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낯설게하기_소격효과?!

유산균발효중 2008. 7. 25. 10:21

 

브레히트가 위대한 극작가인 이유는 낯설게 하기 때문이라던데,

 

아직 그의 거대함을 제대로 알지 못하겠는 나로서는

또 맘대로 감상하기로 빠져버렸다.

예상보다 꽤 통속적인 그의 희곡이 왜 그런 찬사를 받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그러면서도 언제나 비평과 작품 자체가 가진 괴리감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여기서 잘 정리된 논문 한편

아하!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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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하기(Verfremdung)이론의 미학적 의의에 관한 연구*

                                                                  손 주 현**



머리말


현대 문명과 문화의 비인간적 속성에 대한 고발에서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 같은 비평가들은 전통적 미학의 개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특히 칸트의 탁월한 공식인 "미적 무관심성"이 오늘날의 예술 향유자들에게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대의 예술 이론이 자기정체성을 확보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인간의 쾌락주의를 양산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제기된 것이다. 18세기에 확립된 미적 무관심성 이론은 미학이론에서 하나의 공리처럼 자리잡았고, 자체 완결적인 형태로 이후의 이론들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개인 윤리의 강조만으로 인간 전체의 문화 작용에 영향을 끼치기가 어려워진 현대 사회에서 그 이론이 갖는 당대의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근대 이후 확립된 미학 이론이 20세기의 예술과 미학이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현대 미학의 보다 바람직한 향방은 무엇인지, 나아가 올바른 현대 문화의 위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가 요청된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위와 같은 숙고를 가능케 하는 하나의 모델 이론으로서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Verfremdung)1) 이론을 설정하였다. 

1929년 경제공황으로 전반적 위기 국면에 처한 세계체제 속에서 파시즘의 팽창은 인간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순수 예술의 자율성이란 개념마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던 당시 시대 상황은 예술에 대하여 현실의 개혁이라는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작가이자 이론가로서의 브레히트는 토대를 반영하는 상부구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선취할 수 있는 예술을 기획하였다. 즉 그는 기존의 예술이 갖고 있던 낡은 형식을 파기하고 새로운 시대를 예견하는 인간해방적 기능의 예술형식을 주장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넓게는 예술로부터 유용성을 분리시키지 않은 미학을, 좁게는 기존의 감정이입극을 대체하는 연극을 제안했던 낯설게하기 이론이다. 

낯설게하기(Verfremdung) 2

2

그러나 브레히트 이론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그의 주장을 연극 내의 형식 변화에만 국한시켜 논의해왔고, 그래서 그것은 브레히트의 이론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그 의의에 대한 숙고를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낯설게하기를 기법에만 주목하여 작품을 분석한다거나, 그것이 연극 내의 기법 변화를 통해 어떤 효과를 일으켰는가 하는 등의 연구는 낯설게하기 이론의 근본적인 의도에 접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낯설게하기 이론을 총체적인 견지에서 이해하고, 이 이론이 예술 전반에 미친 영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첫째, 낯설게하기 이론의 위상을 전체적인 철학적, 미학적 맥락 속에서 논구하는 것과, 둘째 그것이 연극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예술론 일반에서 운위가능함을 규명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를 통해서 이 이론을 구명하는 것은 낯설게하기가 현대의 미학과 예술론에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를 밝혀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본론은 낯설게하기 이론의 철학적, 미학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한다. 즉 1장에서는 칸트의 주객이원론과 헤겔의 주객의 변증법이라는 대립 구도 속에서 각각의 미학 이론에 대해 브레히트가 비판, 수용한 내용과 맑스주의 이론가인 레닌과 코르쉬로부터 그 한계점을 이끌어낸 과정을 먼저 살펴보고, 다음으로 루카치 미학과의 대결 속에서 구체화된 브레히트 자신의 미학을 고찰하기로 하겠다. 2장에서는 낯설게하기의 예술론적 특성을 리얼리즘론과 아방가르드적 경향으로 나누어 알아볼 것이다. 그것은 앞 장의 브레히트 사상을 확증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인 맑스주의의 예술관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 낯설게하기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마련되었다. 다음으로 3장에서는 그의 예술론을 개개의 예술 형식에 관철시키기 위해 시도한 연극적 작업으로서 낯설게 하기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시도할 것이다. 즉 그가 구체적으로 미학에서의 감정과 미적 쾌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며, 그것이 연극에서 어떻게 실천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4장은 낯설게하기 이론의 현대적 의의를 다른 전통적 미학 이론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낯설게하기 이론은 통시적으로는 무관심성 이론과 비교 가능하다. 이 비교를 통해 도출되는 낯설게하기의 강점, 즉 비공동체적 관심으로부터의 거리유지는 오늘날의 미학과 예술에 하나의 반성을 던져주게 될 것이다. 그러한 반성이란 미적 무관심성 이론에 이미 노정되어있던 예술의 자율성 왜곡, 그리고 그 귀결인 예술의 유미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성이다.

