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시즌1 229

[2010년 겨울의 끝 혹은 이른 봄]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정리하다가 문득 발견한 몇몇 장면들.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씩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와 나는 정말 닮지 않았다. 유일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면 바로 쌩뚱맞은 표정과 가끔 욱하는 성질과 합리적이지 않은 고집. 증거사진 몇개 더 첨가. 반면 그와 나는 누가 형인지 물어보는 질문을 받는 정도로 닮았나보다. 게다가 그는 울 엄마랑 나가면 다들 아들인줄 안다. 어쩌면 내가 아빠에게 말한 문장보다 그에게 말한 문장이 더 많을지 모른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닮은지도 모른다. 닮아야 하지만 닮지 않은 또 다른 사람. 닮진 않았지만 난 그녀에게 정말 많은 말을 한다. 이제서야. 이래저래 흔들리던 겨울은 그렇게 저물어 간다.

볼륨을 높여도.

볼륨을 높여도 계속해서 들리는 옆자리 아줌마들의 교육이야기. 공부를 안해서 답답한 아이들이 대한 이야기와 선행학습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와 공부잘하는 아이들이 집에선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 교환과 부드러운 Alexi Murdoch의 목소리 사이로 찢어질듯 들리는 신경질적인 목소리. 저녁인데 식사하러 안가시나 교육. 결국 자본주의시대에 부를 세습하기 위해 유일하게 여겨지는 방법. 물론 명목은 자녀들의 행복.

리영희님 안녕히.

리영희, "진실을 나누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라"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3에서 가져온 기사 성성한 백발에 인자한 팔자 주름, 세로줄이 들어간 청색 양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영정 사진이 조문객을 맞았다. 12월5일 0시40분경, 리영희 선생이 향년 81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차남 건석씨는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됐고, 3주전부터는 의식이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병세가 깊었던 탓인지 장례식장은 차분했다. 뇌출혈로 인해 펜을 들 수조차 없어 임헌영 선생과 함께 구술로 적어내린 자서전 (2005)의 마지막 장. 선생은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진정한 진실. 이런식의 제목을 쓰긴 싫지만!

#1. 오스트리아에서의 마르잔은 점점 적응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펑크스러운 헤어스타일과 화장으로 '변장'했다. 외부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리라. 마르잔 왈 " 적응을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한편으로 나 자신은 점점 더 나의 문화에서 멀어져가고, 부모님과 나의 뿌리를 배신하고 잇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마치 다른 사람들이 만드렁 놓은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러다 마르잔이 국적을 속인 걸 알게된 다른 애들이 하는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된다. 그들은 마르잔의 이상한 외모와 숨겨진 국적이나 전쟁을 겪은 일들에 대해 비하한다. 코에서 김이 나온 마르잔은 마침내 피가 거꾸로 돈다.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오는 마르잔... "나는 죽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일단.

오랜동안 앓고 있었던 대인공포증을 이겨내고 시내를 활보했다. 광화문근처의 갤러리를 헤매고 있을 무렵. 어디서 많이 보았던 인물이 좁은 골목길을 스친다. 알고 보니 학교 후배였다. 수업도 자주 같이 듣고, 서로의 동정은 어느정도 알고 있으나 개인적인 대화를 많이 해보지는 않은 관계랄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멈추기가 힘들어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과거, 밥한번 먹자. 연락할게. 꼭 보자 등의 기약없는 약속이 싫어 미뤄두었던 그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나의 철칙이 대화를 마무리 하는 기술의 부재로 깨지고야 말았다. 만약 그녀에게 연락이 온다면 진심으로 기쁘고, 소소한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나누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일정부분 그런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도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