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para-screen 162

소격효과

키치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소격효과는 키치와 꽤나 먼 한쪽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았다. 진실을 마주하기란 언제나 불편하다. 이차적 눈물과 예술에 대한 과도한 공감은 어떤 의미에서 키치적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는 키치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포함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 맥락에서 우디알렌은 너무나 모더니즘적인 사람이며, 관객의 어떤 공감과 어떤 눈물도 허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극 안의 캐릭터들 조차도 자신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도록 될 수 있는 한 모든 장치들을 사용한다. 배우들은 관객을 구경하고, 제작자들은 스크린에서 빠져나온 인물들을 찾아다니고! 핑크빛 꿈을 키우는 평범한 웨이트레스는 삶의 구질구질함을 영화의 환상으로 교체할 수 없음을 알고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시실리..

treeless mountain, 2009

산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산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산에 나무가 없다면, 산은 비바람에 곧 무너져내리고 말 것이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시간, 누군가를 보호해야 하는 시간 을 잘 보낸 사람들만이 가진 여유가 있다. 영화는 불우한 환경에서 꿋꿋하게 자라나는 이들에 대한 근거없는 동정과 안타까움을 배제한다. 얼굴에 난 점이 보일 정도로 클로즈업을 한 카메라는 작은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지금 자기에게 닥친 상황을 빨리 파악해야하고, 거기에 맞추어 의젓한 태도를 취해야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듯, 그러나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진 대사라고는 누군가를 부르거나, '나 이거 먹어도 되요?' 뿐이지만 희노애락을 모두 담은 표정을 가진. 빈. 그래서 도무지 예쁘게는 보이지..

Gouttes d'eau sur pierres brûlantes (2000)

*사랑에 위계가 있을까? 홍ㅅ수는 그가 의도하든 하지 않든 오종에게 빚지고 있구나. - tu viens pas? - t'as besoin de moi? - toi t'as besoin de moi. - j'arrive *파스빈더의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오종의 작품 특히 레퀴엠이 울리는 프란츠의 죽음은 연극성이 짙게 배어나온 장면이었다. *늘 다른 방향을 향하는 안나와 프란츠의 시선 *연결고리들 거울을 통해 보는 모습은 너무나 생경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시트콤에서 아들과 함께 자는 엄마의 모습에서 처럼. 총을 쏘는 상상을 하는 프란츠는 결국 자신에게 총을 쏜 것이었다. -시트콤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베라와 열리지 않는 창문

침묵의 병리학

1. 오종식의 블랙코미디는 오감을 자극하는 살과 피를 갖추고 있지만, 여타의 영화들처럼 찝찝하지 않다. 2. 시트콤의 가족은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하다. '아직' 이름을 갖지 않은 흰 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점점 기괴하게 변해가는 다른 가족들에 비해, 아빠만은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정상적'으로 살아간다. 사실은 가장 조용하고 일상적이며, 가족이라는 프레임에 딱 맞는 아버지만이 이 집안에서 가장 병리적이며, 비정상적인 인물이었다. 그것이 오종식의 가부장제 뒤집기이든,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든, 상관없이. 큰 흰쥐를 집어 삼키고 스스로 그 거대한 쥐가 되어버린 그에게, 게이 아들, 반신불수의 딸, 마조히스트 파트너, 금기를 풀어버린 엄마, 수상한 식모 등 모든 이들은 경쾌한 애도를 보낸..

모험가와 탐험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모든 사람의 환상과 애착을 자극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아니 내가 그런 것을 꿈꾸는 줄 알고 살았다. 기회와 여건이 된다면 언제든 훌훌 털고 보헤미안처럼 방랑하는 자유로운 삶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위에 책과 연필이 아닌 잡동사니가 올려져 있는 것이 싫고, 씻지 않은 손으로 누군가와 악수를 하게 되는 상황이 싫고, 지하철에서 누군가와 몸이 맞닿는게 싫고(그래서 때론 옆에 다리를 쩍벌리고 의기 양양하게 앉아있는 대한민국 아저씨들에게 한마디 하기도하고) 주전부리를 좋아하지만 손에 묻는 과자는 고르지않고 치킨을 먹을 때 손으로 먹는게 정말 싫고, 입었던 옷과 한번도 안입은 옷이 겹쳐져 걸리는 것이 싫고 가방을 아무데나 내려놓는 것이 싫어 늘 꼭 품고있고.. 그리고 결정적으..

걸어도 걸어도-결국 오즈 야스지로

러닝타임이 길어서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대한 과잉 평가가 나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는 작품이었다 특별히 튀는 연기도 없었고, 거슬리는 연출도 없었고,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는 장면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는 조금 더 말을 아껴야만 했으며, 조금 덜 친절했어야 했다. 결국엔 오즈 야스지로로 돌아갈 수 밖에! '꽁치의 맛'에 담긴 담백함과 깔끔함이 그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