본고는 낯설게하기 이론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절대적인 예술 이론이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의 미학과 예술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암중모색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브레히트 이론이 갖는 극단적 면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의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동일한 문제 의식을 지니면서도 정 반대의 예술관을 강조했던 아도르노의 이론과 비교함으로써 낯설게하기의 한계를 지적해보고, 그것을 극복하게 될 때 세워질 올바른 예술 이론에 대한 위상 정립을 시도할 것이다.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 이론은 독일의 아카데믹한 전통을 끊임없이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토대는 언제나 칸트 이래의 독일 미학사에 두어진다. 왜냐하면 모든 새로운 것의 유용성은 옛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브레히트의 언명처럼 낯설게 하기 이론의 유용성은 이전의 미학사에 대한 통찰과 반성을 통해 주장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 이래의 독일 미학을 브레히트가 어떻게 비판, 수용했는지를 고찰하는 것은 낯설게하기 이론의 성격과 의미를 구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브레히트에게 사유란 무릇 현실에 파고드는, 현실에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 브레히트는 그러한 유용한 사고를 처음으로 가능케 한 철학자로 칸트를 꼽는다. 자연과학에 대한 칸트의 실증주의적 사고가 제시한 유물론적 정향은, 이전의 유희적 사유 경향을 일소하고, 철학을 인간의 영역에 도입하게되는 첫걸음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러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세계관을 주관적 관념론으로 규정하는 브레히트에게 칸트의 미학은 적절하게 수용되기가 불가능했다. 

주체는 물론 그 주체의 인식 대상마저 즉자적으로는 결코 인식할 수 없다는 물 자체에 대한 사유가 현실에 유용한 것이 될 수 없듯이, 주관적이면서도 개념화할 수 없는 보편성에 의해 지지되는 미적인 것에 대한 사유 역시 인간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


"칸트에 의해 만들어진 인식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간의 차이는 우리의 주된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비판은 항상 이용가능한 현상을 야기하는 물 자체에 두어진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고, 무엇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3)


칸트에게 미적 경험의 대상은 개념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그것이 주관의 소여(所與)일 뿐이므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성으로서 무관심성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와 달리 브레히트에게 미적 대상은 그 자체로 현존하는 것이며 개념으로 인식가능하기 때문에 무관심성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 된다.


"칸트의 미학은 예술 향유자들에게 그들의 관심에서 벗어 던질 것을 언명하였다. 그는 향유자들이 관심으로 규정하지 않고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관심에 의해 모든 상황을 규정하여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 그들은 예술이 아니었다면 인간에게 가능하지 않는 보편적인 인간적인 것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예술은 또한 보편적으로 인간답지 않은 것을 고집하는 관심을 넘어서서, 즉 삶 속에서 고유한 것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예술가의 세계는 기본적으로(원래가) 세계에 유용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적 관심에 따른 위협없이 전체로 향유될 수 있다. 향유자는 감정이입(혹은 미메시스)을 통해 무관심적으로 조건지워진 태도에 도달할 수 있다. 언제나 그들에게는 이것이 가능하다. 그 안에는 어설픈 사기가 들어있다."4)


그래서 주객의 변증법에 의한 이념의 진리 구현에 참여하는 한 방식으로 예술을 상정하는 헤겔의 철학방법은 브레히트에게 미학적 해결책을 제공한다. 헤겔에게 미-즉자적 단계의 자연미가 아닌 예술미-는 이념을 형상적으로 실현한 이상으로서,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철학과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정신의 자기전개의 일종이다.5) 그런데 이념은 개념 자체는 아니며, 현실화된 개념으로 현실의 진행과정의 소산이며, 객관적인 범주이다. 예술은 그것을 감각적으로 전달할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헤겔의 변증법은 세계의 해석에 과학성을 부여한 첫 시도로 간주된다. 낯설게하기 기법은 바로 이 변증법을 예술의 영역에서 구현하고자 기획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변증법은 헤겔적 의미 그대로의 변증법은 아니다. 브레히트는 헤겔의 변증법이 시민 혁명이 이룩된 시기의 그 진보성을 이미 상실했다고 판정한다.


"헤겔에 의한 변증법의 성립은 노동자 계급을 더 많이 생산하고, 그들의 도발적 성장을 방해하면서, 그것도 시민계급을 위해 그것을 강제하면서, 또 그들에 유착된 노동자계급을 고려하면서 이루어졌다. 헤겔 식의 Dunkelheit는 그의 은밀한 언어의 Dunkelheit이다. 세계는 숭배되고 인간성은 유보된다. 헤겔의 상(Bild)은 계산적이다."6)


브레히트는 예술가의 실천이 세계의 모순을 지양하는 과정에 필수적이라고 사고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헤겔이 설명하는 예술이 사회적 인간활동, 즉 노동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는 한에서 헤겔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브레히트는 그와 같은 인간의 주체적 실천의 필요성을 맑스주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레닌과 코르쉬로부터 배웠다. 

맑스주의를 구체적인 혁명 이론으로 확립시킨 레닌의 사상은 브레히트가 정치적, 철학적 사상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7) 그 중에서도 브레히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인간의 주체적 실천에 대한 레닌의 역설이다. 레닌은 절대적 진리로 향하는 전진은 정신적, 육체적 활동을 통해서 이성적이고도 감각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모사하고, 그것에 따라 모순을 발견하게 될 때 얻어진다고 함으로써 맑스주의의 기계적 반영론을 극복했다. 인간의 변형과 작용의 필연성을 강조했던 레닌의 가르침은 낯설게하기 이론의 철학적 기조이자 브레히트 연극의 주제로 등장한다.

