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6

[Ad-lib night, 2006]

자국의 언어로 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물들의 대사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 때문에(물론, 무의식적으로) 속도가 느린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 한국영화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바쁜 한국사회를 거슬러가는 그들의 연출은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를 내심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이들 중, 최근에 보고 이윤기의 영화중 미처 보지 못했던 을 보았다. 영문 제목이 ad-rib night인데, 왠지 영화를 더 잘 표현한 것 같다. 여전히 이윤기표 우연한 마주침과 비어있는 공간이 매력적이다. 자신과 얼굴이 닮은 이의 방에 머물러 있게 된 주인공, 보경 혹은 명은. 그녀의 이름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단지 하룻밤만 연기를 해주면 된다. 거기 모인 사람들 중 유일하게 그의 죽음 자체만을 본다. 그래서 ..

[mother and child,2009]

쓸쓸하고 외롭다. 철저한 강인함으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덧대고 살아가는 두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엘리자베스(나오미왓츠)와 폴(사무엘잭슨)의 섹스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주도적인 엘리자베스. _ 카렌(아네트 베닝)과 파코(지미)가 사물함에 걸어놓은 토마토봉지를 가지고 욕하며 싸우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송곳같이 날카로운 카렌. 다른 시공간에 살고있는 모녀의 다른 듯 같은 모양의 삶이 서늘하도록 쓸쓸하다. '그녀를 보기만해도 알 수 있는 것'을 보고 산 VHS 테잎을 발견했다. 먼지가 폭 주저앉을만큼 오래전에 보았는데, 그날의 여운이 기억난다. 로드리고 가르시아의 섬세한 감성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다. 남성의 어떤 역할도 필요도 거부하는 여성의 강하지만 약한 삶에 대한 위로 역시도. ..

[King's Speech]

아카데미의 착하디 착한 영화들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오랜만에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 한편을 봐야겠다는 충동질로. 냉큼 츄리닝바람으로 달려갔다. 배우들의 연기 빼면 별것 없는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하면 조금은 무리이겠으나, 인물이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만드는 화면구성과 화려하지만 따뜻한 무늬의 벽지와 여백이 가득담긴 장면포착에 포인트가 있다고 하겠다. + 미확인 비행물체에 필적할 만한 마이크 앞에선 주인공의 심정이 잘 느껴진다. 그에비해 버벅 버티가 훌륭한 연설가로서 국민을 선동하기 위해 말더듬이를 고쳐나가는 과정은 다소 뻔하다. 인상적인 장면은 히틀러의 연설장면이다.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나 괴벨스의 연설을 생각해볼때, 히틀러만큼 선전의 기술을 발달시킨 사람은 그 누구도 없으리라. 늙어버린 가이피어스 흑흑 제..

[Black Swan]

1. 대런 아로노브스키에 관한 기억 레퀴엠을 어두침침한 친구의 자취방에서 보았을때, 환각상태에서 벗어나는데 며칠이 걸렸더랬다. 그 영화를 보고 불현듯, 중학교때 트레인스포팅을 보고 남았던 잔상들이 떠올랐다. 그의 다음 작품은 그래도 기대되었다. 2. 블랙스완이 나탈리포트만을 내세운 홍보는 영화를 대중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거 같다.ㅋㅋ 그래서 미국판과 포스터의 분위기가 사뭇다르다. 3. 정신분석 비평가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과도하게 많이 지니고 있다. 순수하고 노력파인 주인공이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광기와 악을 배워가는 과정이란 설정과 스토리 라인은 저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된 예술에 대한 너무 고루한 관점일진데,. 그럼에도 이 영화가 놓치지 않는 집착과 감각적 영상. 뻔한 스토리라인을 이..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1. 소피아 영화는 톨스토이에 관한 전기인 The last station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한다. 흔히 톨스토이의 말년은 그의 사상(공동소유제도나 무저항주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귀족출신의 부인과의 불화로 인해 쓸쓸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영화는 이러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그의 마지막 생애 1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톨스토이의 아내인 소피아(연기잘하는 헬렌미렌)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그려져있는데, 톨스토이와 그녀의 불화를 남편과 가족을 사랑하는 한 여인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뼛속까지 귀족인 그녀에게 가족의 미래를 져버리고 저작권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려는 톨스토이의 선택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소설은 소피아라는 여성에 의해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 소피아는 아마..

[엘 시크레토]

난 이 영화를 지배하는 그리움과 아련함의 정서에 그리 공감하지는 못한듯하다.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옛 사랑의 그림자' 식의 여운은 아카데미의 이목을 끈 한 중요한 요소였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가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의 상영작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이 아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리는 복수와 용서이며, 이를 잘 포착하고 유려한 이야기로 잘 만들어 냈다. 헐리웃 배우들의 정제된 외모와 연기가 지겹다면 아르헨티나 영화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을듯. 그만큼 배우들의 자연스러움이 극에 몰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조하자면, 이 영화가 진부한 스토리라인을 벗어날 수 있었던건 마지막 장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굳이 이걸 스릴러나 미스테리로 번역하는 센스들은 참 맘에 안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