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214

활기

다소 진보적이고 새로운 연구에대해 개방적이라고 알려진 이 학교는 동네 분위기의 악명과는 다르게, 이렇게 멋진 도서관을 지니고 있다. 파리의 국립대학들은 학교마다 중심 전공들이 다르다. 때로는 교집합도 있고, 특정 대학에만 있는 전공도 있어서, 한국에서처럼 어떤 전공에 대한 학교별 줄세우기는 쉽지 않다. 학교마다 분위기나 특성도 다르고, 서고에 특히 눈에 많이 띄는 전공 분야 책도 다르다. 예를 들어 마케팅이나 경제 등이 주전공인 학교들에는 예술철학 책 바로 앞에 관광 산업관련 책이 버젓이 꽂혀있기도 하다. 요즘처럼 공부하다가 한숨이 많이 나는 날은 서점놀이나 도서관 놀이를 즐기는데, 오늘은 예술에 안착했다. 특히 영화서고에서 오늘의 본분을 잊고 한참이나 이곳에 머물렀다. 크로넨버그를 만난 반가움에. 나는..

속좁은 일상_2 2014.04.05

만우절, 생명에 대해 생각해 봄

여기서는 만우절을 그 유래가 날짜변경과 관련있어서인지, 4월의 성좌인 물고기자리가 들어간 Poisson d'avril 이라고 부른다. 요즘 봄 타시는 우리집사람에게 장난 좀 쳤는데, 그만 너무 진지하게 믿어버리셨다. 그 덕분에 한참 동안이나 웃고, 반성의 뜻으로 집 앞 공원에 산책나갔다. 고고학 박물관과 화석 연구도서관이 함께 있는 Jardin des plantes 이건 우리집 베란다에 작년에 뿌린 씨가 자라 핀 꽃. 작고 예쁜 꽃이 만발했음.

속좁은 일상_2 2014.04.02

아늑한.

아늑한, 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색. 요리사님의 코스요리였는데, 사진은 이것뿐. 먹고 얘기하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브르타뉴지역 출신에 20대를 영국에서 보내고, 불어를 할 줄 모르는 한국요리사와 결혼한 그녀는 나에게 외국에 사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파리는 정말 살기 힘든 도시라며 자기에게 기꺼이 무엇이든 부탁하라고 말했다. 즐겁게 수다 떤 동굴에서의 저녁.

속좁은 일상_2 2014.04.01

근황

1. 아무리 열심히 스펙을 쌓아도, 직장에 꼬박꼬박 출근해도 내 미래는 밝지 않을 것임을 알고있는 평범한 88만원세대를 거쳐,엄청나게 높은 실업률과 집세를 자랑하는 파리의 외국인 유학생 부부로 살아가는 우리. 한달 내내 물류창고에서 일한 김은 아침에 통장잔고를 확인하더니, 절망했다. 이미 이번달 집세는 밀려있고, 두달전에 결제한 학비 수표가 그 사이 출금되어 버린 것이다. 결과는 또 마이너스. 2. 모두가 치를 떠는 체류증 갱신을 하고 찾으러가야 하는 기한이 다가왔다. 문제는 체류증을 찾으러 가기 위해 사야하는 인증우표 가격인데, 통장의 마이너스로 인해 돈을 찾을 수가 없다. 마침 집에 있던 현금을 들고 내가 대표로 가기로 한다. 일단 내 체류증 날짜가 예상이 안되기 때문. 가까스로 50유로짜리 우표를 ..

속좁은 일상_2 2014.03.28

발견

정말 폭풍같은 춘삼월이 지나가고있다. 크고 작은 시험들과, 그룹발표, 서류 준비, 체류증 찾기, 짧고 굵은 체면유지용 알바, 주말수업, 머릿속은 크고 작은 To do list로 가득하다. 유난히 다음 방학까지의 남은 몇주가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BnF 가는 길,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스퀘어 옆, 투박한 철근 건물이라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문이 살짝 열려있고 안에 작은 전시를 하고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 들어갔다. 이게 왠일! 안이 이렇게 생긴 동네 교구 성당이었다. 몇 백년씩 된 성당 건물만 보다가 갑자기 작고 아담하고 조용한 동네 교회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짧은 순간이지만 기도하고 강단에 난 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을 만끽했다. 방주교회의 강단이 떠올랐다. 늘 다니는 길이었는데 오늘에야 발견하다니. ..

속좁은 일상_2 2014.03.28

포지티브 전략

연일 화창하고 건조한 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낮에는 17도 정도를 웃돌고, 비가 안온지도 오래되었다. 파리의 겨울 날씨는 습하고 우중충한 회갈색이라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때는 눈이 부실정도로 햇볕이 강하고 건조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황사까지는 아니지만 봄 알러지가 극성이다. 대기오염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대기오염을 이유로, 이번 주말 (금,토,일) 3일동안 파리의 모든 대중교통이 무료였다. 왜 무료일까? 현실과 괴리된 몽상의 세계에 살고있는 나의 추측은 안좋은 공기때문에 사람들이 바깥 활동을 안할 것에 대한 우려? 파리시에서 이 정책을 제안한 이유는 대기오염을 강화시키는 자가용의 통행을 제한하기 위해서이다. 외곽에서 파리로 들어오는 대형트럭의 통행을 금지하고 배달차량들만 통행시킨다. 또..

속좁은 일상_2 2014.03.17

은헤 혹은 조바심

코스타에서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무언가 해야하지 않겠냐는 권유. 은혜를 담보로 자꾸 교회 조직에 나를 끼워넣으려는 사람들. 그래도 내가 이곳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뭔가 대책없고 근거없는 책임감 그런게 아닌데, 하면서 시니컬해지는 한편 그런게 아니라는 걸 확신하면서 오는 편안함 예전만큼 몸에 힘을 주거나 내 앞에 놓인 다음 스텝이 다른 모든걸 희생할 정도로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처럼 심각하지도 열을내지도 않는다. 은혜의 증거는 빨리 빨리 모든 걸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빨리빨리 무언가 해야한다는 조바심을 버리는 것.

속좁은 일상_2 2014.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