한편 당시의 맑스주의 진영 내에서 일어났던 사상적 논쟁을 반영하듯, 브레히트의 사고에는 주관적 맑스주의 진영 내의 모순된 이론이 공존하고 있었다. 즉 청년 브레히트는 볼셰비키의 지도자 레닌의 사상 뿐 아니라 그의 이론을 과감히 부정하고 나선 코르쉬의 사상 또한 수용한 것이다. 칼 코르쉬는 레닌이 제기한 의식과 존재의 매개로서 인간의 세계 모사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정신 행위가 현실에 대한 직접적 자각을 통해 세계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관주의적 급진론을 펼친다. 코르쉬의 급진성은 혁명적 열정에 들떠있던 청년 브레히트에게 교육극이라는 유토피아적 미학 프로그램을 구상하도록 하는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8) 그러나 코르쉬는 브레히트를 경제주의적, 개량주의적 맑스주의 뿐 아니라, 국가 기구의 요청으로 빚어진 관료주의적 독단성이라는 레닌의 약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제공하였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브레히트에 대한 레닌과 코르쉬의 영향은 브레히트를 맑스주의 진영 내에서도 더욱 실천적인 방향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경향은 변증법에 대해 보인 루카치와 암묵적인 논쟁을 통해 논증된다. 

브레히트는 변증법을 보다 구체적인 인간 현실에 작용할 수 있는 철학방법으로 이끌고자 하였다. 그의 낯설게하기(Verfremdung)는 헤겔의 소외(Entfremdung) 개념을 미학적으로 전용(轉用)한 것으로, 이것은 단순히 정신의 자기외화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노동이라는 매개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외화 혹은 대상화를 확증한다는 점에서 맑스주의의 유물론적 예술관을 계승한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브레히트의 변증법이 헤겔과, 그리고 헤겔보다 더 헤겔 적인 루카치와 달라지는 철학의 변전을 확증하게 된다. 그는 변증법적 통일을 유보하고 즉자와 대자의 소외를 모순된 채 정지시킨다. 브레히트는 기본적으로 모순의 지양과정이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노동의 산물이라는 마르크스의 사고에 동의했기 때문에 헤겔이나 루카치처럼 모순의 화해를 낙관적으로 사고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순의 화해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진정한 통일은 그것을 정지시키고 모순과 그 지양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하였다.9) 브레히트에게 "예술이란 사회와 경제적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그 자체가 실제 형성해 나아가는 요소로, 또 사회적 인간의 생산적 활동을 구축하는 구성부분으로 이해되어야"10)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예술은 주객의 통일로서 이념을 단순히 현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으로 사고된다. 






브레히트의 예술관을 규정하는 것은 리얼리즘에 대한 그의 확장된 사상과 낯설게하기 기법이 갖는 아방가르드적 의미함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의 의미를 앞장에서 보여진 루카치 이론과의 대결 구도와 연관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리얼리즘적인 것은 사회의 발전의 계기를 강조하고 구체적이면서 보편화를 가능케 하는 것"11) 이라고 말한다. 브레히트는 현실에 대한 단순한 반영은 다양한 양상을 지닌 거대한 사회의 그물망에 대한 통찰 대신, 외면만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반응과 사회적 관계의 고유한 법칙을 관찰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그는 그것이 현실의 물질적인 동력을 추상적인 보편성으로 전도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리얼리즘적인 것은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체계를 밝히면서, 지배자들의 관점이 지배자들의 관점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인류가 처한 가장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포괄적인 방안들을 마련하는 계급의 관점에서 글을 쓰고, 발전의 계기를 강조하고, 그것의 구체화와 보편화를 동시에 가능케하는 것이다."12)


브레히트에게 리얼리즘이란, 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제반 모순이 통일 속에서도 화해되지 않은 채 남아있음으로써 사회의 변화가능성이 상징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문학적 상태를 지칭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그의 낯설게하기는 리얼리티의 차이 속에서 그것의 동일성을 확인하도록 하는 일종의 패러디로서, 사회적 법칙을 상징을 통해 상술하고 보편적인 대상을 구체적인 것으로 변형시키는 국면을 가지고 있다.13) 그러한 방식으로 얻어지는 현실에 대한 명징한 인식은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는 낯설게하기 뿐만 아니라 현실의 계기들을 표현한 것이라면, 그것을 환치시키든 변형시키든 형식의 구애없이 모두 리얼리즘이라고 본다. 이러한 그의 탄력적인 리얼리즘론은 그의 현실을 파고드는(eingreifen) 공격적 사고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문제는 연극이 관객에게 인간을 해석가능한 존재로 보여주느냐, 아니면 변화가능한 존재로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관객은 전자와는 전혀 다른 재료를 제공받아야 한다. 그때그때 인간과 사회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그리고 모순된 관계를 투시할 수 있도록 각기 관점에 따라 제공받아야 한다."14)


브레히트가 시도한 전통적 양식에 대한 도전은 아방가르드 운동의 정신과 상통한다. 낯설게하기 기법은 유기적 총체성이라는 작품 개념을 파기하고 작품과 리얼리티 간의 직접적 동일성이 아닌, 비동일성 속의 동일성을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비판적 관계를 정립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기획되었다. 아방가르드적 예술작품은 그것의 의미를 작품 전체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사실에 바탕을 둠으로써 새로운 유형의 예술을 가능케 하는데, 그러한 점에서 불연속적 줄거리 진행이나 독립된 사건이 각각의 현실에 대응하는 양상의 낯설게하기 연극은 아방가르드 예술인 셈이다.15) 다시 말해서 아방가르드 예술이 현실 생활로부터의 거리두기를 조장하는 제도예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면, 낯설게하기 이론 역시 갖은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다. 

