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장마

유산균발효중 2011. 6. 25. 23:36

내가 지나고 있는 시간을 감히 고난이라고 말하는게 가볍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뜻밖의 여러 상황에서 이 본문을 읽었을때의 쿵쾅거림은 주체할 수 없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란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 위로에도 동참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후 1: 3-7)


어제 밤, 잠을 설쳤다.
충격적 사건에 대한 감정은 언제나 뒤늦게 그것도 아주 뜻밖의 시간과 장소에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프로이트가 옳았을지도 모른다. 사후성이라 부르는 프로이트의 이론.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 채, 갑작스레 들이닥친 이 놈.
4개월동안 무던히도 참아왔던 내 몸은 꽤 오랫동안 들썩거렸다. 

아마도 며칠째 비오고 흐린 날씨 때문이겠거니,
한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겠거니.

이런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미술관으로 향하는 비오는 토요일 오후.
지하철 안에서 부고를 들었다. 

아. 만약 우리가 지하철에서 그 글을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편안한 맘으로 전시를 보며 토요일의 여유를 즐겼을까?
어떻게든 어젯밤의 기분을 떨치기 위해 무어라도 했을까?
콩국수와 칼국수의 비리고 텁텁한 끝맛이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치질을 하고 올걸 하며 후회했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섞인 위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몇달동안 준비해왔던 죽음이라고들 했지만, 그래서 조금은 편해보였다고 했지만.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누구도 죽음을 준비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예상한 죽음이라해도 편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은 감히 쉽게 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도 그분께 질문했다. 
왜.냐고.
명쾌한 설명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전날 밤 갑작스럽게 아빠가 왜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열심히 울었던게 사실 다른 이를 향한 애도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괜찮아보였지만 곧 괜찮아지지 않을지도 모를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저 본문을 생각하면서.
그녀와 며칠전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하면서.

하지만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태풍이 오고있다. 
장마가 며칠 더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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