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밤은 노래한다-김연수 (2008.12.18)

유산균발효중 2008. 12. 18. 10:04


이야기의 응집력은 전작에 비해 약했지만,
그가 쓰고자한 역사는 높이 살만 하다.
알게된 몇가지 단상들

1. 역시 문학은 역사나 철학보다 한 수 위이다. 
2. 우리나라 "간첩신화"의 시작-민생단 사건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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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8 나카지마와 정희의 대화중 나카지마의 말

"인간이란 말이지, 더없이 하찮은 존재야. 군홧발로 뭉개면 그 자리에서 속이 터져 죽어버리는 벌레와도 같아. 그렇게 뭉개보면 아는데, 더럽기 짝이 없지. 그런 게 바로 진실이야. 진실은 네가 말하듯 그렇게 아름다운 게 아니야. 죽어버린 몸뚱어리를 쌓아놓고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야. 그 정도로 하찮기 때문에 서로 죽여버리기 위해 총을 잡는 거지. 더없이 하찮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죽이는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거라고 그게 바로 진화의 신진대사야.
알아듣겠어? 낡은 것이 죽어야만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있는 거야.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너희들은 살아있다 해도 반쯤 죽어있는 거야."
 
그날, 내가 둘의 대화를 들으며 느낀 당혹감은 여태 잊히지 않는다. 맞다. 그때의 나는 조그만 덩어리의 세계 밖에 알지 못했다. 그 덩어리를 만들기 위해 쓰러진 수많은 나무의 세계를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카지마에게 어쩌면 정희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생각만 했던 것이다. 내 마음속으로 공들여 피운 몇몇 꽃들이 시들었다. 질투심과 분노가 그 꽃밭에 그늘을 드리웠다.
 
먼저 사랑이 오고, 행복이 오고, 질투심과 분노가 오고, 그리고 뒤늦게 부끄러움은 찾아온다.

71- 정희가 공산당의 첩자였음을 알게 된 나의 생각
 
국민부는 무엇이며, 조선혁명군은 또 무엇인지...나로서는 /주역/을 보고 사변을 예견했다는 둥의 이야기가 소설책에나 나오는 활극같아서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풍토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야심만만하나마 착실한 고학생이었지만서두, 여기 만주에서는 녀석마저도 황당무계한 헛소리를 늘어놓는구나.

만주에 사는 한, 나 같은 사람도 언젠가는 사람을 죽일 것이라던 나카지마의 말이 바로 이런 뜻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런 방면으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나는 한 줄 책에 실린 글귀에 위안을 받고, 퇴근하는 저녁 길에 머리 위로 떠오른 초승달에 행복을 느끼는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나중에야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등장한 그 사람이 내 손을 덥석 움켜쥐며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전혀 반가운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123-큰 충격으로 인해 송영감의 집에 묶으며 사진 인화일을 돕고 있을때. 충격으로 벙어리가 됐을 때
 
내 몸에는 어떠한 소망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내가 겁낸 건 바로 눈물이었다. 늙은 나무에 피는 꽃처럼, 내 마른 몸에서 눈물같은 게 나올까봐. 그래서 사람들이 내를 인간으로 볼까봐. 친절을 베풀고 나를 깜싸 안을까 봐 그리하여 사람들이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나 같은 놈도,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떠한 사람으로 되며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 같은 놈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까봐.

126-다시 말을 하게 된 내가 인화지를 보며
 
 인화지는 내 손을 반투명하게 받아들였다. 먼저 빛이, 그다음에는 어둠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인화지에 나타난 내 손 역시 빛도, 어둠도 아니었지만 동시에 빛이자 어둠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나는 지난 가을의 고통을 완전히 치유받았다. 지금 여기 내게 없는 것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와 함께 있는 것이리라.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빛도, 어둠도 아니면서 동시에 빛과 어둠인 세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그제야 슬픔 없이, 두려움 없이 정희가 그리워졌다.

142-경성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 나에게 송영감이 한 말

"젠장, 그런 결심을 하는 데 온 겨울을 다 보내야 하누? 겨우내 이번 봄에는 꼭 피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꽃이 피는 것이던가. 어디?"

247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당신도, 나도,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기도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꿀 수밖에 없다. 주인만이, 자기 삶의 주인만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지 않는다.
 
264-바시르와 왈츠를 이 떠오르는 장면
 
요즘도 나는 유격대 시절의 일들에 대해 마구잡이로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들의 얘기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날, 내가 겪은 일들은 모두 생생하게 내 몸안에 남아있다. 하지만 그건 논리적으로 회상되지 않는다.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봤는지 말하려고 해도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다시 말하려고 해도 그 전투에 관한 얘기는 어디까지나 그와 비슷한 어떤 일들에 대한 얘기일 뿐이지, 정확하게 그 일에 대한 얘기는 아니었다. 전투담의 본질은 거기에 있었다. 
전투는 지금 일어나는 일에만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만 하는 너무나 강렬한 경험이라 절대로 재현되지 않는다. 수치를 제와한다면 전사는 절대로 객관적으로 회고되지 않는다. 전쟁담은 세계가 얼마나 주관적인 곳인지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자리에서 전쟁담을 회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293

나는 누구라도 죽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정말이지, 나는 자신이 하찮게 느껴져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330-한홍구의 해제 중에서
 
민생단이라는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고 처형된 항일혁명가들의 혐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초기에 처형된 사람들은 '조선혁명''조선독립'을 주장한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숙청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일제에 체포되었다가 구사일생 탈출하거나 처형장에서 중상을 입고 살아돌아오면 가차없이 민생단으로 처형되었다. 일을 열심히 하면 정체를 감추려 한다고 민생단으로 몰렸고, 일을 게을리하면 민생단의 지령으로 태업ㅇ르 한다고 처형되었다. 밥을 흘리면 어렵게 구한 식량을 허비한다고 민생단, 밥을 설익게 하거나 태워도 민생단, 밥을 물에 말아 먹어도 용변을 자주 보느라 혁명과업을 게을리 하게 된다고 민생단, 고향이 그립다고 말하면 민족주의적 향수를 조장한다고 민생단, 가족 중에 민생단 혐의자가 나와도 민생단이 되는 등 간첩의 꼬리표는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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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단 사건의 거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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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와 동아시아 민중이 부딪힌 사건
중국 공산당 내에서 조선혁명 때문에 중국의 혁명 역량이 분산되는 것을 우려
일본의 만주 점령-간도를 조선에 병합하자_ㄱ중국 공산주의자들을 자극했다.
민생단은 원래 친일 조선인들이 제국주의에 반대한 민족주의자와 전향 공산주의자들이 합작하여 조선인의 간도 자치를 표방했으나
일제에 의해 자진 해산 되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내에서는 이들이 내부에서 첩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