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229

excuse me.

꽤 오랜시간동안 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왔다. 때론 핑계도 대고. 꽤 오랜시간동안. 오늘 H랑 대화하면서, 신세지기 싫어하고 아쉬운 소리하기 싫고, 자존심 강한 내가 이렇게 많은 도움과 양해를 구하며 그리고 감사를 연발하며 살 수 있게 만들었던 그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떨때는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기도했지만, 늘 나의 마음 한켠에는 여유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양해를 구하고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긴긴 겨울이 끝나고, 그렇게도 춤던 겨울이 끝나고, 이제 봄이 왔다. 아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다. 이제 더 이상 excuse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건가.

손잡이

컵을 하나 깼다. 음료가 잘 식지않아 평소 선호하던 컵이었는데, 책상 위에서 분주히 무언가를 하다가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손에서 날아갔다. 날아갔다는 표현은 꽤 정확하다. 바닥에 던져지거나 놓친것이 아니었으니까 단지 책상에서 바닥으로 날아간 컵이 손잡이만 몽툭하게 된채 커피를 쏟아내고 있었으니까. 컵을 쓰는데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손잡이일지도 모른다.

철인삼종경기

뚤뭇과 싼균의 계략에 넘어가 예상치 못하게 긴 레이스를 펼친 순진무구한 처녀들. 첫날부터 50KM를 달리는 건 너무 과도했다.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나 길 줄은 우리도 몰랐단다. 공사 현장을 헤치고, 하남의 뻥뚫린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감상하고, 시골길도 달리고 양평의 음식점들은 뭐가 있나도 보고 다리도 건너고 눈길도 헤치고 남양주를 거쳐 돌아오기까지 눈물이 날뻔 했지만 자랑스럽게 끝났다. 이날 이야기를 하면 뭉클뭉클하다. 정선이 귀국기념 철인삼종경기 한날!

소말리아와 해적

'소말리아'하면 배가 불뚝하게 솓아오른 눈망울이 젖은 아이들이 배고프고 힘든 표정으로 보는 이를 응시하는 캠페인 광고가 떠오른다. 몇십년간 절대적 빈곤국으로 분류되어 가난과 기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소말리아. 최근 소말리아의 해적들이 한국의 원양어선을 납치하여, 선장이 총에 맞고 의식불명이 되고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는 소말리아 해적들을 소탕하는일에 국제적인 도움을 요청하여 이 일을 이슈화 시킴으로써, 이 기회를 틈타 이상한 안건 몇개를 슥슥 통과시키고 무리한 애국심을 조장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듯 보인다. (석선장의 중환자실 문 위에 걸려있는 대한민국 해군이 어쩌고저쩌고 는 정말 코메디였다.) 설 연휴에 그 뉴스를 접하면서는 석 선장의 쾌유를 비는 소식으로 도배된 것에 불만..

다시 HD를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제목을 패러디해봤다. 김용철이 삼성의 내부 비리를 까발린 일은 그 이면에 어떤 목적이 있었든, 자신의 내집단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고자 노력하는 나름 양심적인 행동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 혹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어떻게든 합리화하려고 하니까. 때론 그 합리화안에 온갖 불법과 비상식을 동원하니까. 내가 한때 있던 그 곳. 그 곳을 생각하면 미스트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밖에는 안개가 가득끼여있고, 언제 출몰할지 모르는 잠재된 위험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 외부의 적을 상정하여, 온갖 비합리와 몰지각을 동원해 한명 한명을 사냥한다. 특별히 영화적 완성도가 있지도 않고 진부한 디스토피아적 결말을 지닌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그 영화가 지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