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un-frame 152

la nuit des musées

일년에 한번씩 오월의 세번째 토요일에 파리의 뮤지엄들이 밤에 손님들을 맞이한다. 유료 방문자들이 다 나갈 무렵인 7-8시정도에 시작해 무료로 새벽 1-2시까지 개방한다. 물론 늦으면 이렇게 길게 늘어선 줄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ㅎㅎ 작년엔 그랑팔레에 갔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여튼 올해는 토욜 수업을 마치고 가야해서 동네 가까운, 늘 지나치지만 차마 입장료내고 들어가지 못했던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 이런 류의 뮤지엄은 우리집 어린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소.박제가 아니라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일련의 동물들이 건물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3층까지 이동하면서 뷰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이 동물행진이 즐거움을 준다. 각 층은 다윈이 정리한 종에 따른 진화를 '학습'할 수 있도록 매우 가지런하고 다양하게..

Picasso@ Paris

리뉴얼을 이유로 몇년간 문을 닫았던 피카소 미술관이 몇달 전 문을 열었다. 예산 낭비라고 욕을 엄청 먹으며 책임자도 바뀌는 사태까지 있었다던데, 그래도 모두들 기다리고 기다렸나보다. 베일을 덮어두었던 시간의 길이에 비해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도 많은데, 피카소의 작품들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 다양한 작품들이 한 작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으니까. 진정한 예술가 앞에서는 취향이라는 말이 스르륵 사라진다. 특별한 기획력도 필요없다. 그러니 이 공사를 맡은 이들은 잘해봐야 본전이란 이야기! 공간의 틈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카메라로 사진찍는 아이,

함부르그 반호프

옛 기차역을 개조해서 만든 베를린의 현대미술관, 함부르그 반호프는 미술관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큰 역과 공사장이 휑하게 펼쳐진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차역의 외관을 그대로 두고, 공간을 분할하기 보다는 통째로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한 공간을 크게 남겨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베를린은 무엇이든 크다. 거인왕국에 온 것 같다. 현대미술이라고는 하지만, 독일의 현대미술이 뭘까? 요셉 보이스는 아무래도 화석으로 남겨두어야 만하는 무게인듯하다. 그의 작업에 할애한 공간이 가장 크다. 그리고 또 다른 전시실은 워홀의 거대한 작품들이 시원시원하게 걸려있다. 무엇보다 안젤름 키퍼의 작업은 독일에 왔다는 느낌을 준다. 칸트를 비롯한 철학자들의 초상을 이용한 작업이나 오브제를 모래와 함께 붙인 작업들은 인상적이었..

Harun Farocki

​우리가 이곳을 찾아간 날은 운 좋게도 하룬 파로키 특별 전 중이었다. 게다가 글로만 읽었던 serious games이다. 전쟁에 참여하는 미군들이 훈련하는 과정, 가상 시뮬레이션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모든 옵션과 배경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가상의 공간에서 자기 옆자리에 앉은 총맞은 동료를 바라볼 수 있고 총소리와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린다. 모든 것은 게임과 다를바 없다. 단지 시리어스 하다는 것. 아니 때로는 게임보다 덜 진지하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이렇게 전쟁과 게임이 은유가 아닌 사실적으로 겹쳐있다는 것을 보는 순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 전쟁은 그들에게 단지 게임일 뿐이야, 를 확인하는 순간.머리가 띵하다. ​​​​​​

Olafur Eliasson_Contact

루이비통 재단에서 개관후 첫 특별전의 주인공으로 올라퍼 엘리야슨을 선택했다. 전시의 제목은 contact! 그의 철학을 아주 잘 보여주는 제목이다. 그의 명성이야 뭐 이미 테이트모던의 전시로 널리 알려진 바. 실제 그의 작품을 대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이번 주제는 주로 빛과 그림자 특히 빛이 왜곡시키는 시각과 상을 다루었다. 모든 조명이 꺼진 깜깜한 어둠속에 단 하나의 광원이 있다. 온 벽은 거울로 이루어져있다. 광원에서 나오는 빛이 벽에 만들어 내는 그림자는 사람들의 위치에 따라 거울로 반사, 반사의 반사, ...를 이룬다.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의 크기 때문에 관람자들은 그림자놀이에 흠뻑 빠진다. 거울에 부딪힐까봐 혹은 어둠 속에 경로를 잃을까봐 조심조심 발을 떼던 처음과는 너무도 다르다..

Fondation Louis Vuitton

거대한 조각 혹은 레고모형 안에 들어온 기분이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12년이라는 시간이 이런 작품으로 탄생했다. 프랑크 게리의 모든 특성이 압축되어 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할 수는 없다. 지도를 손에 쥐고 있지만, 미로를 헤매는 것 같았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자 동시에 찬양의 대상인것 같다. 여기로 치면 '명절' 한 중간의 아주 추운 토요일인데도 줄을 길게 선 사람들로 3,40분 남짓 기다려야했다. 건물 앞의 루이뷔똥 로고가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이 정도의 건물을 만들었으니 눈감아 주기로한다. 한쪽에서 보면 마치 거대한 배와 같고, (실제 프랑크 게리의 설계과정을 전시해 놓은 곳에 보면, 돛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 쪽에서 보면 뭔가 애벌레같기도하다.도저히 한..

구직, 임응식, 1953

몇년 전 덕수궁 미술관에서 본 적이 있는 임응식의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아야 할 일이 생겼다. 전시의 메인 이미지로 쓰였던 이 사진. 분명 그가 하려는 일은 구직일텐데, 옷차림이나 몸짓이 전혀 구직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 주인공. 손을 주머니에 꾹 찔러넣고, 벽에 짝다리로 기댄채, 모자까지 쓰고 있다. 사람들이 다니는 큰 길에서 몸을 돌려, 그와 세계를 반으로 가른 벽에 의지한 채. 50-60년대부터 슬슬 시작되는 도시의 활기에 맞춰, 미도파 미장원도 보이고, 사업상 만난듯 잘 차려입은 두 남자의 악수하는 모습으로 작가가 마련해놓은 사선을 따라 눈이 머문다.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도시의 한 중간 동네에 도착했다. 이쯤되면 그는 자신이 걸고 나온 구직이라는 글자가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