전통적 이론에 대한 낯설게하기 이론의 부정은 두 가지 모순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루카치 식의 규범적 예술론을 거부함으로써 예술의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의 근본적 의도가 보다 실천적인 예술의 기능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의 자율성을 한계까지 내몬다는 점이다. 이 모순되는 의미가 낯설게하기 이론의 현대적 의의와 연관되어 있음을 우리는 나중에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란 무엇인가? 낯설게하기란 "명백하고 잘 알려진 그리고 분명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놀라움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16) 연극적 시도들의 통칭이다. 그것은 이전의 연극에서 관례시 되어왔던 가상적 현실의 제공을 파기하기 위한 시도로서, 직접적으로는 감정이입론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이전의 연극이란 관객이 연극을 마치 실제처럼 느끼도록 실제와 같은 무대와 인물 등을 재현하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그와 반대로 낯설게하기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극장 안에 앉아있음을 잊지 않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낯설게하기의 연극은 이전의 연극이 지켜야 했던 일련의 규칙, 즉 집약된 줄거리, 작은 부분들의 유기적 구성, 실제와 똑같은 재현 등을 단호히 거부하고, 어쩌면 공연상 치명적인 실수처럼 보이는 것까지도 낯설게하기의 한 방식으로 이용한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관객의 인식과 판단이다. 브레히트는 지금까지의 가상주의(Illusionismus)적 연극이 관객을 도취시킴으로써 자신의 현실과 분리되고,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처를 제공한다고 비난했다. 그러한 그의 비난은 시대의 변화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과학의 발전으로 경제적 신분이 상승된 시민계급이 예술에의 몰입을 통해 자신의 개인성을 확인했던 근대, 즉 초기 자본주의 사회와는 달리, 사회의 거대한 매카니즘에 좌우 당하는 현대에는 인간의 개인성을 예술 속에서 확인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하여 영웅적 개인이 세계에 승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근대의 인간들에게는 적합한 틀일 수 있어도, 그 개인의 과정이 실제의 자신과 현격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 현대의 인간들에게는 현실의 고난을 잊기 위한 방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7) 그래서 브레히트는 낯설게하기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그것을 판단하며, 연극이 제시하는 결과와는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연극을 내놓았다.


"그것은 (낯설게하기는) 무대 위에 그려지는 인물들이 더이상 그들의 운명에 내맡겨진 고정불변의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관객이 알게 한다. 관객은 그것에 의해 이 사람은 주위 상황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향으로 행동하게되고, 또 이 사람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연극은 이제 관객에게 세계를 손에 쥘 수 있는 것으로서 제시한다."18)


그러나 현실과 다른 것을 보여주기만 한다고 해서 그것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그 변화가능성을 간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연극(낯설게하기 극)의 재료인 게스투스(Gestus)가 구현될 때 가능하다. "게스투스란 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특정한 태도를 보여줄 때의 언어이다."19) 그것은 단순한 동작이 아닌 인간의 내적 관계, 정신적이고 주관적인 관계를 인간 상호간의 관계로 객관화시키는 특정한 태도를 의미한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의태적 표현은 낯설게하기를 통해 그 이면의 사회적 법칙을 가시화하게 된다. 

우리는 예술이 제공하는 쾌를 이야기할 때 그것을 항상 개념적 판단이나 비판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상정하곤 한다. 만약 전통적 미학의 틀 내에서 브레히트의 예술을 바라보게 되면 그것에서 전통적인 미적 쾌를 논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브레히트는 순수한 미적 쾌에 대해 논한 바도 없거니와 그러한 것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연극이 분명히 어떤 쾌를 제공해준다고 믿는다. 그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연극이라는 기관의 일반적 기능이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연극에서 찾아낸 가장 고귀한 기능일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을 넘어선 유용성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20)라고 말한다.

그러나 브레히트가 말하는 연극적 즐거움은 전통적 미학에서의 순수한 미적 쾌가 아니다. 그것은 인식에 의한 쾌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대상에 대한 미적 관심이 사회적, 도덕적 관심과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미적 관심을 포함해서 여러 인간적 관심이 조화된 예술이야말로 오늘날 과학이 행하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커다란 행복을 약속해 준다고 믿었다. 그러한 다양한 관심이 조화된 쾌를 브레히트는 '생산성의 쾌(생산성으로부터 얻는 즐거움 : die Unterhaltung aus der Produktivitat)'21)라고 부른다. 


