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분야에서 이렇게 상처받은 영혼과 훼손된 신체의 형상이 많이 등장했던 90년대 초반은 계속되는 에이즈 위기와 복지국가의 진로, 그리고 만연한 질병과 가난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art since 1900의 p.646 인용)
할 포스터에 따르면,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일종의 항의와 저항을 불러일으켰으며, 구체적으로는 극도의 본능적인 대상으로의 퇴행을 가져왔다. 그 선두에는 마이크 켈리(Mike Kelly,1954-2012.1.자살 )가 있다.
수업시간에 책으로만 읽으며 도판 찾기에 전전 긍긍하던 그의 작업을 직접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다니 설레었다. 물론, 그의 작업들은 전혀 설렐만한 장르가 아니다. 오히려 참을 수 없고, 불안하고 역겹기도 하다. 파리에서조차 그의 작품 전반을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참으로 영광스럽다. 나와 동행한 이들은 각각 리히텐 슈타인과 한타이에 감명 받았다 했는데, 물론 작품 자체의 감상 면에서는 그렇지만, 희귀성의 측면에서 난 이 전시를 오늘의 메인이라 여겼다.
마이크 켈리는 인형이나 생활 소품, 아이들의 모습등을 찍은 영상이나 가벼운 스케치 등의 소재를 사용하는 것 치고는 매우 공격적인 혹은 극단적인 작업을 펼친다. 당시 폴 매카시나 키키 스미스, 로버트 고버 등의 작업에서 볼 수 있듯, 그로테스크한 신체일부등을 사용하거나 사물과 사람의 경계를 허무는 기괴한 신체아니 일종의 기계를 만들기도 한다.
마이클 켈리는 또한 가톨릭의 문화, 청소년기에 접했던 로큰롤, 하위문화등을 소재로 사회화에 실패 혹은 거부한 '기능장애어른'을 보여준다. 전시장을 마치 거대 쓰레기 처리장으로 만들어 버린 그의 능력은 오브제 자체 뿐 아니라 인간의 신체를 대상으로 한다. 그 중심에는 항문과 배설, 성기가 있다.
매카시와 함께한 작업인 하이디(Heidi,1992)는 만화 캐릭터의 신파를 미국식 공포영화로 치환시킨다. [밀러의 작업을 떠올려보자. 딕/제인이라는 교과서에 나오던 친숙한 캐릭터는 남/녀의 성적 차이를 구분하는 역할을 해왔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제인과 파란 옷에 운동화를 신은 딕은 똥 속에 들어가 있다.)
인종과 성,아이와 어른 등의 상징적이고 사회적인 것들을 모두 무로 만들어 버리는 배설물을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전시는 알차고 풍부했다. 다만 그가 차지하는 미술사에서의 위치와 작업방식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난해할 만한 전시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 앞에 펼쳐진 다소 우울하고 징그럽고 이해되지 않는 이 오브제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을지 모르므로, 우리를 형태화하고 형식화하려는 거대한 기성 미술들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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