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229

박부녀

60년생 택시기사 아저씨는 박ㅈㅎ가 좋다고 하셨다. 자신이 어렸을 적, 동네 청소를 하면 밀가루 한되박을 받아 끓여먹던 수제비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설명해주셨다. 라면도 귀하던 시절에 새마을노래를 부르며 부지런히 마을을 정비하던 즐거움에 젖어 꽤 들뜬 목소리였다. 지금 달리고 있는 도로도 박ㅈㅎ 시대에 만들어진 거란다. (박ㅈㅎ 시대에 이런저런 이유로 수감된 일명 '죄수'들이 만들었단다.-의문1: 죄수는 누굴까?) 박ㅈㅎ는 여러모로 우리나라를 지금의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리더십은 꽤 존경할 만 한데, 이유는 자신이 경제 발전을 위해 투자받은 돈을 자신의 부하들에게 잘 나누어 주었다는데 있다. (의문2: 이런 식의 정경유착은 비리가 아닌가? 부를 잘 분배해주는 거?) 장기 집권하려고 쬐금 비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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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때마침 읽은 조지오웰의 , 한겨레출판, 2010. 중에서 책읽고 맥락없이 발췌해오는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책상에 꽂혀있는 조지오웰 책을 펼쳐들어 읽었다. 저 책 중 '휴양지'라는 에세이에 써 있다. 단순함/너른/빈 터 이 단어들의 조합만큼 읽기에는 아름답지만 소유하기에는 어려운 단어가 있을까. 단순하면서도 넓어야하고 빈터여야 한다니! 나원참! 단순해지려고 복잡하게 계산하고있다. 더 너른 공간을 차지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 무엇으로도 더러워지지 않은 순진무구한 비어있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단순함의 너른 빈 터' 그 빈터에서 뛰놀 날이 있겠지. 기대하시라!

장마

내가 지나고 있는 시간을 감히 고난이라고 말하는게 가볍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뜻밖의 여러 상황에서 이 본문을 읽었을때의 쿵쾅거림은 주체할 수 없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란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2011.05.25. 일상

1. 미안하게도 그의 이야기가 그리 와닿지 않았었다. 수사적인 말투와 지나친 긴장이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만약 나였다면 그 순간을 견디지 못했으리란 생각을 하니 더더욱 미안해졌다. 2. 자본주의적 우울에 대해 그녀는 처음 생각해본듯했다. 전셋값이 2-3천씩 오르는 것인 이 동네에서, 월급쟁이들은 다음 계약일까지 그 돈을 죽어도 마련할 수 없다. 시간은 있지만 돈은 없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과, 이승우과 생의 이면에서 움직이면 돈이 들어 결국 방에 콕 쳐박혀 책만 읽었던 과거를 담담히 써내려가던 그 문장과, 월 말까지 있어야할 통장의 잔고를 떠올리는 일상들이 이제 우울을 벗어난 무료함으로 변해버리기까지 했다. 내년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고 싶다고 문득 생각했다. 아니 자..

@olympic park

서울 한 복판에서 이렇게 시야가 확트인 카페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이런 곳에 있으면 햇빛도 한껏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살짜기 영감이 솟아 오른다. 이 자리는 내가 나름 애용하는 자리인데, 롤러 스케이트를 강습받는 어린 아이들의 엄마들이 주로 옆에 앉아있다. 그러면서 강습을 받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육얘기로 열을 올린다. 그 옆자리에 앉은 나는 강습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이 경직되어 있을 거라고 혼자 상상해본다. 예전에 과외하던 아이들이 농구를 과외한다고 했을때 느꼈던 것 만큼이나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더이상 놀이가 아닌 공부가 되어버린 그것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써지지 않는 글을 계속 곱씹으며 흥분하고있다.

JIFF를 둘러싼 전주

JIFF에서 보았던 열편의 영화의 라인업은 너무나 훌륭했기에 하나하나의 영화에 달아야할 사족이 많다. (메모해 두었지만 정리된 글은 차곡차곡 올리기로 한다.) 전주를 떠난지 꼭 10년 만에 (물론 중간중간 참석했지만) 이렇게 오롯이 영화제를 위해서만 집에 온 적은 없었던 듯하다. 너무 편안하고 여유있게 즐겼다. 대학 때는 영화를 마치 더 알아야하고 더 많이 해석해 보아야 할 공부의 대상으로 여겼더랬다. 이러저러한 영역을 돌고 돌아 다최근 다시 정착해보게 되는 영역이 이 영화이다. 물론 8-9년 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수많은 인문학도들이 말하듯, 인간을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본다고 한다면, 영화의 형식적 즐거움과 미학적 향연을 모두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기술과 형식의 발전을 통해 영화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