"과학시대의 연극은 변증법을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있다. 논리적 전개 혹은 비약적 발전에 대한 놀라움, 모든 상황의 불안정성에 대한 놀라움, 모순적인 것의 기지(Witz)에 대한 놀라움 등은 인간, 사물, 그리고 진보의 생동성에 대한 만족이며, 그것은 삶의 기쁨뿐만 아니라 삶의 예술을 고양시킨다. 모든 예술은 그것들 중 가장 위대한 것, 즉 삶의 예술에 기여한다."22)


그것으로 그는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의 통일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는 예술의 감상에 있어 이성과 감성을 분리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예술가든 관객이든 그들의 감성적 태도는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태도와 분리되지 않는다. 비판적인 태도가 곧 예술적이고 즐거움을 주는 태도인 것이다. 그는 예술의 경계 자체가 확대되길 바라며,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예술관으로 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3)





낯설게하기 이론은 통시적으로는 18세기 미적 무관심성 이론과 비교될 수 있다. 그 비교는 '거리취하기'라는 유형학적 비교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이상의 의미란 우리로 하여금 무관심성 이론의 현대적 의미와 그것의 현대적 한계 제시를 통해 오늘날의 예술론에 대한 반성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18세기 미적 무관심성 이론은 샤프츠베리에 의해 당대의 개인적 이기심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상정되었다. 인간의 바람직한 윤리적 태도에 상응하는 바람직한 미적 태도의 설정은 흐릿하게나마 도덕과 예술의 상호연관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허치슨 등을 거쳐 칸트에 의해 발전될 때도 여전히 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즉 미적 무관심성 이론은 근대의 경제적 부의 성장에 따라 모든 것이 유용성의 여부로 사고되는 당대의 목적론적 합리성에 대한 경계로서, 미 자체의 강조만으로 선을 지향할 수 있었다. 개인적 이기심에 대한 거리 유지를 요청하는 미적 무관심성의 사고가 마련한 예술의 자율성은 자유와 해방의 의미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민 사회가 성숙해가면서 칸트에 의해 마련된 자율성의 의미는 그 안에 노정되어있던 문제가 전면화되면서 퇴색하게 된다. 이제 예술은 현실을 미화하고 그럼으로써 파시즘 질서를 정당화하며, 현실로부터 도피를 조장하는 파시즘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예술의 자율성이란 개념이 해방과 자유의 의미를 점차 상실해가면서 예술을 사회와 의도적으로 분리시키게 되면, 기득권을 온존하려는 세력에 의해 이용될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기 때문이다. 인간 다수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어떠한 정치적 참여라도 방해하려는 수단으로서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은 이미 예술의 타율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미는 진 이상을 표현해서는 안된다. 미화의 현란함 속에 사는 시대에서는 그 아름다움 속에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24)라고 함으로써 어떤 예술이 파시즘을 옹호하는지에 대해 후각을 긴장시켰다. 그러할 때 그의 예술적 자율성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예술의 정치적 도구화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그의 주장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관심이 아닌 반공동체적 관심에 대한 거리취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브레히트는 파시즘의 선전예술 뿐 아니라 현대의 유미주의 예술에도 동일한 경고를 하고 있다. 예술의 자율성이 사회와 예술의 무연관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파시즘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술의 자율성 개념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예술의 자율성은 예술을 위한 예술의 절대적 자율성과 아울러 예술제작자의 단순한 주관적 상상력으로서 고유성을 지니되 여타 영역과의 연관가능성을 내포하는 상대적 자율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칸트적 의미에서 자율성은 관념적이긴 하지만, 전적으로 절대적인 의미의 자율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영향 아래 놓여있는 오늘날의 이론들이 주장하는 자율성이란 절대적 의미에서 자율성이다. 미적 태도론의 무효성을 그것이 주장하는 비미적 관심들의 배제에서 이끌어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25) 

이와는 달리 브레히트는 미 자체만을 강조하는 것이 복잡하고 비인간적인 현실의 관계망들을 은폐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예술가가 중립을 지키는 일이란 불가능함을 이렇게 강조했다.


"자기 자신의 견해나 의도 없이는 모사할 수 없다. [……]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멸적으로 생각할 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상만 된다면 예술을 최상의 영역에 두고 싶어할 테니까. 그러나 인간을 위한 중대한 결정들은 땅 위에서 내려지는 것이지, 하늘에서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예술에서는 지배계급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6)

