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229

중간

실재는 언제나 포착할 수 없고 빠져나가기만 할 뿐. 가장 중요한 순간은 기록으로 남기기 힘든 법. 늘 지연되고 가리워질 뿐. 긴긴 할말은 일단 다음으로 미루어둔다. 만물을 통일되게 하시는 그 분에 대해 깊이 깨달았던 중간 심사가 끝났다. 결과는 아직 통보받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목적과 나의 목적이 다르며, 차선은 최선의 가장 큰 적임을 뼛속 깊이 알게되었다. 감사만 할 수 있을뿐. 가을은 어느새 성큼 떠나버렸다. 그리고 수고한 나에게 준 선물. 문지 시인선이 400권째 나왔단다.

지금, 기다림

11/04 기도 시간을 단축하려는 헛된 노력. 지난 시간이 아니었으면 나는 아마 여전히 효율성을 추구하며, 조건과 환경, 상황을 기대하는 맘으로 분투했을 것이다. 내가 바꿀수 있을 줄 알고 열심히. 그러나 지금 이자리와 이 시간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자리라는 말씀. 고난의 시간을 나의 자랑 혹은 오롯이 나의 성숙을 위한 시간으로만 여겼었구나. 교만, 회개 거기에 약간의 자기연민과 보상심리를 얹어서.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정도는 받을만 하지.하며. 과거에게 작별을 고해야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 졸업을 위한 시간으로 여기기보다는 모든 아픔과 아름답게 결별하는 시간이 되길 기도했다. 사람들의 평가와 나의 냉소, 그리고 여전히 두려움. 하지만 나를 통해 이들에게 복주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요셉이 그랬..

시한부

그렇다.마치 삼개월 암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시한부인생을 살고있다. 이 인생이 정확히 끝날 것을 알고있다. 죽음을 선고받은 자는 어떻게 살까. 먼저 과거를 회상할 것이다. 나의 과거가 얼마나 찬란했으며, 때론 배신과 미움도 있었지만 대부분 즐겁고 행복했노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서 슬픔이 찾아오겠지.서서히 아무렇지 않다가도, 갑작스럽게. 나의 경우는 주로 머리를 감을때. 머리카락 위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눈물을 흘리다 보면 이상하게도 슬픔이 점점 격해진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 죽음에 대한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될 것이다. 누구나 죽으니까라고 자신을 달래보기도하고, 왜 나만이라고 분노와 원망으로 하늘에 삿대질 해보기도 하고, 나처럼 슬퍼하는 누군가와 공감하고 싶기도하고. 이렇게 삼개월을 보내야 하나. 난..

지금

박경리 선생이 자신의 유고시집에 남겼던 말.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말을 내 식대로 패러-프레이즈해서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사실 ---를 채워넣기엔 아직 쌓여있는 ---이 없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 깨어있는 순간을 포착하려는 노력만이 있을 뿐. 진도 안 나가는 밤. 그냥 한장 찰칵! 남긴다.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했기 때문이기에.

29

나의 스물아홉은 왜 이리 파란만장하냐고 되물었을때, 그는 자신이 너의 나이에 결혼하고 군대에 갔으며, 바람부는 벌판에서 선임들에게 먼지나게 맞았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껄껄껄 웃었다. 슬픔을 가장 슬픔답게 표현하는 일은 어쩌면 웃는 것 밖에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슬퍼하다 지쳐서 그냥 오묘하게 웃어 버리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몇달을 보냈다. 무언가 '열심히'해 온 지난 4-5년의 서울생활이 어울리지 않을 옷을 입은 사람이었던 것을 긍정하듯. 진정한 정화와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래서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꺼내어보는 일이었음을. 지금 당장은 효과없는 이 쉼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지혜롭다고 평가될 만하게. 그렇게 잉여로서 살았다. 그리고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