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229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추석 연휴

아빠 없는 첫 명절을 보냈다. 게다가 우리집의 분위기메이커마저 없이. 엄마는 쿨하게 볼일 다보고 천천히 오라고 말했지만, 진짜 내가 그랬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외롭고 적적해했었단다. 이모는 "언니가 너무 씩씩하니까 그래"라고 위로했다지만, 나 역시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런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니가 씩씩해보여서 그래."라는 말. 엄마와 누워 새벽서너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되어 이야기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좋다. 그래, 그냥 이런 정도를 여유라고 해두자. 그리고 스물아홉 생일도 갔다.

밤톨이

불과 한 달반 정도씩 차이나는 사진들인데, 불쑥 커있는 요녀석을 볼 수 있다. 보통 요만한 애들은 눈앞에서 재롱을 피워주면 웃기 마련인데, 얘는 잘 웃어주지 않는다. 심각하게 양미간을 찡그리며 집중한다. 그러다 피식, 단지 한쪽 입술만을 실룩거리며 웃어준다. 그것만으로도 감탄! ㅋㅋㅋ 이 동네에 이사올때 함께 자취했던 친구는 어느새 연애를 하더니 금방 결혼을 하고, 또 금방 아이를 낳았다. 첨에는 그녀와 나의 차이를 가늠할 수 없었는데, 얘를 보면 그녀와 나 사이 건널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꽤 까마득하기도 하다. 어쨌든 귀여운 녀석~~

커피 쿠폰 한장의 여유

전주에 오면 종종 들르는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있다. 커피가 싸기도하고, 맛도 괜찮아서 좋아하는데,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집의 쿠폰. 두가지 의미에서 인상적이다. 첫째는 직접 색도화지에 그린 그림이라는 점.*조금 조악해보이는 디자인도 있는데 오늘은 스폰지밥을 득템했다. ㅋㅋ 둘째는 카드결제가 안된다고 미안해하며 두잔을 샀는데 5개 도장찍어줬다. 아~쿠폰한장의 여유. 맛있는것 풍성한 전주의 여유로움.

시간

신기운, 요즘 나를 이끄는 건 아무래도 시간인 것 같다. 만약 무한한 시간 속에 산다면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을 것이고, 제한된 시간이 주는 가치를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겸손한 일인지 말이다. 영원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큰소리 뻥뻥치지 못하게 말이다. #1. 오늘도 비평문을 하나 마감하면서, 시간을 아쉬워했다. 결국 하드카피한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지도 못하고, 오탈자를 고치지도 못하고 내버렸다. 하루만 더 있었다면,,,하면서. 얼마나 부질없는 후회인지. #2. 또 하나의 사건은 토요일에 있을 발표가 메일제출로 귀결된 것이다. 괜찮다고는 말했지만, 내가 아무리 제 시간에 바른 과정으로 일을 처리했어도 결과..

불화

자아와 세계의 불화 . 결국 이것이 모든 내러티브를 창조하는 것이겠지. 불화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애증이 식어져버리면, 혹은 불화에서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거나 땅으로 꺼져버린다면 이 모든 이야기들은 일어나지 않겠지 고등학교 아이들 문제집에 나온 지문을 아이들이 별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친구와 대화하면서도 떠올렸고, 대학에서 만난 가장 뜨뜻한 선생님의 한국문학 수업에서 자아와 세계의 분열이라는 요소가 소설을 (테크닉적으로겠지?) 소설답게 한다는 말을 떠올렸고, 점심을 함께 먹었던 지인들과의 대화, 왕성한 에너지와 창작력을 가진 그녀의 말을 들으며 떠올랐다. 세계와 불화할수록 할 이야기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