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지하철의 게시판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 낙서가 유명해지자 사람들은 청년에게 다가와 말을 걸기도 하고, 그림에 대한 코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미술을 전공하는 청년은 그들과 대화하는 것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기도 하고 대중과의 소통에 만족하게 된다. 경찰에 경범죄로 체포되기도 한다. 검은 흑판에 달랑 분필 하나만을 들고 단숨에 그려낸 그림들은 '사랑' '평화'등의 공익광고스러운 메시지를 담고있다.
거대해져가는 미디어와 삶에 깊이 침투해버린 자본에 대한 예술의 응답은 POP아트로부터 시작되었다. 팝아티스트들은 변해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돈을 벌 수 있는 작업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60년대 라우셴버그, 리히텐슈타인 등으로부터 워홀에서 그 정점에 이른 팝아트는 키스해링에 이르러 공공영역에까지 확장된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미국 사회는 변화의 핵심에 자리잡게 되고, 동시에 자본주의의 폐해가 가장 극심하게 나타나는 장소가 되었다. 날카로워져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적중한 듯하다. 그가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사랑, 평화, 반전, 낙태반대 등의 주제는 착하다 못해 고리타분하기까지 하지만, 냉랭한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해주며 실현하지 못하는 이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가교였다.
키스해링은 역시나 천재적인 과감함과 기획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만화의 한 장면같기도 하고, 광고같아 보이기도 하는 작품들은 미술관에서 관람하기 전부터 이미 너무 익숙했다. 작품의 외형은 "pop" 스러운 필치와 화려한 색으로 구성되어 활기가 넘친다. 또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나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거부감 없이 주제에 접근하게 만든다. 색의 조화에서 뿐 아니라 상징적인 아이콘들이 보여주는 메시지에 있어서도 친숙하고 거부감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날에와서 키스해링을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힘쓴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
첫째, 그가 퍼블릭 아트 즉 공공미술이라고 여긴 것은 거의 오늘날 자본과 미술관의 수혜 혹은 특혜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특혜가 그의 의도이든 아니든, 어느정도의 내적 모순을 안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둘째, 그의 작업은 오히려 음울하고 꽤 진지한 주제들을 담고있다. 전쟁이나 생명, 에이즈나 낙태, 마약 등의 소재가 잔인할 정도로 생생하고 과감하게 그려지고있다. (4전시실의 경우 19금으로 표시해놓았다.)선과 색이 아름답고 보기에 좋다고 하여, 혹은 마켓이 그를 인정한다고하여 대중과 소통하는 작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유감이 있다. 그 자신이 말하고 있는 소통과 퍼블릭에 대한 인터뷰는 거드름에 가까워보인다.
셋째, 예술가적 자의식이 매우 강한 워홀을 맨토이자 친구로 삼고 있다. 물론 워홀은 예술적으로 매우 뛰어나며 어느정도 예술의 경계를 허문 측면이 있음은 인정하지만,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에서 그들의 예술을 공유하며 누릴수 있는 계층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한다.
물론 키스해링의 작업이 예술성을 인정받아야만 하는 이유도 동시에 존재한다.그의 넘치는 에너지와 반짝하는 아이디어. 구상없이 단번해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가는 선들이 그의 성취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미술의 영역에서 그의 성취는 매우 크다. 베를린 장벽의 벽화라던가 아이들과 함께 완성하는 작업들이나, 자유의 여신상 작업등은 분명 다른 영역이나 여타의 예술가들이 감히 구상할 수 없는 작업들이기 때문이다.
팝이나 공공미술을 평가하는 상반된 두 흐름이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 입장에서 이들은 고귀한 예술의 영역으로 편입시킬 수 없는 (상업적)목적을 지닌 비지니스처럼 평가된다. 문화의 영역에 혹은 예술의 대중화를 부르짖는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게 있어 이들은 뛰어난 성취를 이룬 중요한 계기이다.
이 둘 사이에서 예술이 성취할 수 있는 두 영역을 모두 이룬 키스해링 같은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일 것이다. 다만, 그의 작업이 그 자신의 맥락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적용될 때는 좀 더 엄밀한 이해와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덧. 확~트인 소마미술관의 전시공간은 매번 만족스럽다. 이번에는 특히 키스해링의 역동성과 전시공간이 잘 맞아 떨어졌다는 인상이다. 또한 키스해링작업의 넓은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작품이 있으므로 관람을 권한다.
'예술의 상상 > un-fra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Walker Evans (0) | 2010.09.03 |
---|---|
Décalcomanie (1966) (0) | 2010.07.21 |
칸 영화제 자체 시사회 (0) | 2010.05.27 |
주말의 전시 (0) | 2010.04.26 |
Voice (0) | 2010.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