예술의 순수한 미적 관심의 강조가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쾌락주의와 유미주의에 의해 도용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은 중립적인 척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은 것같지만 현실을 잊고 예술을 소비하는 것에 전념하도록 부추긴다. 브레히트에 의하면, 절대적 자율성을 주장하는 예술은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잠시 벗어나는 수단으로 예술을 격하시킬 뿐이다. 아름답기만 한 예술도 예술일 수는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요청되는 예술은 이러한 작은 예술이 아니라, 인간성이 개입된 좀더 큰 예술임은 분명하다. 이는 절대적 의미가 아닌 상대적 의미의 자율성, 미적 관심과 사회적 관심의 결합가능성에 대한 또다른 표현일 것이다. 요컨대 브레히트는 예술의 절대적 자율성 논리가 개개의 모든 예술 형식에 적용되어 있다고 보고, 그것을 하나하나 분쇄해 나아가는 첫 시도로서 연극의 고착된 형식의 분쇄, 즉 낯설게하기를 제기한 것이다. 상부구조는 토대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영으로 그치지 않고 미래의 토대에 대한 예견과 선취의 능동적 기능 또한 가지고 있다. 그는 "문화, 즉 상부 구조는 그 자체의 자기 전개의 요소로, 특히 무엇보다 과정(Prozeß)으로 사고되어야 한다"27)고 말함으로써 예술의 능동성을 일깨웠다. 그것을 위해 모든 제도 예술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형식이 필요하다. 낯설게하기라는 새로운 형식은 무엇보다 기존의 예술개념 내에 사회와의 연관성을 마련하는, 그러면서도 연극적 고유성을 잃지 않는 연극 수립을 위한 선결 조건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 이론이 갖는 미학적 의의는 무관심성 이론이 무제한적으로 확대될 때 발생되는 자율성주의 미학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이론은 예술의 순수한 미적 기능과 진리함축적(교훈적) 기능의 이원주의를 지양하고, 자율성이 보장되는 한에서 공동체적 관심과 결합된 새로운 단계의 예술이론이 도출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현재적 관점에서 예술의 진정한 방향에 대한 숙고를 불러일으키며, 오늘날의 쾌락주의적, 혹은 도구주의적 예술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 것이다. 예술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것은 미적인 것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율성에 대한 논의의 복잡한 양상은 "미적인 것의 자율성을 수립하는 일은 그 자율성을 지양하는 문제와 동일한 근원에 결부되어 있다"28)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 이론에는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눈에 띠는 점은 그의 이론이 갖는 계몽주의적 색채이다. 그것은 그가 규정한 생산성의 즐거움이라는 것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시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도덕적 관심과 예술적 관심의 차이를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고유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그것을 사회에 접근시킨다. 예술의 자율성은 형식문제에 국한되며 그 형식에는 이미 내용이 각인되어 있다. 따라서 예술의 미적 측면은 도덕적, 사회적 측면과의 관계(차이) 속에서 더이상 강조될 수 없는 것으로 공식화된다. 낯설게하기가 도구주의와 다를 바 없는 이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성의 쾌에 담긴 미적 쾌의 본성에 대한 명징한 설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브레히트의 한계를 지적해주는 이론이 아도르노를 주축으로 한 비판이론이다. 특히 아도르노는 현대 문화에 대한 브레히트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그 해결을 위해 요청되는 예술의 상은 전혀 다른 것을 제시한다. 예술이 갖는 사회와의 연관성을 간접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아도르노에게 있어 브레히트의 사회변혁적 목표를 지닌 예술은 진정한 예술로 인정될 수 없었다. 그는 브레히트의 의도가 그 교훈적 제스처로 인해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고 단정한다. 그의 이율배반적 예술논리, 즉 사회와 멀어질수록 더 가까워진다는 논리에 따르자면, 예술의 다의성을 일소하고, 사회를 명시적으로 -비록 형식적으로 환치와 변형이 일어날지라도- 드러내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는 브레히트의 미학은 진정한 예술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었다.29) 그의 이율배반적 논리가 아니더라도, 예술이 그 고유성을 잃을 때라면 그것의 사회적 영향 또한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브레히트 또한 이 점을 인정했으며, 그러했기 때문에 후기에 가서야 연극은 어찌됐든 재미있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일보 후퇴시켰다.

이와 같이 재료의 전체 사회적 규정성과 예술가의 무의식적 실천의 공속이라는 아도르노 미학의 강점은 브레히트 미학의 약점, 즉 예술의 고유성에 대한 간과를 지적해준다. 다시 말해서 '작가의 팔꿈치를 움직일만한 자유'만큼만 시도된 브레히트의 미학은 사회와 직접적으로 관계맺는 예술론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래서 그 실천주의적 일탈의 폭이 더 확대되어야 함을 아도르노는 지적한다. 그러나 반대로 예술과 사회의 버팀목인 재료개념이 그 수용적 측면의 고려없이 지나치게 일반적으로 거론된다는 점이 문제시될 때라면30), 그러한 아도르노의 약점은 브레히트 미학이 가지는 강점을 돋보이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아도르노처럼 예술과 사회의 관계맺음을 작품의 내재적 힘에 내맡겨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의 직접적 영향력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적용함으로써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려는 브레히트의 노력에서 발견된다. 그 결과 당대 예술의 부정적 흐름에 대해 사회와 등진 예술을 옹호하는 암묵적 시위에 그친 아도르노와는 달리 브레히트는 그러한 경향을 하나하나 분쇄함으로써 정면돌파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그러한 점에서 브레히트 예술의 권위적 성격을 비난하면서도 그 내용의 자기성장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아도르노의 언급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정치적 실천의 일부이기도 한 예술작품의 자의식은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기만에 맞서는 힘으로서 성장하였다. 브레히트의 실천주의는 그의 작품이 지니는 미학적 형식 요인으로 되었으며, 직접적인 영향 관계에서 떨어진 작품의 진리 내용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 "31)


