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일상_2

남편은 사춘기? 갱년기?

유산균발효중 2014. 5. 2. 05:04

친구들과 헤어진 슬픔에 울고, 세월호 소식에 울고, 자기 부모님과 통화하다가는 왜 제대로 된 소식을 듣지않고 무조건 조용조용하게 살려하느냐 버럭하고, 2박3일의 외박을 준비하는 장을 봐놓으며 감동멘트를 날린다. 그는 다중인격인가? 

나이로치면 사춘기와 갱년기의 중간쯤이긴 한데, 갱년기가 되면 성호르몬이 다른 성정체성으로 향해 더 많이 분비된다고 하니, 난 그냥 갱년기로 부른다. 

사실,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따라온 곳이 자신이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나라, 국적을 알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인종들이 모인 지저분하고 안전하지도 않은 파리다. 게다가 한해 한해 체류증을 갱신하며 내년의 신분이 불확실한 상태로 살아가려다보니 늘 뭔가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야한다. 그는 이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없었던 정체성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김은 연애내내 감정기복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서 신기할 정도였는데, 요즘은 거의 나를 능가하는 -+100의 감정영역의 소유자가 되고야 말았다! 20대에는 늘 판단이나 결정을 유보하고 대상의 원리와 사고 과정 자체에만 관심이 있던 그가, 가치판단에 적극적이며 분위기에 민감하고 나아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 까불고 잘 울고 잘 웃는 매우 사회적인 인간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얘가 왜 이러나 하는 짠한 생각에 이런 야생의 세계에 데려온 내가 죄인이지 했다. 자기가 태어난 집에서 쭉 살다 생을 마감할 수도 있을 정도로 안정과 소박한 성정을 지닌 김이 늘 새로운 대상을 찾아 헤매는 나와 함께하느라 살찔 겨를이 없구나 미안해했다.

이렇게 미안한 척을 약간 해주면, 돌아오는 대답의 두 예, 1)기분 좋을때:  너랑 살아서 재밌는 경험 많이 한다. 2) 나의 자유분방함과 현실감각 없음이 버거울 때: 썩은 웃음을 지으며 말은 안하지만 범불안증세를 보이곤 한다. 

90년대에 이민와서, 여전히 그 시대의 한국적 정서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지닌 이민1 세대들. 20대에 홀홀 단신으로 유학을 와서 아무것도 모른채 산전수전 다 겪고나서 파리 생활정보는 많이 아는데, 아는 생활정보만큼 이 사회에서 자리잡기는 힘든 우리 또래의 유학생들/ 서로 안되는 불어로 서로를 의지하는 외국인 친구들/ 친구가 되기엔 아직 너무 먼 프랑스 인들 사이에서 갱년기의 김은 적어도 겉으로는 이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나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변온동물처럼. 자신의 색을 시시각각 바꿔가며, 멍하니 아내 따라온 실없는 남편 코스프레를 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다. 사람이 제때에 사춘기를 지나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있다. 김두식 교수님의 지랄총량의 법칙처럼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지금 갱년기를 보내버리면 50대가 심심할것 같다. 지금은 갱년기 보내는 것 말고도 다이나믹하게 할 일이 많은데 말이다. 

그 상황과 환경에 맞는, 인간(나와 타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태도가 절실할 때다. 자연스럽게 고민을 나누고 살아가는 이야기에 서로 귀를 기울여줄 우정이 남편에게 필요한 것 같다. 일상에는 없는 천상의 언어로 은혜니 인내니 지껄이는 거 말고. 자신의 무공감능력을 자랑이라도하듯 교묘하게 자아과잉으로 채우다가 헤어지는 그런 대화들 말고! 



'속좁은 일상_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체를 밝혀라  (1) 2014.05.14
이사  (0) 2014.05.02
연대  (0) 2014.05.01
나란히 나란히  (0) 2014.05.01
국가  (0) 2014.05.01