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sage 즉, 지혜자라는 별명을 가진 샤를 5세는 영국과의 100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프랑스의 체면을 살린 그리고 왕권을 강화한 왕이자 문화나 학문적으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신에 대한 믿음도 깊었음은 물론이고 천문학이나 철학, 신학에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었고.
아직 다른 성들과 상대 비교는 할 수 없지만, 뱅센느 성은 그의 캐릭터만큼이나 주도 면밀하고 똑똑한 내부 구조를 갖고 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 장소는 왕이 기거하는 신성한 장소로서의 상징은 물론 전쟁의 요새이자 이후에는 정치범들을 가두어두는 감옥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시간은 흘러서 용도는 변화하고 주인은 바뀌지만, 그 모든 시간을 축적해놓은 이 장소는 현재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압축된 화면으로 보여준다.
이들이 공간을 보존하고 새롭게 창조해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빈 장소의 한 귀퉁이 벽에 영상을 틀어놓고 역사를 설명해주고, 벽에 흐르는 죄수의 편지(사드와 디드로도 여기에 갇혔었다)를 읽게 해 줄 뿐 아니라, 그들을 가두어둔 아주 두꺼운 벽과 어두움, 그들이 그린 지워진 벽화를 보며 나에게 없는 기억까지 떠올리게 한다. 성 안쪽으로 난 길인 왕이 걷던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사색을 하다가 때가 되면 울리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소리는 고요함을 깨고 그 어딘가로 집중하게 한다.
성과 마주하고 있는 생샤펠 성당에서는 계시록의 7봉인을 소재로 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알레고리로 가득한 무덤 조각을 만날 수 있다.
휑한 벌판에 우뚝 서 있는 이 성은, 요새, 성루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비록 밖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지라도, 비록 죄수의 몸으로 감옥에 갇혀 있을 지라도, 나의 몸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요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