그러나 이와 같은 자의식의 성장은 아도르노가 파악한 것처럼 예술가의 사회에 대한 무의식적 각인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것은 예술을 사회로부터 떼어내려 하는 제반 경향들에 대한 예술가의 의식적 저항, 그것이 아니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브레히트 예술의 내용은 항상 형식을 규정하지만, 그의 실천적 갈망에서 도출된 변화된 예술적 형식의 추구는 반대로 내용을 규정할 수도 있다. 우리는 다시 여기에서 현재적 의미라는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어쩌면 그의 시대보다 더 복잡해지고 미묘해진 사회적 상태는 예술과 사회를 더 밀착시켜야 할지 모른다. 그러한 점에서 브레히트 미학이 가지는 강점은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브레히트의 예술론은 해석에 따라 그 한계가 상쇄될 수도 있고, 증폭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낯설게하기 기법을 통해 후기 자본주의의 관리되는 예술에 정면 대응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예술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미적 무관심성이론의 사회적 역기능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관리되는 예술에 저항하는 비판이론의 무기력함에 대한 반성이기도 한 것이다. 낯설게하기 기법이 함축하고 있는 진정한 예술이란 현실의 단순한 인상학적 판독물이 아니라 미래 사회에 대한 예견이다. 다시 말해서 낯설게하기 이론이 구축한 진정한 예술의 위상정립은 오늘날의 예술에 대한 논쟁, 즉 소비향락적 예술 경향에 대한 논쟁에서 제기되는 물음들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브레히트의 주장은 예술과 사회의 연관성에 대한 지나친 낙관성으로 인해 예술의 자율성에 관한 우리의 물음에 명쾌한 답을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한 답은 현대 예술에 동일한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예술의 자율성에 강세를 두는 비판 이론의 여러 가지들과의 비교 고찰에서 가능할 것이다. 


맺음말


낯설게하기 이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낯설게하기 기법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그것의 토대가 되는 철학과 미학으로부터 되짚어보는 방식이 요청된다. 본고는 칸트 이래의 독일 철학 전통 내에서 브레히트의 이론이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낯설게하기 기법을 예술론, 연극론으로 점차 구체화시킴으로써 그것의 미학적 의미 규정에 접근코자 하였다. 

그것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었던 결론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낯설게하기 이론은 미적 무관심성이 발전되어온 이래 불가피하게 파생되었던 예술의 절대적 자율성에 대해 비판과 대안 제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즉 예술의 자율성 개념에 기대어 예술을 소비적이고, 일회용적인 향유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린 현대의 왜곡된 예술 경향들에 반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둘째, 낯설게하기는 위와 같은 비판과 대안 제시를 이론적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험과 실천을 통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실행하였다. 

브레히트의 사상과 이론은 크게 193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내용 층위 중심에서 표현 층위 중심으로 강세이동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서, 예술 작품을 하나의 사회적 혁명도구로 간주하고 인간의 사회적 비판 능력에 대한 도야를 그 목적으로 삼았던 전기의 유토피아적 예술관과는 달리, 후기에서는 작품 내의 미적 가치에 좀더 관심을 두고, 그것을 사회적 실천으로 몰고가려는 변화를 보인다. 우리는 지금까지 브레히트가 전기의 교훈극에 대한 주장을 거둬들이고 사회적 가치와 미적 가치를 변증법적으로 접목하려는 데에 고민을 집중하는 과정을 살펴보아왔다. 그것은 1920년 대 소비에트의 건설로 초기 자본주의의 붕괴에 대한 낙관적인 사고가 청년 브레히트의 혁명적 정열을 고양시켰으나, 스탈린 시대의 경직성에 실망한 후기에는 유토피아적 사고가 축소, 지양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예술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브레히트의 이론을 운위하는 데 있어 한 부분만을 가지고 전체로 해석하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는 그의 후기 사상을 가지고 전체적인 본성과 의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단편적인 그의 이론들이 주로 집약된 것이 후기의 『연극을 위한 소지침서』이며, 그 안에 전기의 극단적 면모에 대한 반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논의는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보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따라서 낯설게하기의 현대적 의의는 과거의 미학 사상에 대해 우리의 현재 상황이 제기하는 의문에 대한 답일 수 있다. 그러한 답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즉 예술 창작에서의 예술가의 무의식에 대한 강조와 감상에서 현실과 분리된 순수 미적 관심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의 예술을 쾌락주의적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으며, 그것의 극복은 자율성이 존중되면서도 공동체적 관심이 내포된 예술 창작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의 자율성을 그 본래의 의미인 자유의 공간을 유지하는 방향에서 사회적 관계를 염두에 두는 것과 그 자율성 개념을 자율성주의와 같은 이념의 맹신을 통해 그것을 의식적으로 분리시키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의 진리함축적 기능은 지금까지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주장되어 왔지만 그것의 합의점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그 합의점을 찾을 수 없지만 -왜냐하면 본고가 모델로 삼는 브레히트의 이론은 자율성을 훼손시키는 방향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낯설게하기 이론이 제기하는 현대의 쾌락주의적, 소비지향적 예술에 대한 반성을 통해 문제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 글은 필자의 석사학위논문(96년 2월)을 축약한 것이다.

