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78

[이것이 인간인가]

상징적 의미의 아우슈비츠를 남용하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고통 정도가 책상머리에 앉은 내가 할 수 있는, 머리가 곤두서는 상상의 최대치라는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인간의 모든 고통을 상징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든 노력에 대해 냉소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와 마주치는 모든 것을 아우슈비츠로 만들려는 환상적 현실인식에 대해 반대한다. 아우슈비츠보다 더 끔찍한 인간의 환상에 오해에 대해 조금은 우울해졌다. Käthe Kollwitz보다 이 글을 잘 설명하는 그림은 없으리라. http://www.a-r-t.com/kollwitz/images/

[Why I Write 중에서] 오웰의 글쓰기 지침

'언어와 문장의 오염'이라는 화두는 비단 한국에서만은 아닌가보다. 오웰의 글은 무거운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쉽고 명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이 책에서 오웰은 「정치와 영어」(1946)라는 글을 통해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글을 쓸 때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을 서술하고 있다. 오웰이 글의 서두에서 들고 있는 예들은 웃음을 띠게 하는데, 공부를 하면서 내가 대하는 거의 대부분의 논문들이 가진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예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쓴 글들도 마찬가지임을 부인할 수 없다. ㅠㅠ "글 쓰는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다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게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자기가 하는 말의 뜻이 통하든 말든 거의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렇게 뜻이 모호하고 표현력 ..

[중단없는 기도]

[중단없는 기도, 로버트 벤슨, IVP, 2010] 영성의 보화 시리즈 성무일도Daily office라는 전통 교회의 기도형식에 대해 저자의 묵상과 기록을 담은 책이다. 한마디로 하루 중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 하나님께 드리는 규칙적인 기도를 말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유식한 말과 전문용어를 피하면서 이 전통적인 기도를 접하지 못했거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무일도의 묘미를 맛보게 하고싶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다. '전통'이나 '의례'라는 말이 지닌 알 수 없는 딱딱함과 엄숙함, 갑갑함은 형식을 넘어서고 싶은 새로운 시도들을 만들었다. 오늘날의 예배에서는 이렇게 틀을 깬 예배 형식이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있지만 말이다. 저자의 의도처럼 물 흐르듯이 쓰여진 이 책은 특별한 정보..

[천년동안 백만마일] 삶은 여행, 삶은 이야기

[천년동안 백만마일, 도널드 밀러, IVP, 2010] 스토리 텔러, 이야기 꾼인 작가가 들려주는 모험. 어쩌면 소심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알고보니 흥미진진하고 모험가득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던가. 도널드 밀러는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아무도 대신 발견해 줄 수 없는 일상의 신비를 실타래 풀듯 풀어낸다. 그리고는 그 이야기를 써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말한다. 섭리라는 말이 가져오는 모든 아우라를 벗겨내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 권태로운 내 일상도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 더 극적인 요소들이 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갖게 되겠지.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 특별하고 기승전결이 확실한 이야깃거리를 원하는 이들은 아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고래] 그것은 삶의 법칙이었다.

"그것은 ...의 법칙이었다." 보잘것 없었던 버려진 한 여자의 삶이 무한대로 팽창해가는 과정을 연결하는 천명관식 후렴구이다. 읽는 내내 구역질나게 만드는 인간의 '욕망'을 대범하게 주조해놓았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금복의 죽음에 대한 묘사 _p.301)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갖다 붙여놓은 듯,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불운을 나열한 듯, 그렇게 금복의 삶은 흘러흘러간다. 어떠한 가치평가도..

목수정식 한국 보기

목수정의 전작을 꽤 재밌게 본 편이라, 신간이 나왔을때 바로 구매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이 책은 자의적이다. 그래서인지 매우 쉬운 책임에도 가독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작가로서의 목수정은 활동가 혹은 칼럼니스트로서의 그녀를 떠올리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있다. '야성의 사랑학'이라는 야심찬 제목에서 우리는 '사랑'과 '야성'에서 추론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소재를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사랑'에 대한 여러 차원의 사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야성이라는 것을 목수정 식으로 일종의 자신의 감정에 당당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따라서 절대빈곤이 만연하던 시절의 소박한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없음에 서글퍼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일상의 무기력함을 너무 쉽게..

[2006.06] 창작과 ‘파르헤지아(진실의 용기)’– 박이소의 예술

창작과 ‘파르헤지아(진실의 용기)’– 박이소의 예술 치우금속공예관 초청 심포지움 강연(2006.6.10,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 이영철(계원조형예술대학 매체예술과 부교수) 이 자리는 아마도 예술 창작을 함에 있어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다루어지리라 기대를 하고 오신 분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대부분 공예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조형예술대학의 교수이긴 하나 ‘조형’에 대해 특별히 별다른 흥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교환가치와 시장에 관심이 없는 저로서는 그 결과물에 대해 무관심하며, 발상이나 전개 과정, 그리고 그것이 전시 공간에서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중요하지요. 가난하게 살며 작품을 지속하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