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현대, 단상.

유산균발효중 2014. 6. 6. 19:23

클라리넷 연주자와의 대화 중에서

-현대음악에 대한 인식은 마치 현대미술의 그것과 비슷하다 느꼈다. 연주자들은 작곡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작곡자들은 클라리넷에 존재하지도 않는 음을 악보에 넣기도하고, 교수들은 틀린 연주를 잡아내지도 못한다. 관객들은 난해한 연주에 갸우뚱하면서도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른다.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친구는 자신이 정말 감동했으나 배신당한 한 음악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촛불이라는 제목의 음악이었는데, 작곡자는 유대인이었고 그가 2차세계대전의 폭격으로인해 목을 가누지못하게 되어 연주자로서 생활할 수 없게되어 그 절망감 그러나 희망을 담은 음악이었는데, 친구는 그 음악을 연주할 때마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음악에 얽힌 실'재'를 알고나니 친구가 이해했던 전쟁중의 희망과는 아주 거리가 먼것임을 알게되어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이것은 재현에 대한 다른 인식에서 시작된다. 사실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어떤 음악을 작곡한다면, 코끼리스러운 음과 악기를 사용하고 리듬을 사용해야 할 텐데, 주관적인 인상과 감각에 의한 악기와 선율을 써놓고 코끼리라 명명해버리기 때문이다. 재현이 그 대상과 일치해야한다는 고전적인 믿음이 음악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음악이 작곡자의 것이라는 생각, 연주자가 테크닉을 잘 발휘하여 완벽하게 작곡자의 악보를 재현해야 한다는 믿음, 관객은 그 음악을 코끼리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이 현대음악의 난해함에 한꺼풀을 덧씌워준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놀랍게도 현대미술에 그대로 적용된다. '새로운 것'이 최대의 가치인 현대미술에서 작품만 남고 미술가도 관람자도 없어져버린 이 역설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그리하여 변역하면 문화 매개/매체 정도를 전공하는 S는 자신이 과제물로 기획한 현대음악축제에서, 현대작곡가의 음악에 제목을 붙이지 않고관객이 음악을 들은 후, 제목을 정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수많은 현대미술이 '무제'로 이름붙여진 것과 다를바 없다. 

이리하며 우리 눈앞에는 어디에도 방점을 찍을 수 없는 물질, 소리만이 남는다. 이 물질과 소리를 붙잡으려는 노력이 이 둘의 대화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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