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상상/beyond-letter

[열외인종잔혹사]

유산균발효중 2009. 9. 25. 10:39
 

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열외인종 잔혹사>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은 들쭉날쭉한 경향이 있어서 아직 공신력 있는 문학상으로 자리 잡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수상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꽤 흥미롭고 재치있는 작품들이 많다.

주원규의 열외인종 잔혹사도 거친 문장과 서로 응집력을 갖지 못하는 사건들의 돌출한다. 이런 면에서 신인작가의 특징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리 신선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열외인종 잔혹사가 가지는 미덕은 빠른 전개와 재기발랄 혹은 발칙한 상상력이다. 신학을 전공한 작가가 자신의 세계관을 문학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노력은 여러 가지 소재를 통해 소설 곳곳에 배치된다.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이야기를 물들이고 있다. 열외인종이라고 이름붙인 이들은 사실 절대다수인 소시민을 의미한다. 코엑스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마치 게임처럼 벌어지는 총격전은 각 인물에게 서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우연처럼 한 자리에서 만난 퇴역군인, 노숙자, 제약회사 인턴, 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은 양머리 탈을 쓴 집단들과 대치하며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런데 이렇게 비현실적인 일들이 너무 생생하게 우리를 메우고 있지 않았던가?

 

" 경쟁과 착취, 혼돈과 모순, 그로 인해 어느 순간 돌이켜본 우리들의 현실은 천민자본주의의 막장에서 비로소 드러나버린 '열외인간'이라는 낙인뿐입니다. 과연 이 지독한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은 이른바 '열외인간'이라는 유전자로부터 말끔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천민자본주의의 오물통 속에서 벌이는 진흙탕 싸움에서는 승리도 패자도 모두 열외인간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닐까요.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이런 것이 정녕 오늘의 우리들이 쏟아내는 분노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 걸까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서 소설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소설은 과연 그 무엇을 말할 수 있기는 한 걸까요. 만약 소설이 그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늘 다음 책의 출간 여부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신인 작가가 할 수 있는 눌변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  -주원규

 

 

 

이 소설이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원규를 응원하는 이유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움을 잃지 않는다면, 더 진화한 문장과 매력있는 소재들을 가지고 다음의 작품을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나 역시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징을 넘어 문학적 성취를 이루기를 응원하는 바이다. (물론 그의 목적이 문학적 성취가 아니라는 것쯤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겠다만.)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는 서로의 머리통과 얼굴이 양의 그것으로 변해가는 꼴을 목격하기 시작했어. 머리카락이 흰 털로 변하고 얼굴에서도 흰 털들이 자라 나오기 시작한 거야. 처음에 우리들 자신은 이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어. 상대의 머리통을 보면서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게 된거지. 아, 이제 우리 모두 양이 되어버리는구나 하는 사실 말이야.”…… “그런데 우리들은 모두 양머리들뿐이야. 목자가 없어. 그래서 불안해지기 시작한 거지. 모든 게 혼란스러웠어. 그래서 우리는 목자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지. 그런데 웬걸. 우리가 목자라고 믿고 싶던 대상들이 하나같이 우리의 기대를 배반했어. 또 어떤 얼어 죽을 사이비 목자들은 우리를 썩은 오물통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하고 말이야.” …… “이봐.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말이야. 우린 선각자들이야. 당신들은 아직 스스로도, 아니면 상대를 통해서도 우리 모두가 양머리로 변해가는 것을 모르거나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상태에 빠져 있는 거고. 그래서 우린 결국 참다못해 당신들도 이제 곧 양머리로 변할 테니까 그때를 대비해 어떤 준비라도 해놓으라는 자각과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마련한 거란 말이야. 알아듣겠어?” - pp.264~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