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삶이라는 주체화과정

유산균발효중 2014. 6. 19. 01:41


밥벌이의 지겨움, 김훈이 쓴 걸 읽을 때는 꽤나 낭만적이고 희망적이었던 이 제목이 나에게는 전혀 다른 상황과 맥락을 만들어낸다. 


정말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침 면접자리에서 만난 그녀는 이미 유학의 고단한 과정을 끝내고 한국에서 강의하는 자리까지 맡았음에도 프랑스 인과 결혼하는 바람에 다시 이곳에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묻더니, 공부만 하기도 힘든데 왜 이런 일까지 하냐고 물었다.

속으로 '네 저는 공부만하면서 쫄쫄 굶을, 수 없어요. 저도 당연히 일하기 싫죠. 시간 아깝고.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요. 그런데 저에게 돈을 줄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그냥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해요.'라고 사뭇 냉소적으로 말했지만,

이런 말은 그냥 맘에 담아두고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냥 '그러게요'라고 말했다. 


1. 

사람들은 그냥 살아가기 위해서 일을 한다.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들을 보호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재화를 소비하기 위해서. 때론 일 자체를 자신의 천명으로 삼고 열심히 즐겁게 해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부를 하기위해 유지해야하는 기본적인 삶을 위해 일한다. 중배간을 생략해서 말하면, 공부하기 위해 일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좀 안쓰러워한다. '고고하게' 공부만 해야할 네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고있니라는 말투다. 아마 내가 공부하는 분야 때문에 더 그런 이야기를 듣는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응용학문이나 자연과학을 공부했다면 굳이 다른 일을 찾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고픈 학문인 인문학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한다. 생각하는 것이나 글 쓰는 것 읽는 것 말고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누가 생각한다고, 책을 좀 더 잘 읽는다고, 글을 쓸 줄 안다고 돈을 주겠는가? 그래서 딴지일보의 팬더가 자기가 유령작가로 글을 써 가족을 먹여살린 일대기를 '폭로'하는 현실이 가능한 것이다. 


2.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공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공부는 한국사회가 생각하는 공부랑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아카데미가 곧 공부이자 학문인 그 동네의 기준에선 난 공부를 잘하거나 공부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남들보다 나은 성적과 빠른 학위획득, 교수자리 진입 거기에 더하여 이 모든 것에 쉽고 용이하게 접근하도록 도와주는 재화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공부를 할 기회가 없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고, 올바르게 읽고 쓰고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공부를 하기위해서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할 것 같다. 


3. 

면접을 기다리며 그녀와 했던 대화가 햇볕 찬란한 마레지구를 산책하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불어로 일은 travailler/bosser라는 동사를 써서 말하는데, 가끔씩 친구들이 주말에 뭐하냐고 물어보면 난 머릿속으로 공부 혹은 일 둘 중에 하나를 떠올리지만 그 둘은 사실 한 단어다. 

그래서 나에게 공부는 곧 일이고 일은 곧 공부를 위한 것이다. 


4.

푸코는 삶을 예술이라고, 이때의 예술이란 주체화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의 예술은 당연히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예술작품은 아니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주체가 자신을 자신으로서 형성하고 구성하는 과정을 푸코는 예술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공부하고 픈 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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