1) 'Verfremdung'이라는 용어는 소외(疎外), 이화(異化), 소격(疎隔), 생소화 (生疎化)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있다. 브레히트 자신도 초기에는 헤겔 철학과 맑스주의 철학에서 비롯된 소외(Entfremdung)와 혼용하고 있으나, 후에 이것과 엄격히 구별한다는 점에서 소외는 그 번역 용어로 부적당하다고 본다. 또 이화는 다르게 본다는 의미에서 낭만주의의 다르게보기와 혼동될 염려가 있고, 그밖에 소격이나 생소화는 본래의 번역에 뒤따르는 또다른 한자번역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여기서는 낯설게하기 혹은 낯설게보기로 통일하기로 한다.
2)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과 사물은 사고될 수 없다." GW 20, S 155.
"우리는 사물을 변화시킬 때 그것을 인식한다." GW 20, S 172.
3) Bertolt Brecht, Gesammelt Werke (* 이하 GW) 20, Suhrkamp Verlag, Frankfurt a. M. 1967, S. 140.
4) GW 20, S. 144.
5) 물론 예술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모두 정신의 관심을 인식하게 해주는 참된 그리고 절대적 방식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그 형식으로 인해 특정의 내용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진리의 특정한 범위와 단계만을 기술할 수 있을 뿐이다. G. W. F. Hegel, Vorlesungen über Ästhetik, Suhrkamp Verlag, Werke 13b. 1986, S. 22-25 참조.
6) GW 20, S. 150-151.
7) 브레히트는 그의 정치적, 철학적 사상을 비유적으로 피력한 수필집 『묵적/변전의 서(Meti/Buch der Wendungen』에서 레닌의 영향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저서에서 레닌은 탁월한 변증법의 대가로, 여러 정치적, 사상적 지침의 제공자로 그려진다. GW 12, S. 425-431 참조.
8) Wolfdietrich Rasch, Bertolt Brechts maxisitischer Lehrer, Merkur, 17, 1963, S. 996 - 1003. (이 저서의 부제인 '브레히트와 코르쉬 사이의 미발표 서신'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간의 의견 교환을 추적함으로써 라쉬는 코르쉬를 브레히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그는 코르쉬의 사상이 브레히트가 혁명의 중요한 요소로 비판적 의식을 강조하게끔 했다고 주장한다. S. 996)
Jan Knopf, Bertolt Brecht, Frakfurt. a. M., 1974, S. 140-165. (라쉬와 달리 크노프는 코르쉬의 변증법과 브레히트의 변증법은 그 내용이 같지 않음을 주장하고, 코르쉬에 대한 브레히트의 사상적 종속은 부분적임을 강조한다.)
9) GW 20, S. 150-151.
이 점에서 그는 아도르노와 닮아있다. 그는 변증법의 종합을 단순한 화해와 통일로 보지 않고 대립된 양자가 통일 속에서도 그 모순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래야만 모순이 명확하게 부각될 수 있고, 그것이 화해를 통해 무화되지 않고 실천으로 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GW 16, SS. 923-925.
10) Klaus Detlef Müller, "Der Philosoph auf dem Theater"과 Mitten Zwei, "Die Brecht-Lukács Debatte"에 루카치의 사고와 브레히트 사고의 변별점이 드러나 있다.
11) GW 19, S. 336.
12) GW 19, S. 336.
13) Gerd Irrlitz, "Philosophiegeschichtliche Quelle Brechts", in Brechts Theorie des Theaters, Hrsg Werner Hecht, Suhrkamp Taschenbuch Materialen, Fankfurt a. M. S. 22.
14) GW 16, S. 920-921.
15) 페터 뷔르거,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 최성만 역, 심설당, 1986, 153쪽 참조. 뷔르거는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가 예술의 자율성을 파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초기 아방가르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그의 낯설게하기는 제도 예술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과 개개의 요소가 독립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작품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와 관계되고 있다.
16) GW 15, S. 301.
17) GW 15, S. 224-225.
18) GW 15, S. 302.
19) GW 16, S. 610.
20) GW 16, S. 663.
21) GW 16, S. 670.
22) GW 16, S. 702.
23) 이 부분은 그의 후기 저작 '연극을 위한 소지침서(Kleines Organon fur das Theater)'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는 교육극을 중심으로한 전기의 혁명적 낙관주의에서 빠져나와 후기에는 예술이 주는 즐거움에도 주목하기 시작한다. 생산성의 즐거움은 전기에는 전혀 부각되지 않았던 예술적 즐거움이 인식적 즐거움과 구별되는 것이되 예술 속에서 항상 통일된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사고의 발전 속에서 이루어진 개념이다. GW 16, S. 701-792 참조.
24) GW 18, S. 113. 브레히트는 감정이란 역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의 예술적 실현은 현실에 존재하는 이성의 정도와 역비례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근대의 합리주의적 분위기가 예술에서 최대치의 감정을 요구했다면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비합리적 경향은 감정의 최소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비합리성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의 강조가 오늘날 예술의 최대의 임무라고 말한다.GW 15, S 244.
25) 딕키가 스톨니쯔의 주장을 무효하다고 주장한 것은 비록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이지만 그 비판점이 도덕적 내용의 작품을 비미적이라고 보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참조하라. 조지 딕키, 『현대미학』, 위의 책, 128-129쪽 참조.
26) GW 16, S. 687.
27) GW 20, S. 76.
28) 페터 뷔르거, 『전위 예술의 새로운 이해』, 172쪽.
29) "브레히트의 교수법적인 제스처는 사유를 불붙여주는 다의성에 비관용적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권위적이다." Adorno, Ä, S. 360, 홍승용 역, 374쪽.
30) 페터 뷔르거, 위의 책, 105-106 참조.
31) Adorno, Ä, S 360, 366. 홍승용 역, 375, 38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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