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소격효과는 키치와 꽤나 먼 한쪽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았다.
진실을 마주하기란 언제나 불편하다.
이차적 눈물과 예술에 대한 과도한 공감은 어떤 의미에서 키치적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는 키치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포함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 맥락에서 우디알렌은 너무나 모더니즘적인 사람이며,
관객의 어떤 공감과 어떤 눈물도 허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극 안의 캐릭터들 조차도 자신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도록 될 수 있는 한 모든 장치들을 사용한다.
배우들은 관객을 구경하고, 제작자들은 스크린에서 빠져나온 인물들을 찾아다니고!
핑크빛 꿈을 키우는 평범한 웨이트레스는 삶의 구질구질함을 영화의 환상으로 교체할 수 없음을 알고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시실리아가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아도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이것이 우디알렌의 재기발랄함이다. 그의 영화가 그리 재미있는것은 아닐지라도,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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