다.
#1.
토요일 오후의 나른함을 이겨내고 어슬렁어슬렁 카르티에 미술관에 이르렀다. 동네 거리가 한산했는데, 하스파이 길 특정지역에 다다르니 긴 줄이 보였다. 론 뮤엑의 전시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종전에 9월까지로 예정되어 있던 전시는 한달이나 연장되면서, 론뮤엑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10개 남짓, 많지 않은 작품들이었는데, 한 작품앞에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론 뮤엑의 작품에는, 울컥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다. 단지 눈을 의심할 정도의 사실성에서 오는 경외감 때문만은 아닐것이다. 아직도 하이퍼리얼리즘 조각을 하는 작가들은 적지 않으니까.
#2.
아마 론 뮤엑이 오마쥬를 간직할 수 있을 만한, 6-70년대 하이퍼리얼리즘의 조각의 대부님으로 불리는 듀안 핸슨은 현실의 컨텍스트를 모두 작품 속으로 가져왔다. 인물의 의상과 배경, 그의 행동과 움직임이 너무도 일상적이고 게다가 현실적이니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미소를 띠며 전시장을 활보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작업들이다.
듀안 핸슨의 위트와 재치는 강박증적인 섬세함으로부터 나온다.
#3.
다시 론 뮤엑으로 돌아와서. 그의 작품과 그의 작업실에서 받는 첫번째 인상은,
마치 인체실험실 혹은 다빈치의 인체 해부도 등이다. 뮤즈의 영감을 받은 창조적인 아티스트의 작업실이기보다는 강박증적인 과학자의 실험실 혹은 육체노동자의 작업장과 같다. 한 벽을 가득 채운 각종 연장과 거대한 석고들 그리고 인체 모형이나 신체 그림, 아이패드에서 보이는 건 눈을 찍은 사진의 확대본.
이는 물론 그의 '모든'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발톱, 모공, 거뭇한 코 밑 수염, 팔뚝의 힘줄, 미간을 찡그릴 때 나타나는 주름, 눈동자 핏줄 색까지. 하지만 이런 '그럴듯함, 사실적임' 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그에게는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단지 아홉개의 작품만이 선보였을 뿐인데, 그 하나하나엔 특별한 컨텍스트가 없다. 너무 사실적인 외양이지만 오히려 현실을 벗어나 있다.
#4. 그의 작품을 특별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조금 크게하거나 조금 작게 만든 사이즈는 아닐 것이다. 강박증적으로 복제해 놓은 피부결 때문도 아닐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나는 그것을 두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시장의 그 누구도 듀안 핸슨의 인물들을 볼 때 처럼 가볍게 웃어 넘기거나 인물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이를 들쳐매고 장을 보고 나오는 여인의 찡그린 얼굴에서, 젋은 커플이 뒤로 맞잡은 손에서, 빈 배에 앉아 저 멀리 허공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중년의 남성에게서, 자신의 키보다 큰 나뭇가지를 한아름 안고 몸에 생채기가 나도 끙끙대며 어딘가로 향하는 억척스런 여인의 눈빛 등등에서 뭔가 두려움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우리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겠지.
60-70년대의 하이퍼리얼리즘이 만들어냈던 현실의 유머러스하게 비틀기는 우리의 시대에 와서 과중하고 무거운 일상, 박제가 되어버린 신체에 대한 조심스런 두려움으로 치환되었다. 아마 론 뮤엑의 인물들은 그래서 조금은 기괴하고 조금은 측은하고 안타까우며 무언가로부터 상처를 입게될까 경계하는 이들이 되었을게다.
#5. 아직 보고 싶은 그의 작품들이 많다. 기회가 되면 꼭 만나리라. 아래의 페이지에서 론 뮤엑의 작업을 상세하게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보지못한 이런저런 흥미로운 작품들도. 전시장에서도 역시 그의 작업 영상을 만날 수 있다. 한시간 남짓동안 그와 함께 고된 노동에 동참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http://www.gautierdeblonde.com/portfolio.lasso?categoryI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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